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할퀴고 간 자리

그곳에 피어난 꽃

by 수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언제나 잊기 쉬운 진리이다. 나 또한 그랬다. 언젠가 내가, 나의 가족이 죽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라 생각했다. 죽기에는 너무 젊었으니깐.


그러던 어느 11월, 친정엄마가 66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꽤 오랫동안 괴롭히던 '폐섬유증'이 급속도로 진행된 것이다. 사고사처럼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 모든 시간이 내게는 갑작스럽고 당혹스러웠다. 그렇게 죽을병은 아니었는데.. 황당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두 달 뒤,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식도암이었다. 이미 암판정을 받았을 때는 전이가 많이 진행된 상황이었고, 결국 폐까지 전이되면서 마지막 숨을 내뱉으셨다. 그 겨울의 추위는 모질고 매섭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일곱 달이 흘렀다.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친정엄마와 같은 병을 갖고 있던 어머님은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급격히 기력이 떨어졌다. 활동 범위가 점차 줄어들다 침대 낙상사고까지 겹쳐 거의 집안 생활을 하시다 기흉이 왔고, 지독히도 더운 여름을 못 버티고 끝내 먼 길을 떠나셨다.


안타까웠다. 그렇게 다들 허망하게 죽을 거면서 마지막까지도 편안히 놀거나 쉬지 않고 고생만 하다가 가신 어른들의 삶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리고 많이도 후회했다. 어른들께서 천년만년 사는 줄 알고 늘 받기만 했던 나의 지난날들을 후회했다. 그 모든 순간을 함께 보냈던 남편과 나는 이따금씩 함께 눈물을 흘렸다. 부둥켜안고 엉엉 울기도 했다.


죽음은 언제나 늘 우리 곁에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Carpe Diem, 지금을 살아라


세 명의 세상이 무너졌지만, 세상은 변함이 없었다. 장례로 인한 휴가기간이 끝난 뒤에는 남편은 회사로,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갔다. 당시 휴직 중이었던 나는 매일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했다. 하지만 별일 없는 하루를 보낸 어느 저녁이,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던 오늘이 더없이 고맙고 소중했다. 너무 늦게, 혹은 너무 일찍 깨달은 진리였다.


그 무렵 남편과 자주 했던 말은 '우리, 지금, 행복하자'였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 행복은 미뤄둘 필요가 없었다. 주말 하루라도 아이들과 더 좋은 추억을 만들고, 오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멀리 있는 형제들에게 생각날 때마다 전화하자고. 그리고 그 행복을 천천히 음미하자고.


죽음을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오히려 이 더 선명해진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이 날 행복하게 하는지, 누구와 함께 있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우리는 죽음 앞에선 솔직해진다. 그리고 지금을 더 사랑하게 된다.


Be Happy Anding


큰 일 좀 (많이) 겪었다고 꼰대가 되어 버린 나는, 삶의 방향마저도 바꿔보기로 했다. 잘 죽기 위해 잘 살아야 한다는 꼰대스런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어보기로. 우리는 아직 살아있으므로 끝(ending)이 아닌 계속 이어지는 (anding) 지금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