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리버>
밴쿠버 랭리에는 마늘 농사를 짓는 한 철학자가 있다.
붕우朋友의 정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이민자의 향수는 그의 손끝에서 잠시 가라앉았다가,
이내 타오르기 일쑤였다.
2024년 새해를 앞두고
열 평 남짓한 그의 농막에서 송구영신 모임이 열렸다.
열두 명의 이방인들이
그가 준비한 시루떡과 동치미 앞에서 잠시 말을 잃었다.
이민자의 상 위에 놓인 음식은
잠시 뿌리를 확인하게 했다.
각자 조금씩 가져온 음식이 더해지자
농막은 어느새 잔칫집이 되었다.
대화는 이른 오후부터 자정까지 이어졌다.
학문과 예술, 삶과 기억의 경계가 느슨해졌다.
누군가 클라리넷을 꺼내 들자
식탁은 작은 공연장이 되었다.
몇 곡이 오간 뒤
철학자는 내게 재즈 한 곡을 청했다.
나는 그 노래를 알지 못했다.
대신 <문 리버 Moon River>를 불렀다.
공자는 말했다.
“시는 마음을 바르게 하고,
예는 몸을 세우며, 음악은 인격을 완성한다.”
그날의 대화와 음악은 그의 말을 증명하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기억은 오래전으로 물러났다.
오드리 헵번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티파니에서 아침을 Breakfast at Tiffany's》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문 리버>.
그 선율은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헵번이 연기한 홀리 골라이틀리는
자립과 환상 사이를 오가는 인물이다.
1960년대 뉴욕,
욕망과 고독이 교차하던 시대의 초상이었다.
뉴욕은 누구도 오래 머물게 하지 않는 도시였다.
남의 삶엔 무심한 채,
각자의 속도로 걸어간다.
그 도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문 리버>는
홀리의 마음을 가장 잘 전했다.
1961년, 한 작사가와 한 작곡가가 붙잡은 달빛은
스크린을 건너 우리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문 리버>는
왈츠풍의 리듬 속에서
사랑과 고독을 속삭인다.
영화 기억이 흐릿해질 즈음이면
나는 여전히
창가에 걸터앉아 노래하던 그녀를 떠올린다.
그 표정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언어학자 크리스티안 레만의 말처럼,
그날, 우리는 노래로 시작해 노래로 돌아왔다.
그것은 스크린 속에서도 같았다.
햅번의 노래는 연기가 아니라,
홀리의 삶이 잠시 음이 된 순간이었다.
‘문 리버’는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 Savannah를 흐르는 강의 이름이다.
조니 머서는
어린 시절 그 강가의 달빛을 떠올리며
이 노래를 썼다.
그 풍경은
이제 우리 각자의 마음에 다른 강이 된다.
내 발걸음도 한때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문 리버’로 향했다.
영화와는 무관한 강이었지만,
그 고요는 내 안의 또 다른 문 리버가 되었다.
결국 그 노래가 곧 그날의 나였다.
언젠가
조지아의 그 강도 찾아가
머서가 보았던 달빛을
직접 마주하고 싶다.
화면이 다시 켜진다.
홀리는 우울할 때면
맨해튼 5번가의 티파니 Tiffany를 찾았다.
그곳은 그녀에게
‘안식처이자 꿈의 상징’이었다.
나 역시
5번가의 티파니 앞에 섰다.
유리창에는 낯선 얼굴 하나가 또렷했다
2018년 1월,
타임스퀘어의 인파를 벗어나 천천히 걸었다.
티파니를 지나
더 하이라인 The High Line에 올랐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비가 내리고
도시는 회색으로 젖어 있었다.
맨해튼 5번가에 있는 Tiffany & Co.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은 끝에
폴은 홀리에게 말한다.
“도망치기만 한다면
어디에서도 너 자신을 찾을 수 없어.”
그때,
<문 리버>가 흐른다.
“Two drifters, off to see the world...”
" 두 떠돌이, 세상을 보러 떠나네"
카메라는 멀어지고
비 내리는 골목에
두 사람의 실루엣이 남는다.
하이라인의 끝에서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멜로디를 되뇌었다.
어쩌면
나 역시 그 노래를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노래가 끝나면
다시 혼자가 될 것을 알면서도.
낮게 흘려보낸다.
"Moon river, wider than a mile..."
"1마일보다 넓은 문 강.."
노래가 끝나자
오래전 창가의 달빛이 떠올랐다.
<문 리버>는 멀리 흐르지 않았다.
헵번의 목소리는
연기보다 더 조용한 진심이었다.
우리는 모두 떠돌이였고,
강은 어디에나 있었다.
다만 어떤 밤에는
그 물결이 시간을 건너지 않고
우리 곁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