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움직이고 싶다는 눈높이는 우리의 DNA
카카오에서 CPO(Chief Product Officer. 최고 제품 책임자)를 맡고 있는 펠릭스(Felix), 그리고 카카오톡에 관한 실무자이자 ‘톡10TF(카카오톡의 향후 10년을 고민하는 조직)’를 이끌고 있는 클로이(Chloe)를 만났다. 카카오톡이 폭풍 성장기에 진입하던 2011년, 2012년도에 합류한 두 사람이 회고하는 그간의 과정들, 그리고 지금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풀어놓았다.
“서버 개발자로 입사했어요. 아무도 뭔가 가르치거나 시키지 않았죠. ‘알아서 하기’가 임무였던 셈입니다. ‘스팸-어뷰징 대응’을 주로 했고, QR코드로 친구 맺기나 안드로이드 OS용 런처인 카카오홈을 만드는데 참여하기도 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카카오에서는 “이거 왜 하는 거예요?”라는 질문이 자주 나와요. 한국 사회에서 자칫 ‘일 하기 싫은 사람’이나 ‘거만한 태도’로 여겨질 수 있는 표현이지만, 일 하는 이유와 일의 가치를 스스로 점검하게끔 하는 질문이기도 하죠.”
카카오톡이 그간 성장해 올 수 있었던 내부 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펠릭스가 내놓은 대답이다. 클로이 역시 지난 10년 간 모바일 시장에서 카카오톡이 선두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로 자율성을 꼽았다.
“구성원이 소수였던 시절부터 톡팀은 직군이나 나이, 경력을 떠나 신뢰를 기반으로 자유분방하게 충돌하고 논쟁했어요. 그 후 조율된 하나의 목소리에 공감하고 헌신해왔죠.”
성장 외부 동력은 이용자들의 사랑과 지지라는 의견도 일치했다.
클로이는 “‘카카오톡 덕택에 결혼까지 이르렀다’, ‘보이스톡 덕택에 원거리 연애도 잘해나가고 있다’며 청첩장이나 편지를 보내주신 분들이 생각나요. 청첩장 보내주신 분의 결혼식에는 화환도 보냈죠. 이용자들의 반응 하나하나에 모두가 울고 웃었습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펠릭스는 여기에 더해 오직 이용자만 바라보고 서비스를 만드는 크루들이 있다고 말한다.
“이용자가 원하는 것을 그대로 추종 하진 않습니다. 그들이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는 것을 기술을 통해 새로운 관점으로 제시해주는 게 저희 고민의 핵심이죠. 포기하면 안 되는 철학은 무엇인지, 그리고 생활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부침이 많은 인터넷 업계에서 10년 동안 성장을 거듭한 서비스는 찾기 어렵다. 하지만 ‘겨우 열 살’된 카카오톡이 겪은 성장통도 여럿 있었다. 펠릭스가 ‘드라마틱한 성장’ 과정에서 아팠던 기억으로 ‘외양간 프로젝트’를 꼽았다.
“프로젝트를 통해 종단간 암호화를 지원하게 됐지만, 이용자들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았어요. 이때를 기점으로 카카오톡만 ‘공지사항’의 ‘똘기’나 ‘B급 감성’도 사그라들었죠. 무거운 이야기를 전하면서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냐는 안팎의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간혹 발생하는 수발신 장애 역시 카카오톡이 겪어왔고 해결해나가야 할 성장통의 하나다. 클로이는 대부분의 IT서비스들이 점검 등을 이유로 주기적인 서비스 중단 시간을 갖는 것과 대조적으로 카카오톡이 24시간 365일 ‘풀가동’되는데 어려움의 원인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용량이 많은 연말연시 같은 때에는 많은 크루들이 밤새 비상 대응 모드를 운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의 사용 환경이 시시각각 변하는 만큼 장애 요인도 새롭게 생겨나고요. 때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새로운 문제가 생기는 거죠."
펠릭스가 ‘코드는 내버려 두면 썩는다’라는 개발자 사이의 표현을 들어 이야기했다.
“눈에 보이는 모습이 같더라도 더 나은 품질을 위해 코드를 늘 새롭게 짜는 개발자들이 서비스의 이면에 있어요. 한 가지 기능을 개선하면서 맞물려 있는 다른 서비스들을 함께 건드릴 때도 많아요. 지난 10년간 카카오톡을 구성하는 수많은 코드들을 바꾸는 과정에서 장애가 발생하곤 했어요. 갑자기 네트워크 장비가 수명을 다해서 준비해 둔 코드로 대응했는데, 그 사이에 업데이트된 일부 기능들과 부조화를 이루는 경우도 있어요. 평소보다 대응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용자들에게 장애로 나타나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잖아요. 뭔가 개선하고 바꾸고 있기에 발생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유 불문하고 그간 일어났던 장애에 관해 무척 송구하다는 말씀을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드리고 싶어요.”
