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08_여권 수령

<아무것도 아닌 내가> 3번째 이야기

by 안승환


사전 안내받은 수령일자보다 2일이나 빨리 도착한 신여권

"여권 디자인이 바뀌었네요???"

스물아홉 살에 무턱대고 떠난 세계여행 때 사용했던 기존 여권이 1년 후 만료될 위기에 처한 탓에, 5만 원이라는 거금을 내고 여권을 재발급받았다. 캐나다 워홀 비자는 최소 2년이기 때문에, 입국 거부나 비자 기간 단축 등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상황인 것이다.

어제 부산에서 열린 '제3회 마우스북페어'에 참가한 기록을 정리해야 했다. 이른 아침부터 집 앞 카페에 가서 일기를 쓰고 정산을 하는 등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뜬금없이 외교부에서 메시지가 와서 채팅 창을 열어 내용을 확인해 봤더니 저번 주에 여권 신청을 접수받은 대전시청에 여권이 도착했으니 찾아가라는 거였다.

일주일 만에 여권이 나온다는 것 자체도 놀라운데(물론 영업일 기준이다) 그걸 더 단축해서 2일이나 빨리 처리해 준다는 게 경이로울 지경이다. 해외를 다니면서 외국인 친구들의 행정 시스템 경험담을 들을 때마다 한국의 행정 처리 속도가 어마어마한 것이라는 걸 자각한다.

신여권의 디자인은 정말 깔끔하다. 선명한 파랑. 주머니에 넣고 주차장에 가서 차에 올라탔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한국을 상징하는 컬러가 뭐였지?'

새로운 여권의 키 컬러는 파랑이 분명하다는 걸 알았다. 납득도 됐다. 태극기를 떠올리면 남한은 파란색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나의 컬러는 뭘까?'

퍼스널 컬러 따위가 아니다. 안승환이라는 사람을 나타내는 가장 명확한 색상이 뭘까. 애초에 사람을 색이라는 한정된 영역 안에서 표현하는 게 가당키나 한 걸까? 그냥 내가 좋아하는 색을 나를 나타내는 색으로 어필하면 되는 건가?

차에 시동을 넣고 주차장을 벗어나서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리는 1분 동안 쓸데없이 진지한 고민에 빠져버렸다. 만약 한국을 단 하나의 색상으로 표현해야 한다면 어떤 색이어야 할까? 파랑이 맞을까? 흰색은? 검은색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빨간색은 아닌 것 같다. 이미 북한이 너무나 강한 아이덴티티를 확립했으므로.

"내년에 캐나다 가요."

입버릇처럼 하고 다니던 말이었는데 시간이 훌쩍 지나 멘트를 바꿔야만 했다.

"다음 달에 캐나다 가요."

스물아홉 살에 처음 세계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딱히 실감이 나질 않는다. 행성 정도는 옮겨야 긴장하려나. 딱히 별 생각이 없다. 외국인들도 방귀를 뀌고, 똥을 싼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어떤 환상 같은 게 깨졌기 때문인 것 같다.

새로 바뀐 여권 하나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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