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일, 매일매일 버리며 걷기
어제 느즈막히 도착한 팔라스 데 레이에서 숙소를 구하는데 한시간 넘게 걸렸다. 큰 도시였고, 사설 알베르게도 꽤 많았지만, 이미 많은 곳은 차 있었고, 또 비어 있는 곳의 시설은 어둡고 좋지 않았다. 호텔이나 펜션, 또는 민박 표지판이 있어도 너무 작고, 스페인어로 씌여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다. 관광 안내소가 있으면 좀 더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관광 안내소는 이미 문을 닫았을 시간이다. 길거리에서 만난 몇몇 현지인들에게 손짓 발짓으로 물어물어 간신히 작은 호텔을 구할 수 있었다.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방이었다. 짐을 풀고 먹을거리를 사러 수퍼로 나가는 길에, 호텔 입구에서 빈대 시체 몇마리를 발견했다. 이런…순례자 숙소든, 호텔이든 민박이든 대부분 빈대가 있구나. 내가 빈대를 피해 이리저리 숙소를 구한들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도 소독을 했는지 박멸을 했는지, 미처 시체를 치우지는 못했나 보다. 사리아부터 기하급수적으로 순례자들이 늘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여기저기 붐비니, 생명력과 번식력이 엄청난 빈대가 없길 기대하는게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젠 운명에 맡겨야할 때인 것 같다. 이 길을 걷고도 빈대에 물리지 않으면 천운이라 했으니, 내 운이 닿는다면 무사할 것이고 아니면 물리겠지. 그렇게 맘을 내려놓으니 차라리 편해진다. 난 최선을 다했고, 내 운명을 받아들이는 일만 남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욕실 거울로 가서 얼굴과 몸 이곳저곳을 살핀다. 눈에 띄는 건 없다. 아직은 무사하다. 좀 걷고 피가 돌아봐야 물린지 아닌지를 안다고 하지만, 우선 무사한 것 같다. 까만 비닐 봉지에 꽁꽁 싸놓았던 배낭을 꺼내 짐을 챙겨 길을 나선다.
하루하루의 일정을 정해서 출발하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컨디션에 따리 일정을 조정하거나, 거쳐가는 마을에 따라 멈추기도 하고 좀 더 가기도 한다. 오늘은 멜리데(Melide)를 거쳐 아르수아(Arzua)까지 가볼까 한다. 먼 거리다. 30킬로를 넘게 걸어야한다. 이미 9시가 다 되어가니, 지금 출발해도 저녁 늦게나 도착할 것이다. 가다가 정 힘들면, 멜리데에서 짐을 풀기로 하고 출발한다.
500미터마다 나오는 남은 거리 표지석이 반갑지 않다. 남은 거리를 자꾸 의식하면서 걷게 된다. 숫자가 줄어갈수록 ‘빨리’가 아니라 ‘더디게’ 당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지고 그 마음이 커질수록 일이십분 간격으로 나오는 그 표지석을 애써 못마땅하다. 빨리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며칠 푹 쉬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냐마는, 아침에 일어나 퉁퉁 부어오른 발에 등산화를 끼어 신고 무거운 배낭을 들쳐매고 길을 나서는 하루가 이젠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삼일 후면 그 일상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이제 어디를 향해 걸어가야할지 더 큰 물음표가 가슴 한 곳에 커다랗게 새겨지고 있다. 하루에 오킬로씩만 걸어볼까. 최대한 늦게 산티아고에 도착하는거야. 아니면 시골 마을에서 며칠 푹 쉬다가 갈까. 숨바꼭질하듯 어딘가 숨어버리고 싶지만, 내 자신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남은 킬로수를 볼때마다 그래서 넌 어디로 가고 싶냐는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 저 숫자가 ‘0’이 되는 곳에서 넌 어떤 대답을 할 거냐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시간이 더디 오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내 두발은 절뚝이면서도 앞으로 한발한발 내딛는다.
