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도 젖은 자는 -순례 1
-오규원 시인(1941-2007)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번 멈추었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
나를 젖게 해 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강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 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고기들은 강을 거슬러올라
하늘이 닿는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사랑, 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순례>, 민음사, 1973
뜨겁게 달아오른 대기를 시원하게 적셔줄
한줄기 '비'가 간절해지는 그런 계절이 오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바로 오규원의 시, '비가 와도 젖은 자는-순례 1'인데요.
이 시를 알게 된 것이 스무 살 무렵이었을 거예요.
그때는 이 시가 여름날 소낙비처럼 지나간
안타까운 두 사람의 사랑을 표현한 시라고 생각했어요.
시를 읽을 때면,
속절없이 쏟아지는 비를 피해 추녀 아래에 멈춰 선
두 연인의 말간 얼굴부터 떠올랐기 때문이지요.
한 시기를 함께 비를 맞으며 오롯이
'흠뻑 젖은(취한) 채'로 보냈던 두 사람이기에,
이 시기를 건너,
또다시 새롭게 시작할 사랑은
한번 젖었던만큼 '덜' 아프지 않을까 싶었지요.
그러다,
요 며칠 마음이 심란하고 어지러워,
이 시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 순간,
좀 더 다른 의미로 이 시가 읽히기 시작했어요.
비를 '상처'라고 부르면 어떨까?
비를 '추억'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비를 '시간'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비를 비가 아닌 그 무엇으로 불러도 좋을 것 같았으니까요.
한 시기의 사랑으로만 읽어버리기엔
시가 가진 의미가 다채롭게 다가왔던 덕분이겠죠.
내내 '생'이라는 기나긴 빗속을 걸어오는 동안,
시인은 얼마나 주저하는 날들이 많았을까요?
한번 젖은 후론,
다시 젖지 않을 수 있었다고 고백하게 되기까지,
시인의 '상처'와 '추억'과 '시간'은
'나무'와 '사랑'과 '짐승'으로
단단하게 여물어갔을 테지요.
시인은
이 인고의 나날을 거치며,
생의 어디까지를 미처 몰랐고,
생의 어디까지를 끝내 알게 됐을까요?
문득,
비를 맞은 채 서 있어본 지가 언제인지,
그러기나 한 적은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어요.
요 며칠,
내내 마음이 어지러웠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렇게 우산을 받친 채
바짓단조차 젖지 않기 위해 조바심 내며 빗속을 걸어오는 동안,
과연 저는 아무 것도 잃어버리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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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image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