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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한의 에세이집 <다한이 뭐하니?>를 타자화하다

by 류예지

나는 내가 미화되는 게 싫다

사진이든 글이든 말이든

보이고

읽히고

들리는 것에,

미화되는 게 싫다.


난 나일 뿐이야.

누구도 날 대신할 수 없어

피카츄


-미화, <다한이 뭐하니?> 77p


공부를 못해도

말을 안 들어도

말썽을 부려도


모르면 질문하고

눈 마주치면 웃음 짓고

감사한 것에 감사하고


이해를 따지지 않고도

처음 드는 감정과 생각으로만 행동해도

충분히 사랑스러운 어른이 될 수 있겠다.


-어린 스승, <다한이 뭐하니> 96p


지금은 이렇게 소중하게 느껴지는 자연이 남에게 그저 '촌'이라는 단어로 불리는 게 자존심도 상하고, 오히려 창피하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사실 그 창피를 준 건 나의 큰아빠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 큰아빠 댁에 놀러 갔을 때 일인데, 일요일 아침 큰아빠는 나를 데리고 떡집에 갔다. 나를 조카라고 소개하시곤 어디서 왔냐는 떡집 사장님의 물음에 '촌'에서 왔다고 아주 군더더기 없는 대답을 하셨다. 그 말이 어린 나의 자존심을 어찌나 날카롭게 할퀴던지.


-국화빵은 내꺼 중에서, <다한이 뭐하니?> 103p



이다한 작가

군산에서 토박이로 쭉 살아온 사람, 특별한 특기와 취미 없이 살아온 사람,

독립출판을 알게 되어 글쓰기 재미를 알게 된 사람, 그러다 책까지 쓰게 된 어이없는 사람.


본업은 중학교 선생님. 보석함에서 보석들을 갈고닦는 일을 합니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저는 중학교 시절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적당한 수준의 공부와, 적절한 운동,

과한 우정과, 애매한 풋사랑이 공존하던 시기였으니까요.


돌이켜 생각해보니 공부, 운동, 우정, 풋사랑을 더한 값이

99.9를 가리키고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그 시절만큼

제 인생이 완벽에 가까웠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표제이기도 한 <다한이 뭐하니?>에서 다한이는 이 책의 저자입니다.

(편히 다한 쌤이라고 부를게요)


이 책의 1장은 다한 쌤의 인생사를 담아낸 아포리즘이랄까요?

특정 키워드에 관한 자신만의 생각이 드러나 있습니다.

엄청나게 철학적이지 않지만,

유별나게 웃기지도 않지만,

읽다 보면, 저자의 매력이 뭉근하게 느껴져요.

1장을 다 읽고 나면,

다한 쌤은, 다한 쌤과 다한 쌤을 둘러싼 배경에 대해

한치의 소홀함도 없이

잘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의 2장은 자신의 고향이자,

교직 생활을 하고 있는 '군산'의 숨은 명소에 대해 소개합니다.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기에,

(실은, 사람들이 내심 몰랐으면 하는)

한 편으로는 사람들이 군산에 왔을 때,

한 번쯤은 구경하고 돌아갔으면 싶은,

'자신이 경험한 공간', '자신이 사랑한 공간' 이야기를 스르륵 풀어내지요.

그 어투에는 내심,

다한 쌤이 자신의 고향인 '군산'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배어 있어요.


우리는 아주 자주, 서울 외의 도시 - 주요 광역시를 제외하곤-

손쉽게 '촌'으로 갈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순히 '촌'이라는 명칭으로 소급될 수 없는 각 도시만의 매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군산' 만큼도 알려지지 않은

소도시 이하, 면/리 출신인 저로서는,

'촌'에 대한 콤플렉스를 이야기하던, 다한 쌤의 분기탱천한 목소리가 너무 공감되더라고요.




너무나 잘 알려진

시인 정현종의 시 '방문객'이라는 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다한이 뭐하니?>를 읽고 난 후,

더운 여름밤, 황급히 제 방을 방문한

다한 쌤의 얼굴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설명할 수 없지만,

그 얼굴은,

중학교 시절에 제게 큰 영향을 준 은사 님이었다가,

오래오래 만나지 못한 고향 친구들이 되기도 했어요.

혹은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차오를 때면,

마당에 세워놓은 자전거를 타고 내처 달렸던 회룡교가 되었지요.

그 곳에서 봤던 붉디붉은 노을까지도요.


모두들 다시 보면 반갑고,

모두들 다시 보지 못해서 그리운 얼굴,

내게 힘이 되어준 공간과 추억까지.


이제 '서울' 이야기는 포화 상태가 되었는지 몰라요.

큰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좀 더 작은 범위의 이야기,

개인의 이야기,

지나치기 어려운,

내가 몰랐던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가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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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image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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