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 보면 희극
객실 승무원에겐 비행 시 반드시 소지해야 하는 필수 소지 품목이 있다. 예를 들면, 승무원 등록증, 여권, ID card, COM (Crew Operation Management;객실 승무원 업무 교범), 해당 편 입국에 필요한 VISA 등등이 해당한다. 만약 필수 소지품을 단 하나라도 소지하지 않고 공항으로 출근했다면, 그날이 퇴사하는 날이라고 보면 된다…! 코로나 팬데믹은 필수 소지 품목에 아이템을 하나 더 추가시켰다. 바로, 마스크이다.
코로나 시국에 승무원으로서 첫 비행을 시작한 나는, 마스크 없는 비행 생활을 가히 상상할 수도 없다. 지난 2년 간, 마스크는 그야말로 나의 주니어 크루 시절 모든 순간 함께였다.
마스크는 불편함으로 가득 찬 비극 같았다. 첫 번째 비극의 서막, 입사 첫 주. 입사 직후 나와 동기들의 첫인상은 마스크 쓴 얼굴이다. 여기서 잠깐, 당신이 회사에서의 일반적인 출근 복장을 떠올린다면 이 글에 감정이입이 어렵다. 이쯤에서 집고 넘어간다. 나와 내 동기들은 승무원이다. 같은 똥머리, 비슷한 옷, 비슷한 톤의 목소리와 상냥한 말투. 이런 사람이 28명. 하지만 모두 마스크를 쓰고 오로지 눈만 보인다. 멀리서 보면 다 똑같이 보였다.
눈만 보고 동기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누군지 알아봐야 한다니, 내겐 매일이 신서유기 인물퀴즈 시간 같았다. 이름을 잘못 부르면 그대로 얼음이 돼버리는 민망해지는 그런 시간. 그래서인지 우리 동기들은 빨리 친해질 수가 없었다. 이게 다, 마스크 때문이었다.
두 번째 비극, 비상 상황 훈련. 객실 승무원의 안전 훈련은 엄격하고 무섭다. 비상착륙, 비상착수, 화재, 감압 상황 등 항공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비상상황을 직접 시연하고, 그 대처법을 배운다. 이때 목이 터져라 상황별 샤우팅(예: “벨트 풀어! 나와! 짐 버려!”)을 매일 몇 시간씩 외치게 되는데, 마스크는 이런 훈련에 방해 그 자체다. 마스크 없이 소리를 크게 내도 “더 크게!”를 외치는 교관이 있는데, 내 소리를 막는 마스크를 생각하면 한숨만 나왔다.
한 번은 탈출 시연을 하던 동기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정신없이 목청 껏 샤우팅을 하느라 격렬해진 그녀의 구강 움직임 때문에 눈치 없는 마스크가 코 밑으로 쓰-윽 흘러내린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상황에 몰입했던 그녀는 그 와중에 ‘코스크는 안돼!’라는 생각을 했다. 가상의 승객들을 탈출시키며 그녀는 마스크를 다시 쓱 올렸다. 그리고 그 행동 하나 때문에 … 그녀는 교관과 가짜 사나이를 찍게 됐다.
세 번째 비극, 수료 후의 일들이다. 팬데믹 이후 핸드폰 앨범 속 단체사진이라는 말이면 충분하다. 객실 승무원 훈련 수료식, 첫 비행, 마지막 국내선 비행 등등 신입승무원으로서 처음 겪는 크고 작은 일들을 기념하며 남긴 우리의 모습은 하나같이 마스크를 낀 모습이다. 날짜를 확인하지 않으면 오늘 찍었는지, 어제 찍었는지 모를 정도로 변하는 건 머리 모양일 뿐, 마스크는 항상 그대로다.
이렇게 마스크가 가져온 비극을 나열했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그때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난다. 훈련 중 너~무 피곤해 내적 하품이 필요할 땐 마스크만 한 방패가 없었다. 단체사진은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이지만, 그만큼 흑역사 사진이 없다.
마지막으로, 눈만 보이는 동기를 알아보고 천천히 다가갈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 속에서도 희극은 존재했다. 나와 동기들은 비상착수 훈련을 위해 방문한 수영장에서 서로의 눈코 입을 처음 보게 됐다. 심지어 모두가 민 낯에 쫄쫄이 수영복을 입은 채였다. 그때, 우리는 ‘와 너 하관이 이렇게 생겼었구나!’라고 말하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인생은 멀리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마스크도 딱 그렇다. 비록 지금은 불편하지만, 다 지나고 나면 그땐 그랬지 하며 함께 웃을 수 있는 그런 긴 터널 같은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크 씨! 올해는 우리 꼭 헤어지기로 해요.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