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랑

이성 관계

by 위안테스

기억인가 추억인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현재의 마음... 감정인가

내가 지금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인가.

실제로 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결혼 이후 교통사고를 당한 아내는 기억 상실증에 걸린다.

남편을 기억하지 못하니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생각하지 못한다.

남편이 선택한 것은 실망과 좌절이 아니라,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것이었다.

끊임없이 구애를 하고, 새로운 추억을 쌓아나갔다.

기억을 읽은 아내는 기억에 없는 남편을 다시 사랑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같은 사람과 두 번째 결혼식을 한다.

만날 사람은 결국엔 만나게 된다.

인연이 아닌 사람은 길목을 지키고 있어도 만나지 못한다.

우연이 반복되면 인연이 되고, 인연이 반복되면 운명이 되는가.

아니면 우연에 의미를 부여되면 운명이 되는가.

인연이란 모래사장의 두 모래가 만날 확률,

인연이 닿아도 그때 그 순간에 하지 않으면,

그 타이밍을 놓치면 다시 엇갈리게 되는 건 아닌가...

첫사랑... 그 아련한 기억과 인연을 떠올려 보려고 한다.

고등학교 올라 간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누가 어깨를 툭툭 치길래 뭐지 하고 일어나 보니 선배로 보이는 사람이

내 책상 앞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배처럼 보이는 사람이 "니... 어디 동아리 가입한 곳 있나?

관심 있으면 서예부 어떠니?"라고 말했다.

'아~ 요즘 동아리 홍보 기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입생들 대상으로 최근 일주일간 점심시간에

2학년 선배들이 교실마다 돌아다니며

동아리 홍보를 하고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서예 부요?. 저는 제 이름만 한자로 겨우 쓰는데요."라고 말했다.

후배의 당돌한 모습에 당황한 선배는

"아~ 맞나... 서예부에 한자만 쓰는 게 아니라 한글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날 나는 건방진 행동이 문제가 된 듯...

서예부 동아리실로 호출을 당했다.

2학년 선배들이 나를 포함해서

1학년 학생들 몇몇을 둘러싸고

동아리 가입을 권유하고 있었다.

동아리 활동의 장점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적당한 압박과 회유가 반복되었다.

강단 있게 거절하고 나오고 싶었지만,

어디 인생이 원하는 데로 흘러가는가...

어느 순간 서예부 가입 동의서를 작성하고

선, 후배 상견례 일에 대한 안내를 받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고등학고 동아리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날의 선택이 나의 고등학교 시철

추억의 대부분을 만들어 줄 거라고는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작된 나의 동아리 활동이 한 달 정도 지났을 때였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됐는데

우리 학교 서예부는 대구 고등학교 서예부 연합 동아리에 포함되어 있었다.

남고 7개와 여고 7개 학교가 모여서 연합 동아리의 형태로 운영되고

학교 축제가 있으면 품앗이를 하듯이

조금씩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특별연합이라고 남고와 여고 1개씩 조금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바로 오늘 그 특별연합인 여고와의 첫인사를 하는 날이다.

2학년 선배들과 버스를 타고 경산에 위치한 영남대학교로 향했다.

드 넓은 영남대학교 캠퍼스의 어느 잔디밭에서 00 여고

서예부와 우리는 마주 보고 서서 한 명씩 번갈아 가며 00 몇 기 000이라고

이름을 온몸의 반동을 이용해서 소리쳤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운데 그때는 선배 눈에 흡족하지 못하면

집합을 당할까 봐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대구에는 당시에 경북대 사대부고 빼고는 남녀 공학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공식적으로 여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엄청난 동아리였다.

그렇게 양쪽 1학년들이 인사를 하고 잔디밭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다양한 게임을 했다. 그렇게 게임과 벌칙이 오가 던 중

내 눈에 띄는 여학생이 한 명 있었다.

