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한 생각
사람은 배움을 통해 지식을 쌓아간다.
누군가가 만든 언어를 배우고, 누군가가 써놓은 책을 읽으며 그 정보, 지식들을 자기화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타인 것을 보고 카피하고 영향받아 새롭게 창조한다.
피카소의 작품은 세잔과 마티스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헤르만헤세의 데미안에는 카를 융에게 정신치료를 받은 경험이 녹아있다.
서로 영향을 받고 주며 사는 함께 하는 사회이기에 누군가의 영향을 받게 된다.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고 모방과 카피를 하다 보면 창작물이 탄생하니 무(無)에서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쓰고 그리고 만들었는데도 어딘가에는 비슷한 또 다른 게 존재한다.
사람이고 사는 게 비슷하다 보니 그럴 수 있다.
카피나 모방이 아닌, 유니크하거나 독창적이기 쉽지 않다.
그럼, 순수한 창작이라는 게 가능한가?
더군다나, AI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은 어떤가?
"어떤 그림을 그려줘, 어떤 의미가 들어간 글을 써줘" 이렇게 명령하면 자동으로 결과물을 보여준다.
얼마 전 유행한 지브리스타일의 사진변형은 우리에게 AI라는 것이 친숙하면서 신기한 마술처럼 다가왔다.
AI에게 "사진을 지브리스타일로 바꿔줘"하면 지브리스타일로 정감 넘치고 귀엽게 꿈이 넘치는 희망적인 이미지로 바뀌어 그려준다. 맘에 안 들면 몇 마디 더 하면 맘에 드는 그림을 아주 쉽게 취할 수 있다.
이 신기하고 마술 같은 결과물도 태초부터 인간이 만들어온 DB를 기반으로 인간에게 맞게 생성되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무(無)에서 무언가 우리에게 주는 게 아닌, 인간의 역사와 경험이 DB로 쌓여 만들어진 최첨단 인류의 자산인 셈이다.
우리가 사용해 이롭고 편리하게 해주는 홍익인간의 정신이 담긴 도구인 것이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빨라지고 좋은 결과물을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이 창작으로 인정이 되는지, 누구의 것인지 의문이 든다.
원본은 내 그림에 스타일을 입힌, 내가 직접 그린 건 아니지만 내가 명령해서 그려낸 결과물이니 그 그림은 나의 것인가? 그리고 저작권 위반은 아닌가?
AI가 판을 치는 오늘날은 더 많은 궁금증과 의문이 생긴다.
"AI가 그린 그림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며, 단순 스타일 차용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나, 구체적으로 캐릭터를 따라 하거나 상업적 활용은 저작권 침해 위험이 있다"라고 말한다.
AI로만 생성된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며 창작물로 인정받으려면 AI의 결과물에 나의 공정(노고)이 들어가야 하고 모방이 아닌 단순 활용정도만 허용된다는 거다.
앞으로 논의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대한민국의 현재의 법률에서는 인간의 개입에 의해 만들어진 AI창작물은 보호받을 여지가 있다고 한다.
창작물에 대한 기준이 여전히 애매하고 모호하다.
그럼, AI로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을까?
의도와 방향 등, 콘셉트를 잡아 명령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에 화룡정점을 찍듯 검토하고 점검하면
필력과 어휘력과 문장력이 부족했던 글이 자연스러워지며 만족감과 함께 내 것 인양 느껴진다.
고뇌를 하며 창작하던 예술분야의 과정이 커피머신에 좋은 원두를 넣고 기다리면 완성된 맛있는 커피가 나오는 것처럼 쉬워졌다.
그런데 내가 명령을 하였다손 쳐도 AI가 공정의 대부분을 했다는 생각이 들면 주객전도된 생각과 그걸 취하는 게 맞나 싶은데…, 그게 누구의 것인가?
회사원의 피땀 어린 결과물이 결국 회사의 것이 되는 것처럼, 결국 명령하지 않으면 없을 결과물이니 명령(프롬프트)하는 자의 것인가?
어디까지가 창작이며 저작권의 범위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여전히 의문이 든다.
