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O2O? 트렌드에 휩쓸리지 말고 본질에 집중하자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만든 회사는 어디일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쪽 분야를 석권한 애플? 아니면 강력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구글? 아니다. 답은 스타벅스다.
스타벅스는 글로벌 커피 프랜차이즈 회사다. 스콧 모우 스타벅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미국 내 스타벅스 매장에서 일어나는 결제 가운데 21%가 모바일 결제라고 밝혔다. 2015년 4분기 전체 매출액 40억 9011만 달러 가운데 10억 300만 달러가 모바일 결제로 처리됐다. 모바일 결제 사용자는 1년 사이 32% 늘어났다. 지난 10월 기준으로 모바일 결제 건수는 한 달에 5백만 번을 기록했다. 2014년 9월 애플페이를 발표하며 모바일 결제 시장을 석권하리라는 포부를 밝힌 애플이 배 아플 만한 성과다.
애플페이를 시장에 내놓은 뒤 애플이 받아 든 성적표는 초라하다. 출시 1년이 지난 2015년 10월까지도 애플페이를 단 한 번이라도 써 본 사용자는 16.6%에 그쳤다. 전자결제 전문매체 <페이먼츠닷컴>이 아이폰6와 6플러스 사용자를 대상으로 벌인 애플페이 수용률 추적 조사에 따르면 사용자 6명 가운데 5명(83.4%)은 애플페이를 써 본 적도 없다고 답했다. 전방위로 금융기관과 유통업계에 로비를 벌이고 제휴를 맺는 애플이니 이 정도로 선전했다고 볼 수도 있다. 다른 모바일 결제 서비스는 수치조차 찾기 힘들다. 스콧 모우 스타벅스 CFO가 지난 11월 열린 모건스탠리 글로벌 소매∙유통 중개업자 콘퍼런스에서 말했다.
제가 장담하건대, 미국에서 모바일 결제 건수로 우리한테 비교할 만한 회사는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애플마저 지지부진한 모바일 결제 시장에서 스타벅스가 독보적으로 선전한 까닭은 무엇일까. 스타벅스의 본질에 충실한 기술을 적확하게 선별해 고객에게 서비스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는 사용자가 모바일 결제를 쓸 경우 효용성을 느끼도록 하는 데 집중한다. 음료값을 간편하게 결제하는 것은 표면적인 장점일 뿐이다.
스타벅스 카드나 모바일 앱으로 음료값을 치르면 연결된 고객정보로 손쉽게 쿠폰을 적립할 수 있다. 모바일 앱을 쓸 경우 내 취향에 맞는 음료 레시피를 저장해 두고 간단히 주문하는 것도 된다. 매번 “그란티 크림 프라푸치노에 샷 1잔 추가하고 초콜릿 자바 칩은 반만 갈아 넣고 반은 휘핑크림 위에 얹고 에스프레소 휘핑은 조금만, 초코 드리즐은 많이 뿌려주세요”라고 말할 필요 없이 그냥 저장해둔 레시피로 주문을 넣으면 종업원이 POS에서 주문 내역에 적힌 레시피대로 ‘슈렉 프라푸치노’를 만들어 준다. 주문대 앞에 길게 줄 설 일도 없다. 모바일 앱에서 사이렌오더 기능을 쓸 경우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있으면 음료가 완성되고 난 뒤에 알려준다. 스타벅스는 한발 더 나아가 올해 3월부터는 배달 스타트업 포스트메이츠(Postmates)와 파트너십을 맺고 시애틀에서 고객이 주문한 커피를 배달하기 시작했다.
커피라는 상품을 소비하는 경험을 더 유쾌하고 편리하게 만들어주니 고객은 기꺼이 스타벅스가 제시한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이용한다. 스타벅스에 따르면 전체 결제 가운데 3분의 1 이상은 스타벅스 앱 안에 저장해둔 디지털 카드나 충전식 스타벅스 카드로 이뤄진다.
올해 한국 IT업계를 사로잡은 화두는 핀테크와 O2O였다. 하지만 두 분야는 상당히 동떨어져 보인다.
한국 핀테크 시장은 쏠림현상이 심하다.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삼성페이, L페이, SSG페이, 페이코, 페이나우, H월렛, 토스페이 등 간편결제 서비스만 20여 개 달한다. 고객 접점을 확보한다는 전략적 이유로 많은 회사가 간편 결제 서비스에 뛰어드는 이유는 이해할 만하지만 단순히 결제를 쉽게 만든다고 사용자가 돈을 더 많이 쓰지는 않을 테다.
국내에서 가장 선도적으로 핀테크와 O2O를 접목하는 곳은 카카오다. 카카오 선물하기부터 적용된 카카오페이는 외부 쇼핑몰과 제휴 앱으로 세를 넓혔다. 최근 내놓은 고급 콜택시 서비스 카카오블랙에서는 카카오페이로만 요금을 받는다.
이 밖에는 대규모 물류 인프라를 확충해 ‘로켓배송’에 나선 쿠팡이나 YAP, 시럽 같은 모바일 지갑 정도가 눈에 띈다. 모바일 지갑 서비스가 사용자 위치정보와 구매정보, 간편 결제를 접목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스타벅스만큼 핀테크와 O2O를 유기적으로 연동한 서비스는 보이지 않는다. 카카오페이조차 결제정보를 미리 입력해두고 불러와 결제 과정을 간편하게 만드는 것 이외에 어떤 이점을 주는지 사용자로서는 느끼기 어렵다.