갈라시아 지방에 들어서면서 변화무쌍한 날씨를 만나고 있다. 사리아에서 만난 비, 포르트마린의 뜨거운 태양과 구름한점 없는 파란 하늘, 팔레스 데 레이를 향해갈 때 머리위에 낮게 깔리던 흐린 하늘. 그리고 멜리데를 향해 걸어갈 때 파란 색상지에 하얀 솜을 붙여놓은 듯한 눈부신 하늘까지.
그 하늘 아래서 가을을 만났다. 낙엽, 서늘한 바람. 어제까지 한번도 보지 못한 낙엽이 길 한가득 쌓여있다. 누군가 몰래 뿌려두고 간 것처럼 마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한국의 가을처럼 노란 은행잎과 플라타너스 낙엽이 가득하다.
변화가 갑작스러운 건, 변화 직전까지의 과정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에는 준비하는 과정, 변해가는 과정,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변화가 있을 뿐.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변화만을 인식할 뿐, 변화가 있기 전의 고민이나 갈등, 변해가는 과정에서의 노력이나 부대낌은 눈치채지 못하거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변화라는 결과가 눈에 띄지 않으면 애초에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고 여기거나 과정에서의 노력은 무시된다. 결과를 중시하는 것이 잘못된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듯 어떤 노력의 결실을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결과만을 중시하면 내가 가진 고민이나 방황의 시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해버리기 쉽다.
오래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유학준비를 할 때 그 누구에게도 유학준비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가족에게도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나중에 가게 되면 자연히 알게 될터 확실치도 않은데 미리 말해서 경솔하게 행동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 때 결과가 안 좋을 수도 있으니 결과가 잘 나오면 말을 하고, 안되면 그냥 없었던 일로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고민하고 준비했던 일이년의 시간은 고스란히 나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어드미션을 받았던 그 결과의 순간보다, 내겐 준비하는 과정이 훨씬 더 치열했고 열심이었다. 결과가 어찌되었든 나 스스로 아쉬움도 후회도 남지 않을만큼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난 결과에 따라 내 행동을 바꾸려했던 것이다. 그런 태도 때문에 나는 모든 일을 순조롭게, 알아서 척척해내는 아이로 인식되었지만, 그런 인식 뒤에는 혼자만의 분투하는 시간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공존하는 삶이란 그런 개개인의 분투하는 삶의 시간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좋은 결과를 축하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일년에 딱 하루 생일선물 주고받듯 인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 하루하루의 시간, 무의미한 듯하지만 고민하고 방황하고 노력하는 하루하루의 시간을 나누지 않고서는 함께 사는 삶이란 가능하지 않다.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든, 선후배든, 동료든, 또는 이웃사람이든 내가 마음을 열고 대화를 시작하면 분명 그들은 귀를 기울인다. 내가 먼저 말을 건낸 적이 없다는 것. 그리고 마음의 문을 열어 내가 힘겨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삶의 목표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지 말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혼자가 된 순간,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든 순간. 그렇게 살아온 내 삶이 가슴 한켠을 관통하고 지나간다. 아프고 아주 아프게.
어느새 멜리데(Melide)에 도착했다. 10세기 경에 세워진 도시로 마을 입구부터 보이는 오래된 돌건축물들이 그들의 역사를 가늠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 지역은 뽈뽀라는 문어 요리로도 매우 유명한 지역이다. 두세번 다른 마을에서도 먹어 보긴 했지만, 이 지역이 가장 유명하다고 하니 오늘 늦은 점심은 뽈뽀다. 이미 세시가 다 되어간다.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파와 그만 걷고 싶은 생각이 밀려온다. 우선 뽈뽀를 먹으면서 생각해보자.
큰 마을이라 이삼십분쯤 걸어 마을 중심가로 들어서니 여러 레스토랑에서 뽈뽀를 팔고 있다. 메뉴판 사진이 문앞에 걸려있고 먹음직스러운 문어요리가 보인다. 그중 한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게 안 자리는 이미 다 차서, 길가에 내어놓은 테이블 하나에 자리를 잡고 앉자 웨이터가 나와 주문을 받는다. 뽈뽀와 맥주 한잔.
