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온도

by 수키

언젠가 꼭 한 번은 박완서를 만나보고 싶었다. 만나게 되면 가지런한 치아를 훤히 드러내고 웃으며 엄마처럼 편안히 맞아주실 거라는 상상을 해보곤 했다. 박완서의 글을 읽으면 ‘엄마’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좀 많은, 세상의 모진 풍파를 덤덤히도 견뎌낸 여인네의 푸석푸석함이 느껴졌다.


실제로 박완서는 비교적 늦은 40세의 나이에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전에서 『나목』으로 등단했다. 등단했을 당시 5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는 엄마이자 전업주부였다. 등단 이후에는 쉼없이 소설과 산문을 써내려가며 40년간 작가로의 삶을 살았다. 주로 전쟁의 비극, 자본주의의 이면, 여성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었고, 수많은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박완서의 책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이다. 일제강점기에서 6.25전쟁에 이르는 시기에 박완서가 겪은 삶을 다룬 자전적 소설이다. 개성에서 살던 주인공 ‘나’가 교육열이 높은 엄마의 손에 이끌려 서울에 살게 된다. 암울한 시대를 어린 ‘나’의 시선으로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 때문이다. 자신의 어린시절을 담은 이야기임에도 미화시키거나 과장됨이 없다. 등장인물을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이 시대를 다룬 많은 소설들은 확실한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분명한 역할을 주고 극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착하지만 나쁘고, 헌신적이며 이기적인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더 사실적이며 생동감있다. 작가는 자신을 포함한 가족에 대해서도 자조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많다.


마을 사람들보다 더 배웠다 자부하고, 툭하면 마을 사람들을 상것들이라고 무시하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의 양반 의식이란 것도 실은 얼마나 비루한 것이었던지, 자손이 총독부고 면사무소고 그저 관청에 취직한 것만 대견해하셨다. 내 나라야 어느 지경에 가 있든지 간에 땅 파먹는 것보다는 붓대 놀려 먹고사는 걸 더 낫게 치고, 이왕 붓대를 놀리려면 관청에서 놀리는 걸 더 높이 여긴 걸 보면, 양반 의식 중에서 선비 정신은 빼 버리고 아전 근성같이 고약한 것만 남아난 게 우리 집안의 소위 근지가 아니었나 싶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중


이렇게 냉정하기까지 한 글에서 따뜻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작가의 ‘관찰력’에 있다. 작가는 대상의 겉모습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든 심성, 대상들 간의 상황까지 매우 예리하게, 오랫동안, 심도 깊게 관찰하여 읽기 쉽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무언가를 꾸준히 바라보는 일은 대상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냉소적인 말투 속에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사회와 시대에 대한 시선도 마찬가지이다. 들끊는 분노나 날서린 비판과는 거리가 멀다. 섣부르게 누군가의 편을 들지도 않고, 둘 다 나쁘다는 무책임한 양비론을 펼치지도 않는다. 그저 바라본 것을 최대한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인위적인 교훈이나 깨달음을 주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정말로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누군가의 삶을 보여줌으로서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박완서의 단골 소재는 ‘한국전쟁’이다. 작가 자신도 인정하는 바이다. 혹자는 중첩되는 작가의 글을 보며 지겹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해방 후 혼란의 시대 그리고 6.25 전쟁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현재진행형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몇 번이고 그 장면을 곱씹어보고 잊지 않아야 한다.



난 박완서가 그 격동의 시기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끼며 살았다는 것에 감사하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속으로만 삼키지 않고 입으로 손으로 내뱉은 용기와 능력을 갖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 시대를 다룬 소설과 이야기는 유난히도 많다. (수능 언어영역에 자주 나와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박완서의 글이 내게 더 큰 울림을 주는 것은 박완서가 여자이자 엄마이기 때문이다. 박완서의 책을 읽고 있으면 엄마가 어렸을 적 이야기를 들려주던 엄마가 떠오른다.


산을 넘어 학교를 가던 이야기, 외할아버지께서 귀여운 막냇딸인 엄마를 리어카에 태우고 학교에 데려다 주기도 했다는 이야기,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출출하면 동무들과 밭에서 서리를 했다는 이야기, 냇물이 너무 맑아 그냥 마셨다는 전래동화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언제나 내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산길에서 이리를 만나 부리나캐 도망갔다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면 귀를 막고 싶기도 했지만, 엄마는 그 때 잘 도망쳐 지금 내게 이런 이야기를 웃으며 들려주고 있구나 싶어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런 엄마들의 구비문학처럼 박완서의 글은 따뜻해서 참혹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안심이 된다. ‘그래, 그런 시대가 있었지. 기억해야지. 그리고 우리는 힘을 내서 잘 살아봐야지.’ 하며 뱃속이 뜨끈해진다.



2011년 박완서가 향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을 때, 나는 헛헛함을 느꼈다. 기약없던 만남은 결국 이루어 질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 지난 겨울 우연히 에세이집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오디오북으로 들으며 다시 가슴이 뛰었다. 내가 언젠가 만나면 묻고 싶었던 질문들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책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게 된 계기, 등단했을 때의 기분, 엄마로서 할머니로서의 삶, 먼저 보낸 아들에 대한 마음...등 그간 박완서에 대해 잊고 지낸 생각들을 다시금 떠올리며 아주 행복하게 책을 읽었다. 유독시리 매서웠던 그 겨울에 잠시나마 따뜻하게 데워준 박완서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피피(pipi)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