‘톡이 무겁다’, ‘라이트 버전을 발매하라’는 요구도 오랫동안 있어왔다. 일부 글로벌 메신저들은 라이트 버전을 제공하기에 카카오톡이 ‘고집’을 부린다고 비치기도 했다. 펠릭스는 ‘무겁다’는 표현이 각기 다른 의미로 통용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기기 용량을 많이 차지한다고 말하는 이용자들의 카카오톡에 장기간 주고받은 사진과 동영상이 다량 보관된 경우를 첫 번째로 꼽았다.
“네트워크 속도가 높아졌고 대용량 데이터 요금제도 보편화된 만큼, 주고받은 사진과 영상을 클라우드 공간에 저장해 둘 수 있게끔 준비하고 있어요.”
‘느리다’는 의미를 “무겁다”라고 표현하는데 대해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개발진들이 요소요소를 최적화하고 개선하는 작업을 매일 조금씩 축적한다”며 “예전에 1초 걸리던 작업이 요즘은 0.1초 단위로 줄어든 것을 떠올리실 수 있을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톡 안에 품은 서비스가 많아서 무거워지고 장애가 난다는 지적에 관해서는 “카카오톡이 지속 가능하려면 ‘관계 관리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해야만 하고, 채팅 외의 다양한 혁신을 내놓는 것이 숙명”이라며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성에 이용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품질과 편의성을 높여가는 게 과제”라는 대답을 내놨다.
더불어 글로벌 메신저들처럼 ‘라이트 버전’을 제공해달라는 요구에 대해 “네트워크 상황이 안 좋은 국가들에 제공하려고 최소한의 기능만을 탑재하는 전략인데, 국내 환경과 다른 면이 많다”며 “전담 인력과 장비 등 리소스까지 고려해보면 진행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한다.
온 국민이 카카오톡을 사용하게 되면서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도 요구되고 있다. 혹자는 이에 관해 ‘공공기관에 준하는 역할을 요구받는 사기업’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펠릭스는 “적어도 내부에서 그런 책임감에 대해 불평하는 크루들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우리는 ‘서비스가 흔들리면 온 국민의 일상성이 깨진다’는 무거운 책임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일해요. 작은 문제에도 남들보다 더 혼난다고 생각하는 이유죠. 받고 있는 사랑에 걸맞은 책임과 품질을 요구받는 겁니다. 재해 재난에 끄떡없이 전 국민에게 소식을 전파하고 가족의 안위를 물을 수 있는 수단이 되었는지,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것과 관계를 형성하고 관리하는데 도움되는 필수불가결의 도구가 되었는지 자문해보면 아직 부족함이 많죠.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잊지 말자’고 끊임없이 강조하는 이유기도 해요. 꼭 필요한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한다면 10년 뒤에도 지속 가능할 테고, 누구나 우리의 존재 이유를 인정하지 않을까요.”
1990년대 ‘닷컴 버블’ 이후 우리는 여러 인터넷 기업의 흥망 성쇠를 목격했다. 카카오톡은 최근 10년간 ‘흥한’ 서비스지만, 그 영광이 얼마나 오래갈지 아무도 단언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밀레니얼과 Z세대가 그 윗세대에 비해 카카오톡을 ‘덜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는 지적은 주목을 끈다.
두 사람 역시 이런 현상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며 글로벌 조사 업체의 데이터를 내보였다. 조사 보고서에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GenZ들이 그 나라의 주류 메신저 서비스에 반발하는 경향이 담겨 있었다. 일종의 반항심, 혹은 또래집단끼리만 그룹화하려는 심리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아마도 비주류여서, 혹은 쿨해보여서일 테지만, 일본과 미국의 10대들이 관심을 보인 메신저 목록에 카카오톡이 들어있었다는 점은 역설적이었다. 인구통계학적으로 10대 계층의 감소폭이 가파르다는 불가항력적인 부분도 눈에 띄었다.
펠릭스는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은 카카오톡 실행 횟수 대비 대화의 양”이라며 “‘10대들끼리만’ 대화하는 양이 종전에 비해 줄어드는 점은 고민”이라고 말한다.
“카카오톡은 전화번호만 알고 있으면 대화를 시작할 수 있어서 빠르게 소셜 그래프를 확장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의 10대는 전화번호 없이 스마트폰을 쓰기도 하죠. 비록 번호를 모르더라도, 내 친구의 친구와 관계를 맺고 싶은 니즈는 갖고 있잖아요. 역설적이지만, 카톡에서 재미있게 대화 나눌 사람과 관계 맺기가 다른 플랫폼에 비해 어려워진 것입니다.”
이런 고민 속에서 참여 URL만 있으면 누구나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오픈 채팅’이 태어나기도 했고, 실제로 이곳에서 10대들의 대화량은 다른 연령대 이용자들에 비해 풍부하다. 10대들은 관계의 쉬운 확장을 개의치 않는 편이지만, 다른 세대들은 프라이버시 문제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카카오톡이 특정 연령층을 위한 서비스가 아닌 만큼, 현명한 답을 찾기 위한 이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전화번호만 알고 있으면 대화를 시작할 수 있어서 구축된 ‘네트워크 효과’는 카카오톡의 강력한 '해자(moat)'가 됐다. 동시에 스스로 넘어서기 어려운 장벽이 됐다.
