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드는 밤
多情(다정)도 病(병)인 냥하여 잠 못드러 하노라
딱, 내 이야기다.
난 정이 병적으로 많다. 정을 잘도 준다. 정이 많은 사람은 따뜻하고 속 깊은 사람같아 좋아보이지만, 속수무책으로 정을 줘버린 사람은 그만큼 상처도 많이 받는다. 상대방이 원한 적도 없는 정을 나 혼자 듬뿍 줘 놓고는 나 혼자 삐치고 서운해한다. 분명 줄 때는 바라는 것 하나 없었으면서도 상대방이 몰라주면 그게 그렇게 섭섭하다.
정은 물건에게도 준다. 물건 하나하나에도 추억과 정을 만들어버리면 쉽게 버리지를 못한다. 낡아빠지든 너덜너덜하든 나에게는 다 예뻐보인다. 그래도 이 병은 조금 고쳤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감당하지 못할 많은 추억의 쓰레기들이 넘쳐나기에 미련없이 버리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잘 버리는 방법을 배운 것이지 물건에 정을 주지 않는 방법을 배운 것은 아니다.
일에도 정을 잘 주었다. 회사가 내 것 같아, 안타깝고 답답했던 적도 많았다. 이 쪽 정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내가 노력해도 결코 바뀌지 않는 것 뿐이니깐.
사춘기 소녀일 때는 정치, 환경, 인권 등 사회에 대한 걱정에 잠도 잘 못자는 날이 많았다.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때가 참 그립기도하다.
이렇게 보면 정 많은 사람은 좀 성가신 사람이다.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하고, 쓸모없는 물건을 잘 버리지도 못하고, 무엇보다 어느 날 혼자 삐쳐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단순하다. '고마워' 이 한 마디면 다 해결된다. 내가 준 정만큼 돌려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마음을 쓰고 있다는 것을 상대방이 알아주기만 한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난 다정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