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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밋너 Jul 09. 2024

20240701~0707: 지난 주에 뭐 봤니? #3

한 주 동안 보고 읽은 것들의 기록

뉴스레터 때문에 조금 정신 없고 바빠서 많이 못 본 주간이었다. 특히 책 한 권을 다 못 끝낸 게 너무 아쉬운데... 괜히 환경 관련 도발적 에세이 어쩌고 이런 광고 문구에 혹해서 기만적인 에세이를 반쯤 읽다 때려친 탓이다. 대신 지금은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을 읽고 있다.


# 연극/뮤지컬

뮤지컬 <에밀> | 4/5

2024-07-02 20:00 : 박유덕, 정지우

간만에 잘 만든 창작 초연극을 봐서 만족도가 무척 높았던 작품이다. 제목과 포스터에서 바로 알 수 있듯, 드레퓌스 사건과 에밀 졸라에 관한 이야기이며 초반부 다소 단조롭게 흘러가다 결말부로 갈수록 서서히 상승하는 감정의 고조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진실을 가리려는 부당한 악에 맞서 나는 에밀 졸라처럼 외롭게 투쟁할 수 있는가? 바로 이 부분이, 한국인들의 어떤 혁명적 정서를 건드리는 지점이 있다. 인상적인 건 클로드라는 가상 인물의 존재다. 사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쓸 때 가상 인물을 투입해서 극을 매끄럽게 전개시키는 건 꽤 어려운 일인데, <에밀>에서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클로드의 존재가 재미를 더하는 요소로 훌륭하게 사용되고 있다. 음악, 연출, 극본 등 모든 면에서 안정적으로 볼 수 있는 창작 초연극을 정말 오랜만에 봤다는 이유에서도 가산점이 붙는 작품.


연극 <빵야> | 3.5/5

2024-07-04 19:30 : 박정원, 김국희, 오대석, 견민성, 김세환, 금보미, 진초록, 김슬기, 최정우

2024-07-07 14:00 : 전성우, 김국희, 오대석, 견민성, 허영손, 김지혜, 이서현, 박수야, 최정우

나, 김국희라는 나나를 사랑합니다...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김국희에게 나나라는 역할은, 처음 봤을 때부터, 아니 캐스팅이 처음 공개됐을 때부터 몸에 안 맞을 수가 없는 옷이었다. 내게 재능이라는 게 정말 있기는 한 걸까? 되지도 않는 꿈에 매달려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차라리 처음부터 데뷔를 하지 못했더라면 나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었을까? 그런 끝없는 고민을 품에 안고 불안하고 위태롭게 걸어가면서도 씩씩하게 소주 한 병을 들이키며 다 잊고 내일의 꿈에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털털하고 괄괄해보이지만 자기 안의 수많은 불안하고 여린 나나들을 끌어안고 보듬을 수 있는 힘이 있는 배우. 빵야들의 연기도 좋았지만 극을 보는 내내 국희나나에 계속 시선이 달라붙는다. 나의 애배가 된 정우 씨의 길남-신출 연기 역시 두말할 것 없이 좋고. 그리고 또 좋았던 건, 정말 미친 존재감으로 무대광풍처럼 시선을 빨아들이는 세환 제작자의 더블인 허영손 배우가 자기만의 캐릭터를 잘 만들어와서, 김세환의 더블 괜찮을까? 라고 걱정했던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배우들이 너무 잘하고, 배우들이 대본에 갖는 애정이 눈에 보이니까 극 자체에 대한 양가감정에도 불구하고 <빵야>를 바라보는 내 시선도 자꾸만 함께 따뜻해진다.


연극 <일리아드> | 4/5

2024-07-06 19:00 : 최재웅(뮤즈-Dm. 서수진)

지난 시즌 초연 때 3나레이터를 다 봤었는데, 이번 시즌은 모종의 이유로-러시아-우크라이나, 가자, 이스라엘 하마스!- 선뜻 손이 가지 않아 머뭇거리다가 웅나레로 자첫을 하고 왔다. 뮤즈들이 모두 바뀐 것 외에도 극에서 자잘한 변화가 있었지만, 연출적인 부분이나 대사의 가감 등을 떠나 '일리아드가 돌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두 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나레이터가 들려주는 전쟁 이야기(의 일부, 그러니까 The Illiad가 아니라 An Illiad)를 들으며 고대 그리스의 신화 같은 전쟁사와 2024년 현재의 내가 뒤섞이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오직 일리아드만이 안겨줄 수 있는 특별하고도 참혹한 체험이다. '노래'를 부르면서 점점 마모되고 훼손되어 가는 나레이터는 시지프스나 프로메테우스를 떠올리게 하고, '노래'를 들으면서 전쟁의 참상을 추체험하는 객석의 나는 기만적인 자신에 대한 혐오와 그럼에도 터져나오는 슬픔에 잠겨들어 모두 불행해진다. 그렇다, 나는 불행해지기 위해 <일리아드>를 보러 간다.


# 영화/드라마

영화 <핸섬가이즈> | 3.5/5

감독 : 남동협 | 출연: 이성민, 이희준, 공승연, 박지환, 이규형

'이게 되네'. 영화를 다 보고 스텝롤이 올라가기 시작했을 때 내가 느낀 솔직한 첫 감상이다. 터커&데일vs이블을 원작으로 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B급 틴에이저 슬래셔 무비를 베이스로 한 영화가 한국에서 어떻게 다시 태어날까에 대한 우려 섞인 기대가 있었는데 꽤 만족스럽게 보고 나왔다. 공포영화(중에서도 슬래셔 장르)의 문법을 충실히 따라가는 듯하다가 한국식 코미디를 적절히 섞어 방향키를 틀어버리는데, 거기에 <검은 사제들> 같은 오컬트 무비를 얼기설기(하지만 꽤 근본 있게) 붙여 장르적인 '핸섬 프랑켄슈타인'이 태어난 느낌이다. 무엇보다, 대체 이성민은 왜 이런 연기도 잘한단 말인가? 이성민과 이희준의 캐릭터가 너무나 압도적이고, 박지환과 이규형의 감초 연기도 재미있고 무엇보다 봉구가 귀엽고 봉구가 귀엽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도 그랬지만, 동물이 소모적으로 죽지 않는 영화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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