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반복되는 시간이다. 설연휴 첫날 이른 새벽 또는 전날 늦은 밤에 시가에 도착한다. 짐을 내려놓고 일단 밥을 먹는다. 역시 집밥이 맛있다 생각하면서 "막히드나? 몇 시간 걸리드나?" 질문에 우리가 길에 있던 시간을 헤아려 대답한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알람을 끄고 잠을 푹 잔다. 어머니가 전기장판을 미리 올려둔 덕분에 뜨끈하게 잠 속으로 빠져든다.
다음날 명절 음식을 만들기 위한 재료 손질을 돕는다. 나는 야채전부터 시작이다. 커다란 그릇에 계란을 20개 정도 까 넣는다. 너무 많이 저으면 거품 난다는 말에 숟가락으로 노른자만 툭툭 터트린다. 그 사이 어머니의 손으로 소금간이 쑥 들어온다. 쪽파를 씻고 가지런히 모아 잘게 썬다. 표고버섯과 애호박, 맛살도 차례로 잘게 썰어 계란물에 빠뜨린다.
아래로 가라앉은 재료를 걷어올리며 섞어내는 사이 커다란 프라이팬이 적당히 달구어진다. 형님은 전을 올리고 나는 적당한 시점을 보고 뒤집어 반대편을 익히고 꺼내어 차곡차곡 담아낸다. 때에 따라 우리의 역할은 서로 바뀌기도 하는데 상황에 맞춰 자연스럽게 손발을 맞춘다.
두부, 야채전, 동태전, 새우튀김, 해물전이 하나씩 마무리되는 사이 어머니는 나물 요리를 끝내고 탕국을 끓인다. 그다음 나는 재료를 담았던 크고 작은 그릇과 기름 묻은 주걱과 도구를 설거지한다. 싱크대 앞에 있으면 계속 그릇이 들어온다.
주방 정리를 하는 사이 커다란 생선이 팬에 올라온다. 이제 마지막 차례가 왔다는 소리다. 생선 굽기는 어머니 전문이다. 냄새밸라 얼른 부엌 중문을 닫는다. 다시 설거지와 주방정리를 하고 남편은 밀대에 걸레를 끼워 기름기 묻은 바닥을 꾹꾹 닦아낸다. 와 광나네. 마무리하고 시계를 보니 아직 오전 11시 전이다. 음식을 일찍 끝내면 하루가 여유롭다. 같이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아이들은 언제 나가냐고 묻는다.
설날 아침, 밥통에 칙칙 김이 올라오는 소리가 난다. 아버지는 과일과 떡을 차례대로 준비하고 나는 식탁에 앉아 일곱 개의 그릇에 나물을 종류별로 담아낸다. 남편과 아이들이 떡과 전, 밥과 국을 하나씩 하나씩 차례상으로 옮긴다. 음식마다 각자의 자리를 찾아준다. 초와 향을 켜고 모여서 절을 한다.
해가 갈수록 느껴지는 건 명절의 어떤 절차나 규칙보다는 전하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 조상에게 덕 볼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앞으로 무탈하기를 바라는 마음. 절하는 아버지와 남편의 모습을 보며 그런 마음이 느껴진다. 아이들도 두 손을 모아 곁눈질로 박자를 맞추며 정성스레 절을 하는데 그 모습이 순간 뭉클하다.
어둠 속에 촛불에 집중하여 잠깐 치러지는 의식. 이제 차례상을 치우고 밥상을 준비한다. 세배하고 덕담을 나누고 커다란 상에 둘러앉는다. 밥상에서 나누는 이야기도 매해 비슷하다. 나물이 맛있다, 시금치 한 단에 얼만 줄 아나, 만이천 원이다 세상에, 그러게요 물가가 많이 올랐네,... 생선이 잘 구워졌다, 하며 통통한 살을 골라 아이들 밥에 얹어주는 할매 할배의 주름진 손이 눈에 밟힌다.
처음에는 낯설고 조심스럽기만 했던 연례행사가 어느새 익숙해졌다. 시간이 주는 예측 가능함이다. 문득 5년 뒤, 10년 뒤에는 이 모습이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흘러가는 세월이 느껴지며 어딘지 모르게 서글퍼졌다.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삶인가.
아이들이 커가는 만큼 부모는 나이 들어가고 시간의 흐름은 점점 빨라진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나와 남편과 시누 가족들도 건강 챙길 나이가 되었다. 점점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많아진다. 명절을 핑계로 모여 같이 식사를 하는 이 시간, 더없이 소중하다. 반복되는 시간을 형식적으로 때우기보다 조금 더 정성껏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투덜대는 것도 여전하다. 상관없다. 그저 내년에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