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죽어가는 시간
2024년 10월,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난 뒤, 곧장 기차역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신해운대역. 엄마가 계신 병원을 가기 위해서이다. 엄마는 9월 말부터 입원 중이셨다.
기차 안은 언제나 한산했다. 거의 매일 보는 창밖 풍경은 그다지 새롭지도 특별하지도 않았다. 그 시간을 견디게 해 주던 것은 라디오였다. 기차에 몸을 싣고 이어폰을 끼면, 잠시나마 내 마음도 어디에 기대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 무렵, 즐겨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은 '오늘 아침 정지영입니다'였다. 원래 진행하던 정지영 님이 휴가를 떠나는 바람에 스페셜 DJ로 뮤지컬 배우 김소현 님이 진행하는 중이었다. 처음엔 그녀의 서툰 진행이 바로 느껴졌다. 말을 끝맺음이 어색하고, 농담을 건네려다 스스로 당황하는 순간도 자주 보였다.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라디오를 들었으니, 그녀의 어색함도 매일 같이 듣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에는 서툴고 어색했던 진행이 점차 안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문장들이 매끄럽게 이어지고, 청취자들의 메시지에도 적절하고 센스 있게 반응하는 여유도 생겼다. 몇 주 사이에 눈에 띄게 성장한 것이다. 그런 성장이 있기 위해 그녀는 우리가 듣지 않았던 시간 속에서 자신의 라디오를 모니터링하고 어떤 점을 고쳐야 할지 고민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녀에게 시간은 성장을 위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 나는 매일 병원에서 전혀 다른 '시간'을 보고 있었다. 엄마는 독한 약에 입안까지 다 헐어버릴 지경이었지만 병은 그보다 더 독했다. 그리고 엄마는 그 지독한 병과 매일 치열히도 싸웠지만, 매일 한 보씩 후퇴할 뿐이었다. 시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쇠약해져 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어른들을 떠올리면 거의 다 타버린 촛불이 생각났다. 제 몸을 다 태우고 흘러내린 촛농마저 또 태워버리고 더 이상 태울 것이 없어 희미해져 가는 촛불. 그 촛불을 꺼뜨리고 싶지 않아 두 손으로, 온몸으로 바람을 막아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더는 태울 것이 없으므로.
같은 시간 동안,
라디오 속 누군가는 하루하루 성장해 나갔지만
병원 속 누군가는 하루하루 죽음에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 강력한 대비를 통해 나는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시간은 살아가는 시간인 동시에, 죽어가는 시간인 것이다.
삶은 유한하다. 죽음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 찾아올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 앞에 무기력해져서는 안 된다.
나 역시도 어른들의 희미해져 가는 불씨를 보며 울며불며 매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마지막 빛을 보며 사랑과 고마움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끝내 그 빛이 사라지고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연기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