속을 꿰뚫어 보는 사람
유독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사람이 있다. 숨기고 싶었던 마음을 알아채는 게 부담스러워서 도망가거나, 어떻게 알아채나 궁금해서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등 그에 대한 대처가 갈린다. 대학 때 시인이 되려던 선배가 있는데 그를 보며 처음 그런 느낌을 받았다.
선배는 하루에 한편씩 시를 쓰는 열혈 문학청년이었다. 영문과에 다니는데도 국문과인 나보다 다독, 다작을 하는 사람이었다.
밤새 술 마시고 얘기하다가 길에서 잔 적도 여러 번 있는 찐 술친구였다. 선배와의 데이트(?)는 1차는 서점에서, 2차는 선배가 가는 문인 모임에서 시 낭독과 음주를 하는 식이었다.
처음 문인 모임에 갔을 때 시 낭독을 하는 당시 등단한 시인들과 예비 시인들을 보며 엉뚱한 그들의 ‘뚝딱 시’가 우습기도 하고 멋있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개울가에서 술을 마시며 주고받던 한시처럼 즉석에서 줄줄 나오는 시가 문학적이기도 하고 말장난 같기도 했다.
그들 안에 섞여 있는 선배는 장난꾸러기가 됐다가 끝도 모를 진지함을 꺼내는 예비 작가의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들의 다양한 표정과 기록하고 싶은 말들을 주워 모으기 바빴다.
졸업 후 선배는 문예창작과에 편입했고 방송작가로 일하던 나와 서울에서 자주 술자리를 가졌다.
“솔직히 너도 방송작가 그만두고 싶잖아?”
방송일에 대해 하소연을 늘어놓는 내게 선배가 한 말이다.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딴소리를 하며 얼렁뚱땅 넘어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교수들도 인정할 만큼 시를 잘 쓰는 선배였지만 등단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형식에 얽매이는 시를 쓰고 싶지 않다며 교수가 도와주겠다는 데도 한사코 등단을 마다했다.
그런 선배가 같은 과의 동갑내기와 사귄다고 했다. 정식으로 누군가와 교제하는 게 (내가 알기론) 처음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는데 그녀는 선배와 결혼 후 등단했고 소설가가 되었다.
작가라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처음 알게 해 준 선배는 나를 뚫어져라 볼 때가 많았는데 그게 속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한 시동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너 지금 똥 마렵지?”
“니가 술 마시는 진짜 이유를 말해줘?”
“왜 시를 쓰냐고? 그래야 니가 무슨 술이 땡기는지 아니까?”
장난과 진지함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선배가 마냥 재밌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그가 했던 말들이 살과 뼈를 쿡쿡 찔러댄다.
“글 몇 년 쓰다 보니 주위에서 점쟁이 다 됐다고 하더라고. 작가 다 됐다가 아니라!”
작법을 배울 때 선생님의 지인으로 술자리에 왔던 유명 드라마 작가가 했던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작가들은 점쟁이와 다르지 않다. 점쟁이처럼 사람을 꿰뚫어 보면서 ‘그가 원하는 게 뭔지, 그걸 원하는 진짜 이유가 뭔지,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속속들이 알아챈다. 작가들과 얘기하다 보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뜨끔할 때가 많다.
나는 어디쯤에 있을까? 생각해보면 아직도 선배를 따라 하기 바쁜 햇병아리다. 장난과 진지함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정도는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