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다니는 학교(1)
변화의 주체
13년 만에 담임이다.
떨리기도 설레기도 한다.
특목고에서 10년, 자사고에서 11년째 교직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본의 아니게,
특목고를 떠나기 마지막 3년과,
새로 개교한 자사고에서 10년 연속 중간관리자인
부장교사를 역할을 했다.
전임교 포함하면 13년 만에,
현재의 학교에서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담임을 맡게 됐다.
20년 전, 외고에서 첫 담임을 고3 담임으로 시작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첫 담임을 고3 담임으로 시작한다는 부담감보다는,
전국 10위안의 진학실적을 내는 학교가
전년도에 신입교사로 시작한 사람에게,
고3 담임을 맡긴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있었다.
젊었고
자신감과 열정에 충만했던 시절이었다.
결혼을 하지도 않았으니,
온 신경과 에너지를 학급 학생들에게 쏟아내었다.
과유불급...
아이들은 힘들어했고,
나는 머리를 감을 때마다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는
원형탈모에 시달렸다.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하였고,
아이들에게 요구하고,
혹시나 나로 인해 아이들이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할까 불안했다.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서 한 것들이,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애정을 쏟은 일이
진심이라고 할지라도,
실제로 아이들이
자신들을 위한다고 느낄지는 알 수 없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나의 생각과 감정을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다.
고3 담임을 3번 연속으로 하던 마지막 해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담을 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때론 설득하고, 조언하고
그렇게 아이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이들이 변화는 거지,
내가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고3담임을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연속으로 하면서
나의 생각도 조금씩 변화했다.
고3 담임을 연속 3번째 하던 해에,
나는 오히려 내려놓았다.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내밀던 손을
거둬들였다.
나는 그냥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
교실 맨 뒷자리에 책상 1개 가져다 놓고,
아이들이 밤까지 면학하는 순간에,
그 공간에 그냥 같이 있었다.
때론 신문을 읽고,
책을 읽으며,
아이들의 숨소리, 책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그 공간에 함께 있었다.
나의 숨소리
내가 내는 소리가
나의 마음이
그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되었지는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결국, 돌고 돌아
내가 선택한 방법이다.
아이들도 다 안다.
본인이 뭐가 잘못됐는지,
뭐가 문제인지...
다만 의지대로, 생각대로 되지 않을 뿐이다.
도움을 요청하면
같이 고민하고,
조언을 구하면,
대화를 하고...
손을 내밀고 있되,
그 손을 잡을지 말지,
언제 잡을지는 아이들의 몫이다.
무엇인가를
특히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