게임에 져서 내 동기의 등위에 올라타야 하는 벌칙을 받은

몇 명의 여학생이 있었다. 다들 올라타기를 주저하는데

한 명의 여학생이 소리를 지르며 내 동기의 등위에 올라탔고

나머지 여학생들도 그 모습을 보고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내 동기의 등에 올라타 웃음 짓던 그녀의 모습이 내 눈과 마음에 새겨진 날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지만 계속 그녀의 모습은 잊히지를 않았다.

나는 그녀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고 학교 수업이 끝나고

그녀의 학교로 갔다.

당시 우리 학교는 1, 2학년은 야간자습이 없었고

그녀의 학교는 전체 학생이 너무 늦지 않은 시간까지

야간 자습을 의무적으로 진행하는 학교였다.

1992년 어느 봄날에 그녀를 보기 위해 50분을

시내버스를 타고 그녀의 학교에 갔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 어렵게 어렵게

학교에 도착했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우리 학교와 달리 정문, 후문, 쪽문... 출입구가 너무 많아서

어디서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만날 약속을 한 것이 아니라 잠시 난감해하다가 일단 정문에서

무작정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야간자습이 종료되는 시간이 되어 00 여고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바로 직감했다.

오늘 여기서 그녀를 만난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그렇게 첫 번째 나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다음번에는 방법을 달리 했다.

먼저 그녀에게 직접 전화를 할 수는 없어

그녀의 동기에게 전화를 해 학교로 갈 거니 그렇게 전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녀가 나온다는 약속을 받지는 못했지만

일단 정문에서 기다린다고 했으니

저번과 달리 어디에 서야 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가는 길에 꽃집에 들러 장미꽃 한 송이를 사서 정문으로 향했다.

장미꽃은 가는 길 전봇대에 잘 숨겨두고

그렇게 한참을 학교 정문에서 기다렸다.

이윽고 야간 자습 종료 종이 울리고 여학생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여고 앞에 남학생 한 명이 서 있으니

지나가는 여학생마다 힐끔거리며 지나갔다.

그때는 정말로 하나도 부끄러운 게 없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어디서 그런 막무가내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었는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없지만

그때니까 가능했던 것 같다.

정문을 나오는 여학생수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안 나오는 건가... 내가 기다린다는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나?

아니면 전해 들었지만 나오지 않는 건가'라는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 저 운동장 멀리서 한 명의 여학생이 걸어 나오는데

그녀라는 직감이 바로 왔다.

정문 앞에 서있던 내게로 그녀가 천천히 걸어왔다.

아마 학교 학생들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나온 것 같았다.

"어쩐 일이야?"라고 묻는 그녀에게

나는 담담히 " 할 얘기가 있어. 일단 걷자"라고 말하며 뒤돌아 걸어갔다.

그렇게 걸으며 조금 전 전봇대 뒤에 숨겨뒀던 장미꽃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때 우리 처음 만나고 자꾸 네 생각이 나서 왔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는데

너만 괜찮으면 연락하며 지낼 수 있을까 해서.

네가 싫다고 하면 다시는 귀찮게 하지 않을게"라고 말했다.

그녀는 걸어가면서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실제로는 얼마 안 되는 시간이겠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엄청나게 길게 느껴졌다.

나는 대답이 없는 그녀의 모습을 거절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를 보며 "알았어. 귀찮게 해서 미안해.

앞으로 이런 일 없을 거야."라고 말하고 뒤돌아서서 걸어갔다.

뒤돌아서는 내 뒤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만... 갑작스러워서 놀랐어. 아직 잘 모르겠는데...

주말에 시립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할래"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그녀와 주말에 대구시립도서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엄마에게 "엄마, 여자 친구 생긴 것 같으니...

혹시 전화 오면 잘 받아줘'라고 말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엄마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래, 우리 아들이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하니

엄마가 적극 협조해야지" 하시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시며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렇게 나의 첫사랑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랑이었기보다

그냥 그런 것을 해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내 인생에 다시는 없을 순수한 마음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녀와 약속한 주말이 왔다.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멋있어 보이는 옷을 골라 입고

거울 앞에서 무스를 이리저리 발라 머리에 잔뜩 힘을 주었다.