뽈뽀는 문어를 잘게 잘라서 올리브 오일에 굵은 소금과 고춧가루를 뿌려서 살짝 익혀내는 요리다. 매우 부드럽고 적당하게 간이 베어 있는 매콤한 음식이라 한국사람들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그리고 그 올리브유에 바게뜨를 찍어 먹으면 한끼 식사로 충분하다.
뽈뽀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뒷 테이블에 어제도 길에서 본 커플이 앉아서 식사를 한다. 스페인 현지 사람들로, 각자 이곳을 찾았는데 서로 인사도 나누도 식사도 함께 하는 사이가 되었단다.
‘어디까지 갈 생각이에요?’ 내게 묻는다.
‘여기서 하루 묵을까 고민중인데요. 발목이 좀 아프기도 하고, 더 걸으면 아르수아까지는 가야하는데, 너무 멀어서 네다섯시간은 더 걸어야할 것 같아서요.’
‘그렇죠. 중간에 마을이 있긴한데 순례자 숙소가 없는 곳들이라 아르수아까지는 가야하죠. 어디서 시작해서 얼마나 걸어온 거에요?’
‘전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시작해서 한달 넘게 걷고 있어요.’
‘그러면 아루수아까지 가는건 일도 아니겠는걸요. 힘들지만, 그정도 걸어왔다면 몸이 알아서 적응했을 거에요.’
멜리데에서 방을 잡고 쉬려던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었는데, 그 남성의 말에 그럼 좀 더 걸어볼까 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오기가 발동해서는 아니고, 지금 방을 잡고 쉰다면 뭔가 허전할 것만 같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래 걸어보자. 좀 더 걸어보자.
반바지를 입고 있던 그 남성의 다리는 빈대에 물려 엉망이었다. 빨간 발진이 온 다리를 벌겋게 물들이고 울퉁불퉁하게 부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듯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한다. 나도 곧 뒤따라 일어선다.
멜리데까지 왔던 길과는 사뭇 다른 길이 펼쳐진다. 가을낙엽이 가득하던 길은, 낙엽하나 없는 울창한 숲길로 들어선다. 제주도 비자림보다 더 원시적인 느낌의 숲. 수백년, 수천년 자랐을법한 나무들이 하늘의 끝을 향하고 있고, 숲 속으로 한발 한발 내딛을때마다 만화 영화에서처럼 거대한 나무가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숲의 기운이 나를 압도한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멜리데에서 짐을 풀었다. 그래서 이 거대한 숲에 나 혼자 있는 것만 같다. 앞뒤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타닥!’
‘쩍!’
‘따따닥!’
이상한 소리가 숲에 울려퍼진다. 순간 긴장하여 주위를 살핀다. 혹시 야생동물이라도 있는 걸까. 아무런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는다. 가까운 곳에서도 좀 먼 곳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드문드문 들린다. 가만히 제자리에 서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무슨 소리일까.
내 머리 위 수십미터 길이의 곧게 뻗은 나무에서 나무 줄기가 갈라지면서 쩍쩍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닌가.
하얀 속살을 메끄럽게 드러내고 있는 이 나무의 이름은 뭔지 모르겠다. 처음 보는 키가 아주아주 큰 나무. 짙은 고동색의 마른 껍질을 벗어내고 있는 것이다. 손도 발도 없는 나무가 몸통의 옷을 스스로 벗고 있다. 그리고 그 소리가 산 속에 울려퍼진다. 나무 아래에는 그렇게 벗어던진 바짝 마른 나무 옷이 쌓여있다. 나무가 살아있는 생명체임은 알지만, 이렇게 내 앞에서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스스로 움직이는 나무를 본 적은 없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나 봄직한 광경이다. 한참을 멈춰서서 나무의 옷벗는 소리를 듣는다. 수백년 동안 옷 갈아입기를 반복하며 속살을 다져왔을 나무. 곧게 뻗은 나무 줄기가 아름답다. 하얀 속살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갈길이 멀다. 곧 해가 지기 시작할 것이다. 조금 서둘러야한다. 하지만 발목이 여전히 아프다. 아르수아까지 가려던 게 과한 욕심이었을까. 이제와 돌아갈 수도 없다. 아르수아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한다.
