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팔이 아픈 게 못 때문일까?

“일단 써! 계속 써!”

by 다시봄

잊을만하면 왼팔이 아파온다. 팔꿈치가 뻑뻑해지면서 구부리는 게 불편할 정도의 통증이 동반되면 '못 때문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 부러진 왼팔에 못이 박혀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수술한 지 10여 년이 지난 20대 때다. 생선가시 모양의 수술 자국을 성형하기 전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의사가 말했다.


“부러진 뼈 고정하느라 박아놓은 못이 아직도 있네? 이거 왜 안 뺐어요? 빼러 오라고 했을 텐데.”

“몰랐어요. 가끔 아프긴 했는데... 빼야 돼요?”

“굳이 안 빼도 되긴 해요. 이젠 못도 자기가 뼈인 줄 알 거 같은데?”


의사는 자기표현이 재밌는지 실실 웃었지만 나는 고민이 되었다. 엉덩이 살을 떼서 성형을 해야 한다는 사실보다 못을 빼야 되나 말아야 되나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자못 심각해진 것이다. 결국 성형도, 못 빼는 것도 하지 않았지만 지금도 왼팔이 아프면 그 못 때문인 것 같다. 아니... ‘근육’ 때문인가?


왼팔을 다치고 수술한 후 의도적으로 팔을 덜 썼다. 오른팔을 더 많이 쓰고 왼팔은 쉬게 해 줬다. 나름의 배려이며 약간의 두려움 때문이었는데 그게 오히려 왼팔을 녹슬게 한 건가?




드라마 공부를 4년 하고 나서 알게 됐다. 내겐 여러 근육이 있지만 진짜 근육이 없다는 걸. ‘글 쓰는 근육’


분석 근육 : 수많은 드라마를 분석하고

독서 근육 : 작법책을 모조리 훑고

짧은 글 쓰는 근육 : 시놉시스가 수두룩하지만

진짜 글 쓰는 근육 : 대본으로까지 이어진 건 많지 않았다.


마지막 미니시리즈 수업에서는 시놉시스조차 쓰지 못했다.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의 말이 '뼈'에 사무친다.


난 그냥 열심히 하지 않은 편이어야 한다.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안 해서인 걸로 생각하겠다. 내가 열심히 했다고? 아니. 나는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 거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뿐이다.



대본을 쓰지 않은 것에 대한 핑계와 변명도 왼팔을 쓰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쓰레기를 쓰지 않기 위해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배려와 쓰레기가 될까 두려운 마음 때문이다.


드라마를 4년 공부하고도 -그 세계에서 4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짧다고도 할 수 없지만- 공모전 당선이나 작가 데뷔를 하지 못한 건 나이가 많고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열심히 쓰지 않아서다. 열심히 쓰지 않아서 글 쓰는 근육이 단련되지 않은 거다.


같이 공부하다가 먼저 작가로 데뷔한 동생이 글쓰기를 미루고 있던 나를 찾아왔다. 공모전 당선 소식을 처음으로 알려주고 싶었다며 말했다.


“언니가 쓴 글에는 언니만의 정서가 있어요.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 방송국에서 만날 거예요.”


그 말에 한껏 힘입어 다시 열심히 쓰다가도 글이 잘 풀리지 않으면 다시 저 바닥으로 주저앉길 반복했다.



녹슬지 않으려면 계속 써야 한다.
근육을 단련하고 강화하려면 계속 써야 한다.



잘 쓰길 바라면 꾸준히 쓸 수 없다. 꾸준히 써야 잘 쓸 수 있다. 그렇게 믿고 오늘도 쓰는 걸 멈추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