한참 동안 공을 들이고도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머리를 감고 무스를 바르는 유난을 떨고서야 버스를 타고

시립도서관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도서관에 도착해서

그녀를 만나기로 한 열람실의 좌석표를 받는 곳에 서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파스텔 톤 긴치마와 머리띠,

하얀색 양말에 까만 구두를 신은 그녀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두근 거리는 가슴과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는 표정을 억누르고

어색한 인사와 함께 열람식 좌석표를 뽑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당시 시립도서관은

남녀 열람실이 따로 구분되어 있었고

한 열람실에 100~200개 사이의 칸막이가 있는

책상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공부가 될 리가 없었다. 공부를 하러 간 것도 아니고...

그렇게 수시로 그녀와 남녀 열람실 사이에 있는 복도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다시 열람실에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내 기억에 그녀와 나는 각각 서예부 친구 한 명을 데리고 왔었던 것 같다.

그렇게 오후가 됐고 나는 음료수 두 개를 자판기에서 뽑아 들고는

그녀가 있는 여자 전용 열람실로 들어갔다.

그녀의 자리까지 걸어가는 동안 무수히 많은 눈빛들이 나에게 날아와 꽂혔다.

그녀의 책상까지 걸어가 음료수를 놓고 다시 걸어 나왔다.

오히려 그녀가 더 부끄러워하며 책상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지금은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세상 그런 민폐가 없었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때는 머리에 떠올리면 실천하는 철부지 고1 남학생이었다.

나는 달서구에 살고 그녀는 동구에 살았다.

표현하자면 대구의 왼쪽과 오른쪽 끝에 살았다고 보면 된다.

거기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 달라 주중에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아

2주에 한 번, 혹은 3주에 한번 정도 만났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드디어 그녀와 영화를 보기로 한 날이 왔다.

명절이면 나오는 나 홀로 집에의 주인공 맥컬리 컬킨과

안나 클럼스키가 주인공으로 나온 사춘기 소녀의 성장기를 다룬

마이 걸이라는 제목의 영화였다.

92년도에 유행했던(대구에서만?)

블랙진에 나이키 농구화, 폴로 스타일 셔츠를 입고...

무스로 머리를 세우고는 약속 장소인 동성로로 갔다.

당시에 고등학생들이 가는 경양식집으로 유명했던(이름이 기억이 안 남)

식당에서 만나 치킨가스를 시켜 먹었다.

92년도에 2명이서 치킨가스와 영화를 보는

비용이 15,000원 정도였던 거 같다.

당시 자장면 가격이 1200~1500원 정도였으니 고등학생에게는

꽤 사치스러운 데이트 비용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밥을 먹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시선은 온통 그녀의 손에 가 있었다.

영화가 시작하고 그녀의 손을 잡을까 말까 하는 생각만 한 시간이 넘게 고민했다.

드디어 결심을 하고 손을 잡으려고 하는데

그녀가 갑자기 콜라컵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겨 잡으면서

다시 한번 타이밍을 놓쳤다.

그리고 영화가 끝이 나고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영화 제목과

동일한 마이 걸이라는 제목의 영화 주제가가 흘러나왔다.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그녀의 왼쪽에 있는

콜라컵을 빼앗듯이 잡아채고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고민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잡았을 때의 설렘과 떨림은

그날의 그 기억이 내 인생에 다시없을 온전히 '처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

조금 놀란 듯 한 그녀의 손을 주제곡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 잡고 있었다.

영화가 끝이나 일어서면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 잡았던

손을 아쉽게 놓을 수밖에 없었다. 손 한번 잡았을 뿐이데 할 말도 줄어들고

마치 주변의 공기가 변한 듯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그녀의 집으로 가는 버스를 같이 타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녀의 집 앞 정류장에 내려서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부끄럽기도 뿌듯하기도 한 감정의 여운이 오랫동안 내 마음에 맴돌았다.

