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머리를 기를까 말까. 머리가 어깨 가까이 오면 한 번씩 하게 되는 고민이다. 작년에 짧은 단발로 자르며 머리카락 기부를 했고 그 뒤로 한 번 더 잘랐다. 그 시원한 기분이 가끔 그리워졌다. 다시 상큼하게 단발로 갈까 아니면 한 번 더 길러볼까.
지금 이 자리는 이름하여 '바보 존'.
어떻게 해도 스타일이 예쁘게 나오지 않는다. 손질에 크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니어서 머리를 감고 툭툭 말리는 것이 전부다. 안쪽으로 말아 넣던지 바깥쪽으로 삐쳐 말던지 어깨에 닿는 순간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뻗치게 된다.
어쨌든 기르기로 했고 그 모습이 자연스러우면 좋겠다는 바람. 생머리인 엄마가 부럽다고 했던 풍성한 반곱슬의 살랑거리는 머리처럼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하나씩 올라오는 희끗거리는 머리카락과 삐친 머리가 눈에 거슬리는 날이 더 많아졌다. 일년에 한 두번 가는 미용실조차 가지 못했더니 날이 갈수록 견디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그런 시기가 있다.
어떻게 해도 되는 것 같지 않고 이대로 계속 가면 되는 건지 혼란스러운 시기. 방향이 이쪽이 아닌 건가, 아니라면 어디로 바꾸어 가야 하는 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 시기. 특히 여러가지 일이 겹치거나 몸이 안좋을 때 그렇게 혼란스러운 시간은 꼭 오고야 만다.
그럴 때는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쓰고 싶은 글과 쓸 수 있는 글의 격차를 마주하게 된다. 아니 그것이 하고 싶은 일이 맞는지,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맞는지조차 끊임없이 의심하며 애써 쌓아놓은 자기신뢰의 기둥을 야금야금 갉아먹곤 한다. 그때마다 직면하고 인정하는 순간은 쓰리고 아프다. 그렇게 잠시 숨을 죽이고 멈춘다.
전에는 이 시간이 오면 길게 놓아버리곤 했지만 지금은 안다. 이 순간만 넘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괜찮아진다는 것을 말이다. 이건 어느 누구도 아닌 나의 일이라는걸, 내가 중심을 잡아야만 나아갈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그래야 시간을 확보하던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던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가만히 방구석에 움츠리고 있다가는 더 아래로 가라앉을 뿐이다.
성장은 계단형이라고 하지 않나. 지금 계단턱에 걸려있다고 생각하자. 턱이 높을수록 성장은 크다. 물론 뛰어넘지 못할수도 있다. 그래도 힘들고 버겁게 느껴지는 이 고비만 넘기면 성장한다는 것을. 그래서 아프고 더 아프고 다른 대책이 떠오르지 않는 순간에는 힘이 되는 말들을 떠올리곤 한다.
우리가 좌절감, 초조함, 조급함을 극복하는 비결은 간단합니다. 일터에 가서 일을 하고, 집에 가서 휴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일단 결심을 한 것은 절대 그 생각을 의심하거나,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타협하지도 말고요.
눈에 띄는 진전이 없다는 것은 아마도 앞에서 말한 것 외에도 많은 것을 생각하고 행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집중해야 할 대상이 많아져서 집중을 하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을 맞았기 때문일 겁니다.
명심하세요, 드라마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길을 걷다가 작게 튀어나온 돌부리에 발이 걸렸다고 해서 자책할 일도 아니고, 뭔가 새로운 일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할 일도 아니라는 겁니다. 당신의 심플하지만 단단한 루틴과 습관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팀 페리스, 타이탄의 도구들
p.327 크리스토퍼 소머의 조언
그래, 나에게는 심플하고 단단한 루틴과 습관이 있다. 언제나 내 편인 시간과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머리카락이 자연스레 자라는 것처럼 나의 시간도 우상향하며 흐르는 중이니까, 그저 시간을 견디고 채워내면 된다. 그냥 보기 싫을 때는 머리를 질끈 묶고 나의 일을 하자. 이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