저작권의 경계선과 울타리가 궁금하다.
이런 시대에 어떻게 창작을 하고 가치를 인정받을 것인가?
여느 작가의 글을 부러워하고 흠모하며 필력을 키우기 위해 독서와 글쓰기를 하는 내 모습.
대가의 글 한 문장, 붓터치에는 그의 경험과 시간이 담긴 결과물이라 생각했다.
"이 한 문장에는 나의 평생이 들어 있다네." 이 말이 지금 시대에 와닿는가?
그러나, 이 시대에 헤르만헤세나 피카소 같은 대가가 그렇게 말한다면?
아무리 AI를 활용한 글이라 할지언정, 대가에게는 브랜드와 저력이 있어 인정하고 흠모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AI는 DB를 활용하지만, 인간은 그 자신으로부터 창조한다.
피땀 흘려 한 땀 한 땀 만들어가는 창작물은 소중하고 가치롭다.
그 한 문장, 붓터치에는 경험과 시간과 사연이 녹아 있으므로….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그 어떤 노고가 있고 사연이 있겠는가?
같은 결과라도 우리는 그 이면을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의 눈이 있기에 "사랑한다"라는 같은 글에 마음이 동요하는 것은 인간의 글이다.
AI가 만들었다고 하면 한 순간에 가치가 떨어짐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그래서 브랜드화하고 제품에, 창작물에 스토리를 담아야 몇 곱절 가치로워지고 그걸 알고 보는 그림은 다른 가치와 다른 감동으로 전달될 수 있다.
폐지를 모아 근근이 생활하시는 어르신의 불우이웃성금 백만 원에는 갑부의 껌값인 백만 원과는 차원이 다른 가치가 깃든 돈이다.
그런데 그 돈이 누군가에게 전달되면 어차피 같은 백만 원일뿐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마음에서 전달되는 가치를 따듯함을 무시한다면, 배려심을 사랑을 외면한다면...
세상은 차가운 곳, 무서운 곳, 지옥이나 다를 바 없는 곳으로만 갈 뿐이다.
단순 결과물만 볼게 아닌, 만들어낸 가치를 인정하고 보존하고 스토리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발전하고 있다.
편리하고 빨라졌지만, 할게 더 많아지고 조급해지는 이 현실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AI를 활용한 결과물을 보고 "그건 진정 너의 작품이 아니야" 하며 무시하고 자신의 길만을 고집할 일이 아니다.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는 자유지만, 자신의 만족감이라면 모를까 경쟁사회에서 느려지고 도태될 수 있음이다.
그 장점인 생산성, 빠름, 시행착오 없는, 편리성 등 좋은 것을 활용해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인간은 큰 그림을 그리고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좀 더 빠르고 쉽게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제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제품, 예술품도 많이 나올 것이고 그중엔 카피되고 비슷한 것들이 넘쳐날 것이다.
한 달을 걸려 그린 그림을 1분 만에 그려내는데 창작자를 보호한다며 그걸 제제하고 못하게 하는 게 창작물을 보호하는 것일까? 저작권, 창작이라는 이유로 세상의 발전, 미래를 막을 수도 있다.
이젠 창작이라는 의미, 창작이라는 정의가 새롭게 바뀌어야 할 듯하다.
희소하고 귀하고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기에 저작권이 있었다.
이젠 비슷한 것들이 셀 수 없이 넘쳐나는 시대에 저작권을 정의하기 쉽지 않겠지만, 그중에 또 가치를 찾고 나은 것을 찾고 보호해야 할 것들이 발생하고, 인정할 것들이 나올 것이다.
이런 과도기를 거쳐 그 AI결과물에 우리의 경험과 가치와 노력이 담길 것이다.
창작과 고유성을 보호하기 위해 창작품, 저작권이라는 걸 이 시대의 변화에 맞게 깊은 고찰을 통해 세심하고 발 빠르게 정의해야 할 것이다.
그러는 중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함께 사는 인간이라는 거, 따듯함이 사랑이 있어야 행복하고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근간에는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이념이 담겨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