그 이후에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남이 이어졌고,

다음 만남 사이의 공백기에는 편지를 써서 부쳤다. 학교 쉬는 시간...

집에서 여유가 있는 시간에는 그렇게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한 번에 열 장 이상의 편지를 써서 붙이곤 했는데

나중에 쓰다 쓰다 쓸 내용이 떠오르지 않으면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이나 시집에서 좋은 내용을 찾아 인용했다.

한 번은 편지 백장을 써서 편지봉투 10개에 나눠 담고

그녀의 집 우체통에 직접 배달한 적도 있다.

그녀의 답장 편지에 쓰인 집 주소만 가지고

고등학교 절친과 함께 지저동을 샅샅이 뒤졌고 그녀의 집으로

추정되는 곳의 우체통에 우표 없는 편지를 배달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갈 때 그녀는 이별을 통보했다.

수능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시기에 나는

첫사랑과의 이별이라는 시련을 동시에 겪었다.

가끔 시내를 갈 때마다 혹시나 만날까 옷도

한번 더 신경 쓰고 우연히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지금 생각하면

지질한 생각과 행동을 반복하며 그 시절을 보냈다.

우연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녀의 집 앞 정류장에 서 있어도 봤지만

한 번도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인연이 아닌 사람은 길목을 지키고 있어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한참이 지나고 우연히 친구반에 놀러 갔다가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친구의 친구가 놀러 가서 찍었다는 사진 속에서....

가수 이승철의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그 사진 속에서 그녀는 그렇게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후에 우연히라도, 길목을 지켜서라도 만나고 싶었던 그녀를 두 번 만났다.

첫 만남은 친구의 대학원서 접수를 위해 갔던 곳에서

거짓말처럼 그녀를 만났다.

친구가 입학처에 서류를 접수하러 간 사이 정문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학교 정문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처럼

저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이 한 번에 그녀라는 느낌이 왔다.

나도 모르게 골목 안으로 숨었다가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느끼며

그 짧은 시간 아는 척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수 백번 고민했다.

한참을 그렇게 고민하다 걸어오는 그녀 앞에 섰다.

깜짝 놀라는 그녀는 어색하게 안부를 물어왔다.

간간히 내 소식을 들었다는 그녀에게 그 오랜 시간 만나면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되뇐 말을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거짓말 같은 만남을 뒤로하고

나는 원서 접수를 마치고 온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원서접수를 하러 온 친구가 바로 지저동의 그녀 집을 같이 찾아 헤메 주었던 그 녀석이다.

"와 말이라도 하지...

그리 보고 싶다고 하더만 빙시처럼 한 마디도 못했나.."라는

친구의 말에 "그냥..... 니 따라왔으니 밥이나 사라 인마"라고 얼버무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난 날이 2002년이었던 것 같다.

대한민국에 월드컵 열풍이 휘몰아친 그 해에 그녀를 만났다.

당시에 아이 러브스쿨이라는 사이트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 중이었다.

싸이월드의 모델이 되었던...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는 '그때 그 아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라는

공통된 호기심을 실제로 구현했기 때문에

거의 천만명에 가까운 사람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이트를 매개체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실제로 어렸을 때 첫사랑과 재회해서 결혼한 커플도 많이 생겼고,

동창모임을 통해 연인으로 발전하는 사람도 많았다.

어느 날 사이트 메신저를 통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왔다.

'혹시 내가 알고 있는 00고 서예부 000 맞니?' 란 메시지에

나는 '네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이 맞아'라고 답장을 했고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의 우연한 재회 이후 8년이 흘러 우리는 다시 만났다.

당시 나는 서울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임용고시에 불합격한 후

대구로 내려와 기간제 교사를 하고 있었다.

