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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night and Oct 29. 2023

용서

Snoot 9-10월

S는 설국열차마냥 길다란 복도로 이어진, 우리 아파트 옆옆집 동갑내기 친구였다. S네는 부자였다. 성악 교수인 S네 어머니는 늘 차로 10분 거리인 삼풍 백화점에서 쇼핑을 했다. 그 날 오전도 S 어머니는 삼풍 백화점을 다녀왔는데, 컨디션이 너무 나빠 평소보다 일찍 백화점을 떠났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여느 날처럼 학교에 다녀와 S네 집에 놀러가 있었다. 어디든 달고 다녔던 내 남동생, S, 그리고 일하시는 아주머니도 함께 머리를 짚고 귀가하는 S어머니를 맞이했다. 거실에는 TV가 켜져 있었는데 몇 시간 뒤, TV에 삼풍 백화점 붕괴 뉴스가 속보로 중계 됐다. 그 집 모든 사람이 말 없이 텔레비전 화면에 눈을 고정한 채 붙박인 듯 그대로 서 있던, 1995년 6월 29일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


2014년 4월 16일 오후, 나는 외국계 회사의 역삼동 사무실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구내 식당의 커다란 TV에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뉴스가 떴다. 식당을 가로질러 내 자리로 가다 말고 회사 동료들과 잠시 속보를 지켜봤다. 곧이어 '전원 구조'라는 헤드라인이 떴다. 우리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몇 시간 뒤 '전원 구조'는 완전히 오보이며 구조 작업이 아주 더디다는 사실을 인터넷을 통해 알았다. 그래도 그 구조 작업이란 것이 몇 주간 계속 되리라는 건 상상도 못했다.


작년 10월 28일 금요일 밤, 같이 코미디 오픈마이크를 꾸리는 사람들과 같이 이사한 E후암동 집에 모였다. 스탠드업 코미디의 방향성, 철학 같은 이야기가 세시간을 넘어 가자 E가 이태원으로 산책 가자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명목은 주중에 오픈마이크가 열리는 해방촌이며 해밀턴 호텔 앞 클럽들을 둘러 보자는 것이었지만, 사실 다들 말이 너무 길어져서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서였다. 20대부터 50대까지, 하나같이 추레한 차림새로 후암동에서 이태원까지 느적느적 걸어가는행색들을 보며 나는 “추석에 할일 없는 친척들끼리 동네 마실 나온 것 같다 ”고 키득댔다. 해밀턴 호텔 앞에 다다르자, 보도블럭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에 꼬인 개미 떼처럼 사람이 많았다. 우리 코미디 친척들은 서로의 가방을 붙잡고 그나마 틈이 있는 공간들을 비집고 나아갔다. 해밀턴 호텔 블럭을 벗어나 다시 녹사평역까지 걸어서 되돌아온 우리는 시간도 늦고 더 할 일도 없어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다음날 29일 밤 집에 있는데 재난 문자가 연신 울렸다. 해밀턴 호텔 앞에서 압사 사고가 발생했으며 사상자와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카카오톡과 슬랙의 알람이 쉼 없이 올렸다. 혹시 지금 이태원에 있는지 서로 묻는 메시지들이었다. 코미디 멤버 중 유일하게 외국인인 W가 그 날 서울의 외국인 친구들과 모인다고 한 것이 퍼뜩 떠올랐다. “W, 혹시 지금 이태원에 있는 거 아니지?” 다급하게 단체 채널에 메세지를 보냈다. 몇 분 뒤 W는 지금 홍대 있다고 어리둥절한 답장을 보냈다. 30일 자정을 넘긴 밤, 사망자수가 업데이트 되는 재난 문자가 새벽 세 시까지 내내 지옥처럼 울렸다.


용서라는 것이, 아직도 제대로 위로받지 못한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 재난을 초래 하는 시스템을 만든 사람들과 타인의 불행의 신나게 심판자 노릇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용서 받을 자격이 있을까. 단순히 불행의 제비를 뽑지 않았기에 오늘도 살아난 내 자신을, 나는 매번 용서 할 수 있을까. 세월호 생존 학생들은 단원고를 졸업할 때까지 아무도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퇴 하지 않았고 간호학과, 물리치료학과 같이 이타적인 전공을 선택한 학생들이 많았다고 한다. 문득 명치에서 차갑고 딱딱한 덩어리 같은 의문이 솟구친다. 이 세상은 우리의 용서를 바라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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