펠릭스는 “네트워크 효과는 카카오톡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어쩌면 유일한 무기일지도 모른다”며 “‘대한민국에서 카카오톡이 있어야만 살기 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10년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개선의 일환으로 친구탭과 채팅탭에 비해 사용량이 낮은 3,4탭(#탭, 더보기탭)을 개인의 니즈를 더 잘 소화해 줄 수 있는 영역으로 바꿔가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맡고 있는 서비스를 온 국민이 사용한다는 것. 설레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신경 쓸 일이 많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준 공공재’를 책임지는 이들이 겪는 에피소드와 일상화된 습관을 털어놓았다. 클로이가 먼저 생활의 단편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의 카카오톡 이용 습관을 조건반사적으로 관찰하죠. 곳곳에서 카톡 알림음을 들을 때마다 적지 않은 사명감을 느끼고, 모임에선 지인들의 카카오톡 이용 습관을 살펴보기도 해요. 수발신 사용성이나 화면 전환, UX등을 관찰하다 보면 예상 밖의 발견을 하게 되죠. 업무 아이디어의 원천입니다. 매년 만우절마다 똑같은 질문 세례에 시달리기도 해요. '카톡 유료화'에 관한 거짓 정보가 어김없이 등장하니까요. 신경 쓸 일 많은 일상이지만, "카톡 할게"라는 표현을 접할 때마다 벅찬 감정을 느끼는 동시에 동기부여가 됩니다.”
펠릭스는 ‘날 것’ 그대로의 정보를 얻기 위해 IT서비스 고관여 이용자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수시로 모니터링한다고 했다. 그리고 카카오톡의 지표만큼은 굉장히 자주, 직접 살펴본다고 답했다. 여기에 더해 조직 관리자로서 공개적으로 반복해서 ‘What’과 ‘Why’를 이야기하는 것이 일상이라고 소개한다.
“결과물이 왜곡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왜 하는지 매우 명확하게 전달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이야기하는 횟수를 늘리는 게 최선인 것 같아요. 리더가 제시하는 ‘What’과 ‘Why’에 실무자들이 동의하고 ‘How’를 고민하는 게 건강한 조직이니까요. 힘들고 피곤하지만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는 이유입니다.”
부침 많은 인터넷 업계에서 ‘10년’의 이력은 긴 편에 속한다. 하지만 ‘10살밖에 안된 서비스'라는 관점에서 보면 카카오톡은 이제 갓 ‘소년기’에 접어들었다. 두 사람은 스무 살 청년 카카오톡을 향한 여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클로이는 ‘국민 메신저’라는 호칭에 ‘무료 문자 도구’ 그 이상의 기대가 담겨있다고 말했다.
“메시징 툴을 넘어 선물하기, 게임, 보이스톡 등 후속 서비스들이 등장할 때마다 많은 이용자들의 감탄과 기대가 뒤따랐죠. 일반 이용자들은 잘 인지하지 못하는 부분이지만, 사회적 약자 배려도 꾸준히 해나가려 해요. 이를테면 고대비 테마를 제공해 저시력자 분들의 접근성과 사용성을 개선했던 작업 같은 것이죠.”
펠릭스는 카카오톡이 처음 만들어질 때 아이위랩(카카오의 초기 법인명) 크루들이 갖고 있었던 생각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모바일 메신저를 만들면 성공할 거야!’라는 단편적인 생각으로 카카오톡을 만들었을까요? 혹은 ‘모바일 디바이스의 등장으로 열리는 새 시대, 새로운 삶의 모습을 고민해보자’라는 비전을 갖고 도전했을까요? 저는 후자라고 생각해요. 세상을 과거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게 움직이고 싶다는 눈높이는 일종의 DNA처럼 지금의 크루들에게도 이어지고 있죠.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신뢰가 있는 건데, 이런 DNA를 토대로 10년간의 변화를 이끌어낼 거예요. 앞으로 10년간 카카오톡은 ‘대화 나누는 메신저’를 넘어 (사람, 사물, 혹은 그 어떤 것과도)‘관계를 찾고 맺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도구’로 발전해 나갈 겁니다. 누구든지 “한국에서의 생활, 카카오톡이 있어야만 편리해!”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예요.”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이용자’였다. 대부분의 기업과 브랜드가 성별이나 나이, 생활 습관, 취향 등에 따라 ‘고객군’을 분류하곤 하지만 카카오톡은 그럴 수 없다. ‘이용자’라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모호함 속에서 거의 전 국민을 만족시켜야 하는 고민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이용자들에게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해 줄 무언가가 카카오톡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온 국민의 ‘일상성’을 지켜내면서 매 순간 변화를 시도하는 이들의 고군분투에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