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을 두드린, 그리고 두드릴 모든 게스트들에게

by 연승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창밖에는 어둠이 내려앉았습니다. 오늘 머무는 게스트는 여행의 고단함을 풀며 잠자리에 들었겠죠. 고요한 시간 저는 지난 시간 제 문을 두드린 게스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 붑니다.


이름도, 국적도, 얼굴도 달랐던 당신들은 제 작은 공간을 거쳐 간 저의 스승입니다. 가장 먼저, 그날의 떨림을 기억나게 해 준 나의 첫 번째 게스트, 미국에서 오셨던 가족이 떠오르네요. 비가 정말 많이 쏟아지던 날, 서울역 앞에서 잔뜩 긴장한 채 서 있던 제가 있습니다. 호스트라는 이름이 낯설어 쭈뼛거리던 제게 그들은 환한 미소로 “너는 잘하고 있어, 너는 충분히 자격이 있어”라고 말해주셨죠. 체크아웃 후에 남겨주신 그 장문의 리뷰는, 저에게 단순한 후기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고,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을 수 있게 해 준 단단한 디딤돌이었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저는 비로소 진짜 호스트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소중한 친구가 되어준, 필리핀 세부에서 오신 가족들이 기억나네요. 우리는 고작 며칠을 함께했을 뿐이지만, 마음을 나누는 데에는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주고받은 것은 방 열쇠와 숙박비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진심 어린 관심이었습니다. 아직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들의 안부를 묻고, 서로 보내준 사진을 보면서 웃습니다. 국경을 넘어 이어지는 이 인연이 저에게는 천만 금보다 귀한 자산입니다. 언젠가 제가 세부로, 혹은 그들이 다시 서울로 오게 된다면 그땐 호스트와 게스트가 아닌 오랜 친구로서 만나고 싶네요.


저를 아프게 했던 게스트들도 기억이 납니다. 제가 베푼 모든 호의를 권리인 양 누리고도, 차가운 비수 같은 말과 악성 리뷰로 제 마음에 상처를 냈던 분들이죠. 사실, 아직도 그 상처는 회복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억울함은 문득문득 떠오르고, 마음이 쓰라립니다. 그들이 남긴 별점 테러에 매출이 급감했고, 저는 며칠 밤을 설치기도 했지요. 하지만 크게 원망하지는 않겠습니다. 덕분에 저는 세상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그리고 상처받지 않고 나를 지키는 법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사람을 대하는 법’과 ‘단단해지는 법’을 가르쳐 준, 조금은 아픈 스승이었습니다. 부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기억만 챙겨갔으면 좋겠네요. 다른 여행지에서는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항상 행복하시길 빕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여전히 부족하고 서툰 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약속할 수 있는 건 단 하나입니다. 새로운 게스트분들이 제 숙소의 문을 여는 그 순간을 위해, 저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며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책은 저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결국 완성되는 것은 앞선 게스트분들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닦아놓은 바닥 위에서, 제가 잘 정리해 놓은 침대 위에서, 게스트분들이 아름다운 추억을 쌓아 올리길 바랍니다.


저의 작은 공간이 많은 여행자들의 긴 여행길에 따듯한 쉼표가 되기를. 그리고 훗날 “서울은 참 따듯한 곳이며 친절한 사람이 많은 곳’이라고 기억하는 그 한 조각에 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전 28화다시 오늘의 게스트를 맞이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