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
비가 오면 센티해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가 오기 직전에 잔뜩 센티해진다. 공기가 눅눅해지면서 숨 쉬기가 약간 갑갑해진다. 이런 날씨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하늘의 색깔처럼 기분도 우중충해진다. 나는 평상시에도 센티한 편이라 비 오는 날은 좀 과하게 센티해진다. 감정의 과잉은 보는 사람도 부담스럽지만 당사자도 매우 불편하다.
청소년기 때는 그런 센티멘털을 나만의 특별함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잔뜩 쏟아부으려는 하늘을 보면 설렜다. 그 감정의 홍수에서 한층 성숙된 내가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센티함을 즐길 여유가 없는 어른이므로 그런 마음이 올라오면 얼른 다른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비가 내리면 그 비의 모양에 따라 마음이 또 변한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를 보면 상쾌한 기분이 든다. 이런 날은 낮잠을 자도 맛있다. 비가 오다 말다 먼지만 겨우 날리지 않을 정도로 오는 먼지잼으로 내리면 점심때 먹은 밥이 가슴팍에 걸린 듯 답답해진다. 그리고 추적추적 오랫동안 내리는 비를 보면 밖에서 일하는 사람도 아니면서 비를 핑계 삼아 그냥 하루 쉬어야겠다는 느긋함이 나온다.
이제는 비가 오면 삭신이 쑤신다. 아직 그럴 나이도 아닌데 신체 나이는 거짓말을 못한다. 그래서 비가 오면 자꾸 누워있고 싶어진다. 하지만 누워만 있으면 마음이 또 가라앉게 된다. 그래서 조금 더 부산스럽게 몸을 움직여본다. 마음이 몸을 집어삼키지 못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