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죽음
"웰다잉이라.. 시의적절한 주제네요."
짧은 침묵을 깨고 터져 나온 심사평이었다. 작은 체구에 웃음기 없는 얼굴이 엄격하게 느껴지는 심사위원이었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짧은 기간 동안 힘든 일을 많이 겪으셔서 그런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를 선정하셨네요. 다만, 걱정되는 것은 발표자님께서 경험한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 프로그램에 참여자들에게 얼마나 큰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대적 흐름과 지역적 특성에 잘 부합하는 내용이긴 하지만, 자칫 가족과 함께 즐거운 여행을 기대하고 왔다가 우울한 마음으로 돌아가게 되지는 않을지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은 날카로운 비판이라기보다는 프로그램의 방향을 함께 걱정해 주는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렇죠? 저도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고 툭 터놓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면접심사 자리에서 나의 본분을 잊어버려선 안되었다.
"심사위원들의 진심 어린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그 부분에 대해 많이 고민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참여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며 프로그램의 깊이를 조절해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질의응답의 정석과 같은 답변으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음이 안타까웠다.
발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서류심사와 면접심사를 준비하던 때보다 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심사위원들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심사위원의 말처럼 내가 경험한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내겐 애틋했던 죽음이지만 누군가에겐 후련한 죽음일 수도 있다. 나 조차도 세 번의 죽음이 주는 의미가 모두 달랐다. 돌아가신 분의 나이, 병환의 정도, 투병기간, 가족과의 친밀감, 임종과정에 가족들이 놓여있던 상황에 따라 죽음이 주는 의미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웰다잉이 어떤 것인지 사실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합격하면 생각해 보자'
복잡한 고민 앞에 일단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생각은 막을 수 없었다. 심사결과도 나오지 않았지만 며칠 동안 고민을 이어갔다.
보편적인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음은 흔해 빠졌다. 매일 누군가는 죽고, 우리는 모두 결국엔 죽는다. 하지만 죽음이 개인의 삶에 주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빠져나오기 힘든 슬픔에 잠기기도 하고, 인생의 방향이나 가치관을 바꾸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참여자에게 죽음에 대해 사유할 시간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한한 시간. 유한한 삶. 그것이 웰다잉의 핵심이니깐.
며칠 뒤, '합격'소식을 들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유한한 삶 속에 소중한 시간을 내어 프로그램에 참여할 사람들을 위해 나의 말은 최대한 줄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캠프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