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도 자도 피곤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끝까지 함께 하고 싶은 순간
<심야괴담회>의 장편 버전이 보고 싶을 때
으스스한 현실 공포가 땡길 때
누군가 들어왔어
영화의 본격적인 첫 대사는 영화를 이끄는 리드 역할을 하고 마무리까지 확실하게 닫는다. 영화는 몽유병에 걸린 남편 현수와 몽유병에 잠 못 이루는 수진의 이야기를 다룬다. 유재선 감독의 입봉작인 영화 <잠>은 첫 장편영화답지 않게 참으로 깔끔하다. 제76회 칸 영화제 비평주간에 첫 공개된 후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둘이 함께라면 극복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
대기업에 다니는 수진(정유미)과 연극계에선 꽤 많은 수상을 하며 인정받은 연극배우 현수(이선균)은 신혼부부로 곧 새로운 가족을 맞이한다. 둘은 위의 가훈을 걸고 늘 함께 해왔다. 수진은 만삭의 몸이지만, 행복한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다. 어느 날, 밤늦게 일을 마무리하던 수진은 현수의 몽유병을 목격한다. 현수는 다음날 손이 피범벅이 될 정도로 얼굴을 벅벅 긁고, 밤중에 냉장고를 열어 음식을 게걸스럽게 헤치운다.
연극배우지만 슬슬 TV 연기에 도전중인 현수는 몽유병으로 생긴 상처때문에 배역도 잘리게 된다. 현수는 수면클리닉에서 처방을 받고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한다. 좀처럼 낫지 않는 와중, 아이가 태어났다. 현수는 아이를 헤칠까봐 따로 방을 구해 따로 잘려고 했지만 '함께 극복하자'는 수진의 성화에 결국 같이 지낸다.
좀처럼 낫지 않는 현수의 증상과 현수와 아이에 대한 보호본능으로 점점 불안해지는 수진의 상태가 이야기를 극으로 치닫게 만든다.
영화는 94분이지만 1장에서 3장까지 장별로 나뉜다. 유재선 감독의 실제 성격을 알 수 없지만 연출에서 그의 깔끔한 군더더기 없는 성격이 예상된다. 총 3장으로 나뉘면서 이야기의 맺고 끊음이 분명하다. 현수의 문제 발발 - 함께 해결하는 과정 - 수진의 불안이 더해져 갈등의 심화 순으로 이야기는 명확이 떨어진다.
문제는 현수에게 생겼지만, 수진이 출산 이후 현수의 몽유병이 겹치면서 생긴 불안과 불면증이 더욱 심해지며 새로운 사건들이 생겨난다. 초반의 집안 분위기나 신혼부부의 설정들이 조금은 진부한 부분도 있었다. 가훈이라거나, 집안 소품들이 '중예산 영화'의 느낌이 물씬 묻어났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미술팀이 꽤 노력한 흔적들이 보였다.
영화 <잠>이 개봉 전 기대감을 더 높인 이유 중 하나는 '봉준호 감독의 연출팀 출신'이라는 타이틀이었다. 칸에 초청받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영화 <옥자>의 연출팀 출신에 봉준호 감독이 '나보다 더 변태적'이라는 호평을 남겼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잠>에 GV도 참여하면서, 유재선 감독을 제대로 서포트했다.
그의 연출팀 출신이란 부분도 있지만, 영화는 최근 나온 한국 공포영화 중에서도 웰메이드 작품에 속한다. 한국 공포영화 중에선 신선한 소재는 꽤 많았지만, 연출이 세련되거나 스토리의 매력이 끝까지 돋보인 영화가 드물었다. 영화 <잠>은 사실 공포보다 스릴러, 미스테리 장르에 가깝긴 하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유전>이나 <미드소마>처럼 소름끼치게 센세이션하진 않더라도, 한국의 문화를 고스란히 담은 K-공포를 잘 풀어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역시 '샤머니즘'이었다. 수면장애가 생기면 한국에선 수면클리닉을 가거나 무당을 찾아간다. 특히 무당은 미신을 좋아하는 부모님들이 부른다. 이 영화 역시 수진의 어머니의 강력추천으로 부적을 받고, 집까지 무당을 부르기도 한다.
샤머니즘은 <량종>에서도 <곡성>에서도 드러났으나, 감독은 또 다른 방식으로 풀어났다. 아리 애스터 감독과 나홍진 감독의 샤머니즘은 '끝나지 않는다'가 포인트였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샤머니즘은 '끝을 내는 건 당사자에게 달려있다'란 재밌는 시선이 돋보였다.
정말 귀신이 들렸는지, 수면장애인지 끝까지 100% 진실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믿음의 벨트'처럼 현수의 증상은 현수의 믿음과 수진의 믿음의 차이를 보여준다. 현수의 믿음과 수진의 믿음 중 진실로 이끄는 건 믿음의 크기가 컸던 사람의 힘이 큰 영향력을 미친다.
K-호러의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인 <잠>. 심야영화 보단 조조로 보길 추천한다. 정말 잠들기 어려울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잠을 소재로 한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 같은 책처럼 달달한 이야기가 너무 평온했다면, 으스스한 스릴러가 당길 때 추천한다.
✓ 평점 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