숲은 또다른 숲으로 이어지고, 산의 오르막은 내리막으로, 또다른 오르막으로 반복되고, 끝도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또 걷고. 어떤 생각도 더이상 떠오르지 않는 그런 상태가 되어간다. 얼마나 남았나 셈해보기도 포기한채 그냥 걷는다. 다리를 절뚝이며, 무거운 가방의 길이를 조금씩 조절하면서 어깨의 고통을 견딘다.
저 멀리 아르수아 표지판이 보인다. 이미 해는 기울기 시작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오늘 잘 곳을 마련해야한다. 아르수아는 여지껏 거쳐온 마을과 달리 매우 현대식 도시다. 마을 한가운데 큰 도로가 뚫려있고 호텔이며 레스토랑 등 관광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제법 눈에 많이 띈다. 큰 수퍼마켓도 여러개가 보이고 순례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도 많이 모여드는 도시인 것 같다. 공립이든 사설이든 알베르게는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어 호텔이나 호스텔이 보이는대로 들어가 물어보지만 빈방이 없다. 내가 너무 늦게 도착했다. 나 말고도 호텔 방을 구하던 순례자 서너명도 모두 방을 못 구했다며 할수없이 순례자 숙소로 향한다.
나도 순례자 숙소에서 묵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애써 피하고자 했는데 더 걸을 수도 없고 길 위에서 밤을 지새울 수도 없다. 마을 입구에서 보았던 새로 문을 연듯한 사설 알베르게를 찾아간다.
‘안녕하세요? 오늘 남은 침대가 있나요?’
‘어서 들어와. 남은 침대 있고 말고.’
연세가 지긋한 아주머니는 서툰 영어지만 환하게 반기며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여러명이 함께 자는 방 말고, 혼자 쓸 수 있는 개인 방도 있나요?’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혼자?’ 라는 말을 반복하며 손가락 하나를 들어 재차 확인한다. 그리고 종이 쪽지에 25유로라고 쓴다. 개인 방 가격은 25유로, 여러명이 쓰는 방은 10유로라는 말인것 같다. 아주머니는 자기를 따라오라며 건물 밖으로 나가 뒷편으로 돌아서 다른 건물 입구에서 열쇠로 문을 연다. 여긴 순례자 숙소라기보다 개인 집 건물 같다. 3층까지 따라 올라가니 여러개의 방문이 보이고 그중에 하나를 열어보이며 둘러보라는 손짓을 한다. 안에 가구까지 잘 갖추어져 있는 깔끔한 방이다. 호텔방처럼 침대도 잘 정돈되어 있다. 아주머니 집 빈방인 것 같다. 옆방에서는 손녀손자들로 보이는 어린 아이들이 들락거린다. 다 포기하고 찾아온 곳에서 이렇게 좋은 방을 구하다니. 아주머니한테 맘에 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돈을 지불한다. 잠시 후 오피스로 여권을 가져오라며 아주머니는 총총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이 마을 토박이로 보이는 아주머니. 총명한 눈에, 눈치 백단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빠릿빠릿한 비지니스 수완으로 돈을 벌어 건물을 짓고 순례자 숙소를 마련했을 것이다. 꼼꼼한 일처리, 과하지 않은 친절, 그리고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바로 간파해 내는 눈. 그렇다고 호락호락해보이지 않는 강인함. 배움이 길지는 못했겠지만 그녀는 삶에 있어서 선수다운 면모가 보였다. 덕분에 난 길고 길었던 하루, 지치고 지친 몸을 편안히 쉴 수 있었다.
Distance: Palas de rey – Arzua (32킬로)
Time for walking: 9:00 a.m. – 8:00 p.m. (11시간)
Stay: 호텔
A thing to throw away: 민소매 티셔츠 (날이 서늘해져서 더이상 입을 일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