스타벅스가 한국에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사용자는 기술적 완성도를 보고 서비스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용자는 서비스가 주는 효용성을 보고 판단한다. 충분한 혜택을 얻는다면 사용자는 그 서비스를 계속 쓴다. 그 혜택은 결제 과정의 간편함이거나 적립의 편리함일 수 있다. 모바일 앱을 쓰면 할인된 가격을 제시하거나,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도 있겠다. 이런 면에서 사용자에게는 핀테크∙O2O라는 분류는 의미가 없다.
박민우 청강문화산어대학교 모바일스쿨 교수는 ‘O2O 옴니채널과 커머스를 위한 핀테크 서비스 전략 방안’이라는 보고서에서 최근 핀테크 열풍이 O2O 환경 변화에서 시작했다고 풀이했다. 모바일이 가장 큰 고객 점접으로 떠오르니 글로벌 전자상거래 업체가 앞다퉈 옴니채널 전략 속에 핀테크를 활용한다는 게 박민우 교수가 내놓은 분석이다.
보고서에 나온 알리바바 사례를 살펴보자.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는 B2B 쇼핑몰 알리바바닷컴과 B2C 오픈마켓인 알리익스프레스(타오바오)를 열고 중국 사회에 인터넷 쇼핑이라는 생활양식을 대중화시켰다. 중국의 물류 인프라가 엉망이었기에 직접 물류망을 꾸리고 나섰다. 신용카드 같은 신용 거래 시스템이 정착되지 중국 사회에서 전자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알리바바는 자체 결제 서비스인 알리페이를 만들었다. 알리페이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 중국 전자 결제 시장에서 70%를 알리페이가 독차지할 정도다. 알리페이 가입자는 8억 명, 하루 평균 거래액은 1조 8천억 원에 달한다. 또 소매 금리가 기업 간 금리보다 높은 중국 금융시장의 특수성을 십분 활용해 편리하게 돈을 넣고 뺄 수 있으면서 은행 예금보다 훨씬 높은 이자를 제공하는 온라인 MMF 상품 위어바오를 만들었다. 위어바오는 1년 만에 100조 원이 넘는 투자금을 끌어모으며 알리바바를 단숨에 자타공인 핀테크 회사로 자리매김시켰다. KPMG가 선정한 올해 최고 핀테크 업체 가운데 1등도 알리바바가 세운 온라인 보험사 종안(Zhongan)이다.
알리바바 역시 스타벅스처럼 사용자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으로 핀테크와 O2O를 끌어안았다. 물류망이 형편없는 중국 땅에서도 집에 앉아 간편하게 상품을 배달받을 수 있게 하자 중국인은 알리바바와 알리익스프레스를 쓰기 시작했다. 신용카드가 없는 고객도 온라인 쇼핑몰을 쓸 수 있게 알리페이를 내놓자 이들은 적극적으로 새 결제수단을 썼다. 이제 중국에서는 택시비도 알리페이나 텐페이 같은 모바일 결제로 낼 수 있다고 한다.
핀테크와 O2O 전략을 구사하는 이유는 사용자 접점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카카오페이로 기프티콘을 사 선물하기 시작한 사용자는 다른 곳에서도 카카오페이를 쓸 가능성이 커진다. 이들을 다른 사업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또 사용자의 결제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할 경우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 스퀘어는 스퀘어 POS를 쓰는 소상공인의 자금 흐름을 파악해 소액 대출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퀘어 캐피털(Square Capital)이다. 스퀘어 POS 단말기로 수집한 거래 내역을 바탕으로 신용도를 평가해 하루 만에 대출금을 계좌에 넣어준다. 현금 흐름에 문제가 생긴 소상공인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서비스다.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라는 사업 모델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와이컴비네이터 샘 알트만 대표는 그간 스타트업에게 전한 조언을 모은 ‘스타트업 플레이북(Startup Playbook)’에서 성공한 기술기업의 비결은 단순하다고 말한다. “모든 성공한 기술 기업은 단 하나의 공통점을 지녔다. 모두 위대한 제품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위대한 제품이란 사용자가 사랑하는 제품을 뜻한다. 20개가 넘는 간편 결제나 각종 O2O 서비스 가운데 한국 소비자가 애용할 만한 서비스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해당 기업의 핵심 가치를 관통하는 서비스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면에서 눈에 띄는 곳은 카카오나 네이버, 삼성이나 LG 같은 기술 분야에 강자가 아니다. 오히려 국내 시장에서는 신세계 SSG페이나 롯데 L페이가 더 활약할 여지가 커 보인다.
신세계의 유통 시장 점유율은 백화점에서 20%, 대형 할인마트에서 30% 정도다. 모든 국내 카드회사와 연계된 것은 물론이고 신세계포인트나 신세계상품권도 SSG페이 생태계 안에서 활용할 수 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결제부터 현금영수증 등록, 포인트 적립, 쿠폰 사용까지 SSG페이로 단박에 처리할 수 있다. 신세계는 오프라인 쇼핑 시장의 우위를 모바일 결제 서비스로 강화하고, 나아가 모바일 시장으로 고객을 이끌어오는 구조를 짰다. 롯데 L페이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자사 유통망 안에 고객을 묶어두는 차원에서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활용한다. 일명 옴니채널 전략이다.
두 거대 유통사의 움직임에서 스타벅스 커피 향이 묻어난다. 스타벅스가 보여준다. 생태계를 만드는 것은 뛰어난 기술력이나 시류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순발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사람이 모이도록 하는 것, 이게 유일한 비결이자 해법이다. 사람을 모으려면 그들에게 몸으로 느껴질 만한 혜택을 줘야 한다. 한국에서도 무릎을 탁 칠만한 서비스가 나타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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