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근차근 Mar 30. 2022

가장 많이 져 본 선수

다시 일어서기 위해 땅을 짚는 것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입 농사를 평생 짓고 살아왔다. 엄마 아빠가 내게 어렸을 때부터 마치 인생의 만병 통치약처럼 해줬던 말 때문이다. ‘이루고 싶은 일,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항상 입으로 먼저 말해. 그리고 마치 네가 그 세계의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해라. 그럼 언젠가 네가 진짜 그 일을 하고 있을 거야.’ 그래서 학교 다닐 때, 내가 객실 승무원을 준비했던 이야기는 학과에서 꽤나 유명했다.



 입 농사는 ‘내가 이걸 꼭 해야 해!’라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지만 부작용이 있다. 망신살이라고 해야 하나? 몇 년 내내 읊고 다녔던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그 순간 찾아오는 부끄러움이 딱 부작용 같았다.



사춘기 중2병 시절엔 전국 댄스 대회에 나가야 한다고, 선생님께 매번 연습 갈 수 있게 하교를 빨리 시켜 달라며 졸랐다. 그리고 지역 예선에서 탈락했다. 부끄러웠다. 고등학교 때는 3년 내내 의상학과 가서 아트 디렉터가 되겠다고 소문을 냈다. 심지어 서울 패션쇼도 가곤 했다. 하지만 수능 후 나는 성적에 맞춰 예술과는 거리가 먼 상경계열로 진학했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대학생의 나는 또다시 승무원이 되겠다고 말하고 다녔었다.  



그때 가끔 항공운항과 학생들의 머리를 보면 나도 눈대중으로 승무원 머리를 따라 했는데, 그 소가 핥은 듯한 머리를 하고 강남대로를 걷고, 공항에 가보기도 했다. 만약 승무원이 안되면 이런 내 입 농사에 망신살이 오소소 돋을 걸 뻔히 알았지만, 나는 어쩐지 그러고 싶었다. 부끄러움에 대한 면역이 생겼다고 오만했기 때문이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겠다던 굳센 희망과 정반대로, 4학년 막 학기 여러 항공사의 승무원 공채에서 무려 4번이나 탈락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만든 공채 가뭄까지. 이번엔 진짜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또다시 실패하는 건가? 부모님이 내게 했던 인생의 만병통치 구절은 생각할수록 원망스러웠다.



아니, 분명 입으로 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거라며, 언젠가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을 거라며! 인천 국제공항에서 아르바이트하며 관찰하고, 인터뷰하고, 해외 교육봉사, 대외활동, 학점, 어학연수 기타 등등 객실 승무원을 4년 동안 생각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란 노력은 다 했는데, 그래도 안된다고? 마치 하나님이 나만 딱 골라서 “응~ 넌 객실 승무원 안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앞 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안했고 그간 입방정 떤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은 결국 내가 실패했고, 나는 틀렸다는 생각에 휩싸이게 했다. 그런 내게, 은사님의 한마디는 나의 모든 긴장과 불안을 이완으로 바꾸게 했다.



“세상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은 없어.

다 그럴 때가 됐기 때문에 들리고, 보이고, 경험하는 거야.


 내가 지금 이 말을 너에게 하는 것도,

이럴 때가 돼서 하는 거겠지? 탈락도 합격도 그저 순간일 뿐이야.


실패가 쌓이면 경험이 되고,

경험은 너에게 또 다른 기회를 열어줄 거야.


틀려도 괜찮아.

다시 일어서기 위해 땅을 짚는 것만으로도 넌 이미 충분히 잘하는 거야.”



 처음 했던 것들은 대부분 실패로부터 시작했다. 15살, 전국 댄스대회를 소문내던 나는 실패했다. 하지만 1년 후, 나는 다시 한번 입 농사를 지으며 그땐 본선에 나가 은상을 받았다. 19살, 아트디렉터의 꿈을 소문냈던 나는 결국 의상학과 대신 상경계열을 선택했다. 그때는 마냥 내 꿈이 좌절됐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에서 의상학과 교양수업을 하나 듣고 ‘와 학교 고를 때 선견지명이 있었나? 경영학과 오히려 좋아.’ 하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결국 나의 오랜 입 농사 습관은 실패 후 찾아오던 ‘부끄러움’을 자연스럽게 또 다른 도전의 계기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좋은 도전의 루틴이 됐던 셈이다. 엄마 아빠 말대로 입농사는 인생의 만병통치약이였다.



이야기가 많이 길었죠?

이 긴 이야기를 읽을 때가 됐기 때문에. 그래서 읽고 있는 겁니다.


드라마 스물다섯스물하나를 보며 이 대사를 마음에 담았어요.


“너는 평가전에 나온 선수 중에 가장 많이 져 본 선수야.

진 경험으로 넌 지금까지 계단을 쌓아 올린 거야

생각해봐 이제 네 계단이 제일 높다.

천천히 올라가서 원하는 걸 가져.”


우리의 계단은 우리도 모르는 새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천천히 올라가고 또 내려가며 부끄러움을 당당히 마주 보세요!


당신은 이미 잘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행운의 안단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