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가보고 싶었습니다

최은영의 소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타자화하다

by 류예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일부,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중에서




그녀가 공부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순간에 대해 쓴 글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퇴근을 하고 책상 앞에 앉아 책에 밑줄을 긋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에 투명 망토를 두른 것 같았다고 그녀는 썼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기분이라고. 그녀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려진 세상이 언제나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보다도 더 가깝게 느껴졌다고 썼다. 그럴 때면 벌어진 상처로 빛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그 빛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더 가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렇게 썼다. 나는 그녀의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녀의 언어가 나의 마음을 설명하는 경험을 했다.


나도, 더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막연하게나마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던 것 같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좇고 싶었는지 모른다.




-최은영 작가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가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이 있다.





인생을 살며, 제가 어떤 일을 선택할 때

(운이 좋았던 덕분인지)

"절대 안 된다"라고 말했던 사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결연한 얼굴에 돌을 던질 수 없었던 탓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걱정과 애정을 담은 눈으로,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해주었던 것 같아요.


최은영의 소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다가,

문득 삶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자 갈팡질팡할 때마다,

'너의 결정은 응원하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해준 얼굴들이 떠올랐습니다.


생각해보니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은 자주 찾아왔고,

그 상황이 주는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 역시 만만치 않았으니까요.

아주 자주 쿠크다스 멘털이 되었고,

파스스 부서져 내린 마음을 애써 들키지 않기 위해

바깥으로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을 쌓아 올렸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라는 자명한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되,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의 화자인 희원이 끝내 듣지 못했던 말,

인생의 중요한 한 시기에,

선망의 대상이었던 선생이자,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주길 바랐던 그녀에게 듣고 싶었던 말도 그와 같지 않았을까요.


"더 가보셔도 됩니다.

계속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끝내 듣지 못합니다.

추운 겨울이었고, 그녀의 버스는 저만치에서 오고 있었고,

버스를 애써 떠난 보낸 후,

서로를 견디며 서 있어야 그 시간이

당시로서는 고통 그 자체로 느껴졌을 테니까요.


그들은 어쩌다

꿈과 희망을 선물한 동시에,

상처를 준 사람들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서로에게 완전한 말을 해주기에는,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한 존재였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그녀에게 듣지 못한 대답을 구하고자,

희원은 공부하고 또 공부합니다.

희원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럴듯한 꿈을 이루었다는 만족감보다는

그 시절, 자신이 그녀라는 존재를 통해 본 '희미한 빛' 때문이었죠.


빛이 이끄는 대로

더 가보고 싶었던 마음에

충실히 응해온 결과가

지금 '여기'였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원했던 말을 들을 수 없지만,

그녀라는 희미한 빛을 좇아 당도한 장소는 바로

'그곳'이었어요.


기나긴 시간을 견디며 겨우 닿은 그곳엔,

그 시절보다 한 뼘 더 성숙한 '나'가 있었지만,

그 인생이 반드시 성공했다고는 담보할 수 없었어요.

그러는 동안

자신을 둘러싼 사람, 공간과 같이

배경처럼 흩어져 있던 소중한 것들을

필연적으로 상실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그 일을 계속해도 좋겠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당신의 선배도, 후배도, 선생도, 언니도, 동생도, 친구도 아니지만

기꺼이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당신의 자리에서 계속해주세요.


"더 가보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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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image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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