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특수 효과

by 수키

2024년 크리스마스의 기억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쯤이면 우리 집은 크리스마스 특수효과를 노린다.

8살, 5살 꼬마아이들이 밥을 잘 먹지 않을 때, 늦게 자려고 할 때, 정리정돈을 소홀히 할 때, 그 어떤 때라도 한 마디면 해결된다.


'산타 할아버지가 다 보고 계실 텐데~'


이 마법의 주문은 유효기한이 있다. 크리스마스 전날까지가 그 효과가 최절정에 달하고, 크리스마스가 지난 뒤에도 아이들의 마음속에 산타할아버지에 대한 신뢰와 감사함이 생생할 1월 정도까지는 유효하다.


그런데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첫째 아이의 반응이 약간 뜨뜻미지근하다. 아무래도 '산타의 비밀'을 어디선가 들었나 보다. 사실 산타에 대한 믿음이 가장 많이 깨지는 시기가 이 때라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자니 여간 섭섭한 게 아니었다. 고작 산타의 비밀에 조금 가까워진 것뿐인데도 첫째가 '순수'에서 한 발자국 멀어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세상에 진실을 조금 더 일찍 알게 된 첫째가 둘째의 동심마저 앗아가 버릴까 걱정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내년에는 꽤 쏠쏠했던 '크리스마스 특수'를 누릴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혹시 친구들이 산타할아버지에 대해서 뭐라고 이야기하는 걸 들었니?'


망설이던 첫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산타는 아빠래. 친구들이 그랬어.'


'산타 할아버지는 믿는 친구들에게만 오시는 거야. 그 친구들은 산타할아버지는 믿지 않으니 당연히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안주 셨을 거고, 그러니 그 친구들의 부모님이 선물을 준비하셨겠지~'


첫째는 며칠을 고민하더니, 자신도 산타를 믿는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학교에서 산타를 믿는 친구들과 함께 '산타 할아버지 만나기 작전'을 만들었다고 했다. 산타를 믿고는 싶지만 본 적이 없으니 직접 만나서 증거와 확신을 얻으려는 모양이다. 어떤 작전이 있냐고 물어보니 그것은 비밀이란다. 믿는다고는 했지만 아직 엄마에 대한 의심이 남아있나 보다.




사실 엄마아빠의 '크리스마스 준비 작전'도 쉽지는 않다.

먼저, 아이들이 받고 싶어 하는 선물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아직 어린 둘째는 순순히 갖고 싶은 장난감을 줄줄이 말하지만, 첫째에게는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된다. 혹시나 아이가 너무 터무니없는 것을 원한다면 은근하게 다른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선물을 정했다면 적당한 시기에 미리 구매해놓아야 한다. 크리스마스에 임박하면 품절될 수 도 있다. 물론 당근마켓에서 웃돈을 주고 살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갖고 싶은 선물을 정했다가도 그냥 지나가는 TV 광고에 마음이 바뀌기 쉬우니 섣불리 일찍 구매해서도 안된다.

선물의 배송까지 완료되었다면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잘 숨겨놓아야 한다. 지난번 크리스마스에는 준비해 둔 선물을 들켜버리는 바람에 새로운 선물을 급하게 준비해야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다. 첫째는 산타 할아버지께 드릴 편지를 쓰고 꾸민다. 아직 한글을 모르는 둘째는 엄마에게 대신 편지를 써달라고 한다. 산타할아버지와 만나겠다는 아이들은 쉽게 잠에 드려고 하지 않지만, '산타 할아버지는 모두가 잠든 때에만 오신다'는 완벽한 논리로 침대에 눕힌다. 마지못해 침대에 간 아이들은 불이 꺼진 방에서 속닥속닥이며 '산타할아버지 만나기 작전'을 다시금 정비하는 듯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의지가 강한 아이라도 일단 눕고, 불을 끄면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지 못한다. 아이들의 코 고는 소리가 아름답게 울려 퍼질 때 포장해 높은 선물을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잠이 오지 않는다.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잠이 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일찍 잠에서 깨버려 선물을 너무 빨리 발견해버리진 않을까, 그래서 그 흥분에 다시금 잠이 들지 못하면 어쩌나, 선물에 혹시나 실망하는 것을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으로 산타엄마는 잠에 쉽사리 들지 못했다.




새벽 5시쯤,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작은 탄성과 함께 동생을 깨운다. '선물이 있어!'

나는 신랑을 깨운다. '애들 깼나 봐!'

신난 발걸음과 들뜬 목소리가 뒤엉켜 들린다. '언니 산타할아버지 봤어?' '아니 못 봤어, 잠들어버렸어' 속삭이는 작은 목소리를 들으며 신랑도 낮게 이야기한다. '아, 행복하다' 바로 선물을 뜯어보거나 엄마아빠에게로 달려올 줄 알았지만 이내 방으로 들어갔다. 착하고 사랑스럽다.


부모가 되고 나면 알 수 있다. 받는 행복보다 주는 행복이 더 크다는 것을. 저 작은 목소리가 듣고 싶어 내가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세월 동안 전 세계에서 '산타의 비밀'이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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