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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 Aug 31. 2023

새로운 나를 찾아간 세 남자, <한 남자>

왜 그는 자발적 실종을 선택했을까 

| 이 영화가 생각나는 날 |

어디론가 숨고 싶을 때

끝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물이 생각날 때

일본식 사회파 추리소설을 좋아할 때 (ex. 히가시노 게이고 러버)

쌀쌀해지는 기온만큼 씁쓸함을 한 껏 베어물 영화가 필요할 때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등 일본의 대표 추리소설 작가의 작품엔 공통점이 있다. 일본 특유의 사회문화가 드러난다. 일본엔 사회파 추리소설 장르가 성행한다. 책 <화차>의 주요 소재인 '자발적 실종'은 일본에서 화제된 이슈다. 이번 영화 <한 남자> 역시 남자판 <화차>로 봐도 될 만큼 소재는 동일하다. 


그 남자, 평범한 다이스케는 왜 새로운 신분이 필요했을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이스케는 작은 시골마을의 산림작업자로 일하게 되었다. 작은 마을인 만큼, 임업 경험이 없던 다이스케가 일을 잘할지에 대한 우려스러운 말들이 마을에 퍼졌다. 다이스케는 취미로 그림을 그린다. 문방구에 스케치북이나 도구들을 사러 갔다가 카운터에서 리에를 만난다. 리에는 최근 이혼을 하고 아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리에는 과거의 아픔을 공유하며 다이스케와 서서히 사랑에 빠진다. 둘은 재혼을 했다. 몇년이 흐른 후, 어머니를 포함하여 총 다섯식구가 된 리에 가족. 행복할 때 불행은 소리없이 다가온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다이스케는 작업을 하다 나무에 깔리는 사고로 사망했다. 


출처 = 공식 스틸컷
출처 = 공식 스틸컷


1년 뒤 기일, 리에는 다이스케의 형을 초대한다. 다이스케는 가업인 료칸을 물려받기 싫어 오래 전 가출했다. 오랜만에 들은 동생소식이 사망이라니. 형은 가슴아파 하며 다이스케를 위해 향을 피운다. 그러나, 형은 다이스케 사진을 보고 그는 다이스케가 아니라고 말한다. 리에는 이혼을 도와준 변호사, 아키라의 도움을 받아 다이스케의 과거를 찾길 의뢰한다.

출처 = 공식 스틸컷



"지금부터 남편 분을 X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다이스케가 아니란 사실이 밝혀졌다. 이제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이 된 그, 아키라는 그를 X로 칭하고 그가 신분을 사칭한 이유를 찾아나선다. 수소문 끝에 신분세탁에 능한 사기꾼 노리오를 찾아간다. 노리오가 말하길, 다이스케는 신분세탁이 아닌 신분교환이라 말한다. 다이스케와 X는 왜 신분을 바꿨을까? X가 흉악한 사건의 범죄자가 아닌지 의심하며 아키라는 여러 사건을 파헤친다.

출처 = 공식 스틸컷


아키라가 바라는 상


아키라가 사실 더 열심히 사건을 파헤친 이유는 노리오가 그들의 신분을 알고 있지만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게다가, 제일교포 3세인 아키라를 알아보고 '조센징'이라고 비하를 서슴치 않았다. 아키라에게 '제일교포' 딱지는 꽤 아픈 상처다. 인권 변호사로 살지만 수많은 이들의 삶에 도움을 줬음에도 일본인들 사이에서 아직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식사자리에 장인어른도 서슴치 않고 제일교포를 비하한다. 


아키라는 X의 과거를 파헤치다가 그가 살인자의 아들이었단 사실을 알게된다. 그리고 진짜 다이스케 역시 모두가 당연히 가업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말을 하지만, 그는 꼬리표처럼 붙어다니는 그의 '운명'을 피하고 싶어하는 듯 했다. X의 과거, 그의 트라우마, 그가 자신의 일을 실력으로 노력으로 극복하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꼬리표, 아키라는 거기서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 본다. 

출처 = 공식 스틸컷, 진짜 다이스케와 그의 연인


'새로운 나'가 된다라..

아키라 역시, X가 신분교환을 결심한 과정을 밟으며 '새로운 나'가 되고 싶은 사람이 아키라 뿐만 아니라 본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여전히 뉴스엔 제일교포 추방 시위가 일어난다. 다이스케였던 X의 과거와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던 서사는 아키라와 X의 동질성을 표현하며 질문을 던진다. 이 점이 화차랑 조금은 차이가 있는듯 하다. 

사회의 체제, 벗어날 수 없는 운명들로 새로운 신분을 '빼앗은' <화차>의 주인공, 같은 처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인물이 등가교환한 <한 남자>, 두 사람을 통한 아키라의 깨달음까지 보여주는 흐름이 일본사회의 현실을 오히려 조용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했다고 볼 수 있다.

제 이름은,,

아키라는 모든 인물의 비밀을 알아낸 뒤, 리에에게 진실을 말하며 사건을 마무리한다. 사건을 조사하는 동안 혼돈에 빠진 아키라는 본인의 자아마저 휩쓸렸다. 그리고 엔딩은 앞으로 아키라는 누구로 살지 궁금증을 남기며 끝난다. 

내가 스스로 가진 자아와 타자가 보는 자아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러나 내가 '나'라고 주장하는 모습에도 사회에서 거부당한다면 그토록 지독한 고통은 없을 것이다. 


출처 = 공식 스틸컷


일본 사회를 그리면서, '제일교포'과 한국인에 대한 비하하는 말들이 나와 불편할 수 있는 부분은 분명있다. 그럼에도 아키라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역시 그 고통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난 또 누구인가'라는 질문도 스스로 던지게 된다. 


뒷 모습만 있는 그림이 이 영화의 메인 이미지다. 얼굴없이 뒷모습만 담긴 그림은 타자의 시선을 담은 걸지도 모른다. 잔인하거나 스산한 공포없이 오로지 추리로서 즐기고 싶은 미스터리, 드라마 영화를 찾는다면 <한 남자>를 추천한다. 

✓ 평점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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