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웰다잉

by 수키

호기롭게 지원서 작성에 돌입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난관에 부딪혔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하는 질문에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다면 단 한 문장으로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데 나는 내 마음도 사로잡지 못할 말들로 혼자 주절대고 있었다. 마감기한은 딱 4일. 고민에 허우적 댈 시간은 없었다.


'일단 적어보자.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1. 후회 : 바쁘다는 핑계로 늘 차일피일 미뤄왔던 '효도'를 해드리지 못한 후회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아차!' 하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2. 안타까움 : 결국에는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천년만년 살 것처럼 미련하게 살아왔던 부모님들의 고단한 삶이 안타까웠다. 조금 더 즐기면서, 조금이라도 여유롭게 지내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3. 무력감 : 임종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병을 고칠 수도, 늦출 수도, 아니면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게 도울 수도 없었다. 그저 기다리는 것. 반갑지도 않은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4.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 : 세 분 중 가장 건강하셨던 우리 엄마가, 가장 젊었던 우리 엄마가 제일 먼저 돌아가셨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정말로 가는 데는 순서가 없었다. 우리도 당장 내일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


5. 살아가는 것, 죽어가는 것 : 인생의 모래시계는 삶이 아닌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매일 죽어가고 있다는 것, 늙어가고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오늘은 가장 젊은 날이며 가장 빛나는 삶의 순간이라는 것이다.


6. 예정된 미래인 죽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며 살자 : 건강하고 행복할 때에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엄마는 젊은 날에도 늘 연명치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하게 말하셨다. 저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고, 저것은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아닌 것이라고, 그러니 혹시나 저런 상황이 온다면 자연의 순리를 따르고 싶다고. 그래서 우리 가족은 결정의 순간에 고민도 후회도 죄책감도 없었다. 무엇이 엄마를 위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단한 깨달음은 아니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늘 잊고 지내기 쉬운 이야기들.


이런 말들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무엇일까. 문득 '웰다잉'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단어였다. 나의 생각들을 완벽하게 담을 수는 없지만 그보다 더 좋은 말은 없었다.


'명사'의 힘은 크다. 이리저리 떠돌던 생각들이 한 곳으로 수렴되고 있었다. 나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잘 죽는 법, 잘 사는 법에 대해.


나는 '웰다잉'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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