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 이야기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윌 듀런트,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by Good night and


바닥 난방의 진가를 느낄 수 있는 어느 겨울 밤, 진공 청소기도 돌리고 청소포로 더 고운 먼지까지 다 닦아 냈다고 생각하고 온기가 도는 바닥에 누웠는데 눈에 머리카락 한 두 가닥이 들어왔다. 바닥에 누운 채 가까이서 보니 바닥에는 청소포에서 묻어나온 물기 자국으로 길까지 나 있었다. 엄청난 일을 이루겠다는 것도 아니고 말끔한 방바닥을 만드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이 이렇게까지 힘든 이유가 대체 뭐지. 익숙하고 깊은 절망감이 느껴졌다. 내가 아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했지만 그 결과가 이 세상에 충분치 않을 때 나는 어떡해야 하는걸까. 머리카락이고 먼지고 한 톨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청소해야 하나. 그냥 모든 게 내 뜻대로 될 수는 없다고 포기하고 굴러다니는 머리카락 위에서 즐겁게 살면 되는 걸까. 애초에 왜 이렇게 청소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던 거지. 살다 보면 이유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이유가 없으면 앞으로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모든 것이 쓸모없고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는 허무함은 시시 때때로 우리를 덮쳐 온다.


윌 듀런트가 한 익명의 젊은이가 자신에게 던진 이 질문을 여러 사람들에게 다시 던진 후 받은 답으로 엮은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에는 삶에 대한 여러가지 개인적 견해들이 나온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문장들도 많고 20세기 초의 백인들이 뭘 알았겠냐 싶은 내용도 더러 있다. 철학적 질문에 대한 깊은 고찰을 논리적 단계 별로 엮어가며 논증하는 책은 전혀 아니고 그냥 가벼운 수필집이라고 생각하면, 다큐멘터리처럼 삶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한번 쯤은 읽어볼 만한 책이다. 책 속에서도 철학자와 작가들보다 피아니스트, 영화 제작자, 탐험가 들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다. 어떤 철학적 논증이나 종교적 추상보다도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감정들을 투박하고 거친 언어로 쓴 이야기가 더 재밌는 걸 보면 나도 유물론자로 분류 되려나 싶다.


뻔하지만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없다. 듀런트에게 이 질문을 던진 젊은이도 아마 그 답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른다고 해서 다 죽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답을 못 찾으면 자살하겠다고 공언하고 사라진 그 젊은이도 어쩌면, 어느 날 거울 속에서 자신의 늙어버린 얼굴에 깜짝 놀랄 때까지 살았을 지도 모른다. 우리를 삶에 붙들어 두는 것은 삶이 가지는 목적성이 아니라 본능적이고 강력한 죽음에의 공포라는 듀런트의 말에 나는 적극 동의한다. 죽음을 결심한 타인을 말리고 싶은 마음은 자살에 대한 가치 판단에서 우러난 것이 전혀 아니다. 가장 원초적이고 거대한 공포심마저 느끼지 못하게, 본능적인 감각마저 마취시킬 정도의 고통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감정이입이다. 그도 나와 같은 인간인데, 무엇이 인간을 그렇게 고통스럽게 할까. 우려인 동시에 연민이다.




무언가를 위해 태어나고 어떤 의미를 위해 살아간다는 건 증명 불가하고 실질적이지 않은 명제다(말했듯이 내 관점은 어떤 면에선 유물론적이다). 급작스럽게 허무하고 권태로울 때는 그런 위로도 필요한 법이지만, 위로를 받지 못했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살아야 할 필요도 없다면 굳이 죽어야 할 필요도 없지 않나? 극단적 환경주의자로서 한 명의 목숨이라도 덜어야 지구의 수명이 늘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굳건하지 않은 이상 말이다. 삶의 의미의 필요성에 대해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어떤 의미를 위해 산다고 했을 때 그 의미가 사라진다면 어떡할 것인가? “행복하기 위해 산다"가 인생의 의미라면 불행한 순간은 바로 죽어야 하는 순간일까?


말했듯이, 답은 없다. 삶의 진리에 대해 단언할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삶의 의미가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낸 사람이 있다면, 축하한다. 그 의미를 잘 믿으며 살아보길 바란다. 아직 못 찾았거나 이미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해도, 상관없다. 어쨌든 살아나가는 모양새는 이러나 저러나 매한가지고 의미 같은 것은 별로 상관없다.


이 책에서 나를 감격하게 한 것은 삶의 진리에 대한 현자들의 언어가 아니었다. 모든 생의 의욕을 잃고 죽음을 생각하고 있으니 삶의 의미를 알려 달라며 편지를 보낸 생면부지의 독자들에게, 원하는 답을 줄 수는 없지만 꼭 살아서 나를 만나러 와달라, 내게 삶의 기쁨을 주는 아름다운 들판을 걸으며 함께 이야기 해보자, 라는 말이 적혀있던 듀런트의 답장이 나를 감격하게 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든 모르든, 우리는 태어난 시점에서 이미 세상의 일부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연결 돼 있다. 그것만큼은 정확한 사실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