8년이 지나 동성로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고

서로에게 흘러간 시간의 길이만큼 각자 살아온 삶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공통된 추억과 같은 추억이지만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부분을 공유하며

그렇게 한참을 얘기하고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내 공유하고 있는 추억에 대한 이야기 소재가 떨어졌고

간간이 어색함이 흐르며 대화가 끊어졌다.

그리고 어색한 시간이 반복되는 시간이 잦아질 때쯤

우리는 서로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됐음을 말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서로의 앞날에 대한 행복을 기원하며 그렇게 8년 만에 이루어진

첫사랑과의 재회가 끝이 났다. 그녀는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고,

그때 나랑 헤어지고 만났던 나의 친구의 친구랑 여전히 잘 만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끔씩 문득문득 궁금했던

그녀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해결됐다는

기쁨보다는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아련함 하나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

나는 이 첫사랑 얘기로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방송 출연을 했었다.

당시 가수 이소라가 진행하는 음악도시라는 라디오가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사연을 보내는 코너에서 일등을 하면 미니골드에 나온 작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상품으로 줬다.

당시 여자 친구 생일이 다가오고 있어

상품에 눈이 멀어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사연으로 보냈다.

물론 저 위에 쓴 것보다 자세하고 감수성 넘치게 썼던 것 같고

드디어 사연이 소개하는 코너가 있는 날이 왔다.

숨죽이며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3등부터 순서대로 사연이 소개되었는데...

드디어 1등 사연만 남겨 놓은 상태에서 당시 사연 코너를 담당했던

가수 이승환 씨가 "제가 뽑은 오늘의 장원은

대구에서 00 씨가 보낸 첫사랑에 대한 사연으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해다.

라디오를 듣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고

내가 쓴 사연은 전국에 생방송되었다. 연락이 끊겼던

고등학교 동창들이 혹시 이거 니 얘기 아니냐며 연락이 왔었으니

역시 방송의 힘은 무섭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여자 친구를 만나 상품으로 받은 미니골드 다이아몬드 목걸이 건넸다.

선물을 받고 좋아하던 여자 친구는

내가 이 목걸이를 어떻게 받았는지 설명을 듣고 이내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 다른 여자랑 한 연애 얘기로 받은 상품을

한테 선물로 주는 거야"라고 여자 친구가 화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렇구나. 나는 상품만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니 옛날에 좋아했던 여자 얘기를 구구절절 써서 받은 거였구나'라는

뒤늦은 깨달음이 왔다.

선물로 점수 한 번 따려고 라디오 방송에도 나왔는데 결과는 그렇게 끝이 났다.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청춘이었던 나는 몇 년만 지나면 50을 바라보고 있다.

나 스스로 선명하다고 생각하는 기억도,

상대방의 기억 속에는 다르게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한 추억도,

조금씩은 다르게 기억된다.

모든 기억의 관점은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내 감정은 순수하다.

사랑에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사랑하기 위한 조건들이 필요해진다.

직업, 집안 환경, 관심사, 경제적 조건, 취미 등.

어느 정도의 조건 하에 사랑을 시작하거나

시작할 준비를 한다.

너에게 달려가는데

아무런 이유가 필요 없었기 때문에

첫사랑은 소중하고,

그래서 잊히지 않나 보다.

그때의 마음은 진심이 분명하다.

현재는 추억이고, 기억일 뿐이다.

사랑은 순수한 감정인가,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기억인가.

이유가 필요 없는 감정에 휩싸여 다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오랜 시간 부딪히고, 부서지고

그 와중에 수많은 시련을 함께 이겨냈다.

그리고 그것은 공유하는 추억이 됐고,

기억으로 남았다.

이 기억과 추억은... 이제는 타오르는 감정만큼 중요한 의미가 되었다.

다만, 사랑하는 감정과

기억의 선후와 경중을 모를 뿐이다,

첫 아이를 출산하는 아내를 보며,

마음속으로 했던 다짐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때로는 잊고 지내고,

다시금 기억해내며....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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