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싫지만, 말하고 싶은 이야기

말하고 싶지만, 말하기 싫은 이야기

by 수키

평소 같았으면 엄지손가락 첫 번째 관절을 위아래로 경쾌히 움직이며 휴대폰의 화면을 스르륵 넘겨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내 손가락은 낯선 문구 앞에 멈춰 섰다.


[런케이션 클래스 모집]


'런케이션'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단어의 조합이 주는 느낌적인 느낌에 멈칫하게 된 것이다. 엄지손가락의 움직임은 이제 위아래가 아닌 좌우로 바뀌었고, 내 눈동자는 빠르게 사업의 개요와 공모유형을 훑어보고 있었다.

지원대상
지역 고유의 공간과 자원을 활용하여 '배움'과 '휴식'을 추구하는 관광 인구의 니즈에 부합하는 클래스형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

공모유형 - 치유형
마을 주변의 자연환경 등을 활용하여 감정 치유와 자기 돌봄에 초점을 맞춤 마음 회복 활동


인스타그램에서는 간략한 정보만을 제공해주고 있었지만 내 마음을 흔들기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해보고 싶다, 하고 싶다, 할 수 있다'는 강한 열망이 생겨난 것이다. 20대 이후로 뭔가를 도전하고 싶은 강한 열정이 드는 것은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어색한 열정은 반갑기보다는 불안하고 불편했다. 오히려 이런 감정을 애써 누그러뜨리고 평온한 일상에서 살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마저 들었다.

30대가 되고,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 하는 것들이 더 많은 법이니깐.


그럼에도 내 엄지 손가락과 두 눈동자가 오랫동안 그 페이지에서 떠날 수 없었던 것은 '말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열 달 동안 세 번의 장례를 치렀다.


친정 엄마,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차례차례 떠나보내며 내 생각과 의식은 늘 '삶과 죽음'에 대해 머무르고 있었다. 브런치에 글을 써보겠노라고 처음 결심했던 계기도 어른들의 병세가 악화되던 그 무렵부터였다. 임박해 온 죽음 앞에서 느꼈던 무력감과 허무함, 흘러간 시간들에 대한 후회, 고단한 삶을 살아온 어른들에 대한 안타까움. 그런 쓸쓸한 빛깔을 감정들을 그냥 흩어지게 내버려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25년 기준 대한민국 하루 평균 사망자는 약 1,000명이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죽음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어있고, 나의 부모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마주하게 되면 한 사람의 죽음이 그리고 짧았던 일생이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도 더 극적인 것을 알게 된다. 그 중요한 사실을 꼭 당해봐야 알게 된다.


그런 죽음을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번 겪고 나니, 그것도 경험이라고 하고 대단한 인생의 철학이라도 생긴 사람처럼 '말하고 싶은 무언가'가 내 안에서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말하고 싶지만, 말하기 싫었다. 쓰고 싶었지만 쓸 수 없었다.


이런 양가적 감정 속에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앞서 '그것도 경험이라고'하며 나를 비아냥거리듯 표현한 것도 비슷한 이유이다. 내가 겪은 죽음들을 대단한 나의 경험과 특별함으로 포장하여 소비하고 전시하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인생 선배로서 대단한 충고를 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하는 걱정이 앞섰다. 난 정말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사실 무얼 말하고 싶은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내 입술 끝에 맴도는 말이 무엇인지 답을 찾고 싶었다.


마감기일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4일. 시간이 촉박했다. 급하게 지원서를 작성하는 만큼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황금 같은 주말을 되지도 않을 일에 쏟아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끝까지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그 끝에는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런케이션 클래스 지원신청서.hwp'파일을 다운로드하여, 빠르게 앞장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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