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에 살리라>
가곡 <청산에 살리라>는
세속을 떠나 마음의 평화를 구하는 유토피아적 노래다.
2018년 성악아카데미 합창 연습에서
이 곡을 처음 불렀다.
섬세한 호흡과 감정의 결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았고,
짧은 선율 속에 담긴 깊이는 무거웠다.
김연준(1914~2008)은
함경북도 명천에서 태어난 성악가이자 작곡가이며,
교육자이자 언론인이었다.
한양대학교 총장 재임 시절,
그는 한국 음악교육의 토대를 다졌고,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인권 활동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군사 정권 아래에서
부당한 구속을 겪으며 시대의 희생을 치러야 했다.
그 고통 속에서 탄생한 곡이
바로 <청산에 살리라>였다.
석방을 앞두고 빌린 종이에 완성한 악보는
훗날 2001년 시집 『청산에 살리라』에 실렸다.
감옥에서 그는
인간과 삶의 허무를 응시했다.
차가운 벽에 새겨진 선율은
욕망과 권위를 내려놓으려는 무욕의 고백이 되었고,
이 곡은 그 고통을 건너 얻은
영혼의 목소리로 남았다.
김연준이 남긴 1,600여 곡의 성악 작품은,
603곡을 남기고 요절한 슈베르트와,
청각을 잃고도 창작을 멈추지 않았던 베토벤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그의 대표곡 <청산에 살리라>는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작품으로,
단 스물네 마디 속에 삶의 통찰을 담고 있다.
“음악은 마음에 대한 약이다.”
화가 알프레드 윌리엄 헌트 Alfred William Hunt의 말처럼,
이 곡은 듣는 이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진다.
음악평론가 한상우는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흐름,
세속을 벗어난 영원의 갈망이
김연준 가곡의 특징이자 사랑받는 이유”라고 평했다.
그 말만으로도
그의 작곡가적 위상은 충분히 설명된다.
윈저에서 만난 ‘청산’
김연준의 삶을 떠올리면,
그의 예술은 인류 보편의 가치로 확장되었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
한양대학교 역사관에 따르면,
그는 40여 년 동안
사회적 약자의 인권 증진을 위해 힘썼으며,
국내외 취약계층과 북한 주민을 돕는 일에도
앞장섰다.
그러한 업적을 기려
1972년, 캐나다 윈저대학교는
김연준에게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언젠가 그의 이름이 새겨진 공간을 직접 걸으며,
그의 삶과 업적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다.
2024년 8월 16일,
윈저대학교 교정에서 학위 수여의 의미를 되새기며,
나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 걸을 수 있었다.
윈저대학교 법학부는
국경을 넘어 미국 법조계로도 인재를 보내온 곳이었다.
디트로이트 강을 사이로
미국 미시간 주와 맞닿아 있는 국경 도시, 윈저.
방학 중이라 교정은 고요했다.
먹구름 낀 하늘 아래, 나는 잠시 세상의 번뇌를 내려놓았다.
김연준에게 명예박사를 수여한 윈저대학교 교정
평정과 무욕을 추구했던 김연준의 삶이
정적 속 교정 한켠에
은은히 스며드는 듯했다.
입술 끝에는 선율이 조용히 맴돌았다.
“나는 수플 우거진 청산에 살으리라~~~
온갖 세상 변하였도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
이국의 하늘 아래 흘러나온 노래는
마치 송가처럼 마음속 ‘청산’을 흔들어 깨웠다.
강가에서 이어진 울림
교정을 나서자 가랑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두어 블록을 지나 디트로이트 강가에 차를 세우고,
아내와 함께 리버프런트 트레일을 걸었다.
강가를 따라 이어진 산책길,
앰배서더 브릿지에서 윈저 미술관까지 이어지는
약 5km 구간에는
엘리자베스 프링크, 소렐 에트로그 등
세계적인 조각가의 작품들이 자리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음악과 닮은 현대 예술의 흐름과
고요히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돌아오는 길,
번갈아 운전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마음속 ‘청산’은 줄곧 나와 함께했고,
그 울림은 여정의 끝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