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물로 세상에 말을 건네다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풀어내기 어려울 때, 이야기를 편하게 이어나가고 싶을 때 우리는 카카오톡 대화창에서 이모티콘의 도움을 받는다. 2020년 9월 현재, 카카오 이모티콘 스토어에는 2천여 명의 작가가 올려둔 약 13만여 개의 이미지들이 작은 우주를 형성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조치가 내려진 9월 7일, 인기 작가 두 명과 카카오 크루 두 명이 ‘랜선’에서 좌담회를 열었다.
2011년 11월 등장 이후 9년간 ‘모바일 시대의 새로운 언어’로 자리매김한 카카오 이모티콘. 이제는 전문가와 일반인들이 공존하는 창작자 생태계로 성장한 카카오 이모티콘 유니버스(Universe)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앨리스(Alice) _ 안녕하세요, 카카오에서 이모티콘 사업 제휴를 맡고 있는 앨리스입니다. 이용자 여러분들께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려요.
아포이 작가(이하 아포이) _ 안녕하세요, 카카오 이모티콘 초창기인 2012년도부터 함께해온 캐릭터 디자이너 아포이입니다. 아기두더지 두루루, 바가지 머리 요하, 오! 나의 여사님, 그냥 그런 토끼 등을 만들었어요.
꼬맘 작가(이하 꼬맘) _ 안녕하세요, 2019년부터 ‘혀딻은 앙꼬’ 캐릭터로 활동 중인 꼬맘 작가입니다.
제니퍼(Jennifer) _ 안녕하세요, 저는 카카오에서 이모티콘 상품을 총괄하고 있는 제니퍼입니다. 좌담회 시작에 앞서, 작가님들 이름의 유래가 궁금해요.
아포이 _ 2009년도에 캐릭터 회사를 처음 만들었어요. 당시 아이가 어렸는데 아플 때 “아포이”라는 말을 자주 쓰더라고요. 어감이 예뻐서 확장성이 있겠다고 생각해 회사 이름으로 쓰게 됐어요.
꼬맘 _ 저도 단순하게 작명을 했어요. ‘(반려견)앙꼬 엄마’를 줄여서 꼬맘이라고요.
앨리스 _두 분은 이모티콘 작가가 되기 전에 어떤 일을 하셨나요? 이모티콘 작가가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아포이 _ 학창 시절 애니메이터를 꿈꿨지만 부모님은 반대를 하셨어요. 관련 학과 진학은 포기하고 사회로 나와 e러닝 회사에 취업했죠. 삽화나 짧은 애니메이션을 그렸어요. 경력 10년을 넘기고 보니 조직의 특성상 주로 매니지먼트 위주의 업무를 하게 되더라고요. 매니지먼트보다는 제가 직접 그리는 게 좋아서 독립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어요. 당시 2009년 말, 30대 중반이었고 결혼해서 아이도 둘 있었어요. 더 늦으면 용기 내기가 어려울 거라 생각해 결단을 했어요. 현업에서 손을 놓았지만 캐릭터 공모전에서 수상을 한 게 용기 낼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퇴직금으로 아포이라는 회사를 차렸습니다. 두루루와 달걀귀신 3형제, 두 캐릭터로 디자인 전문 쇼핑몰과 대형 서점 문구 코너에 자체 상품을 만들어서 납품했어요. 당시 캐릭터로 진입할 수 있는 가장 큰 시장이었거든요. 그러다 스마트폰 보급이 활발해진 2012년도에 카카오 이모티콘을 처음 출시했죠. 두루루 캐릭터 홍보에 도움이 될 것 같았거든요. 이후 요하를 선보였고,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게 됐네요. 돌이켜보면 오프라인과 웹, 모바일에 이르기까지 변하는 트렌드를 계속 따라오고 있는데, 운이 좋았어요.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사람들이 서점을 덜 가게 됐고, 문구 시장이 작아지면서 어려움을 겪었거든요.
꼬맘 _ 저는 영상디자인을 전공했고, IT회사에서 모션그래픽 제작을 담당했어요. 이모티콘 관련 기사를 보고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일 하다 보니 잊고 살았죠.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을 만났는데, 본인이 만든 이모티콘을 보여주더라고요. 멋지고 부러웠습니다. 그 친구가 자극제가 돼서 앙꼬를 그리게 됐어요.
제니퍼 _ 앙꼬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낸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꼬맘 _ ‘이모티콘을 그리자!’라고 생각은 했지만 ‘뭘 그려야 하나’ 고민이 되더라고요. 둘러보니 반려견 앙꼬가 보였어요. 친한 사람들에겐 애정 표현을 잘하는 저의 평소 성격을 투여해 앙꼬를 그렸죠.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를 여러 개 나열하고, 아이디어 스케치로 모션을 구상했습니다. 24종을 한 세트로 제출해야 하지만, 더 다양하게 스케치를 해 두고 주변의 의견을 듣고 골라서 출품했어요.
앨리스 _ 아포이 작가님은 개성이 다른 여러 캐릭터를 갖고 계시는데, 이들이 출시될 때마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어 더 대단한 것 같아요. 아이디어의 원천은 어디에 있나요?
아포이 _ 대부분 대학시절부터 습작 해 둔 캐릭터들을 꺼내 쓰고 있어요. 요하는 육아 일기나 스케치로 남겨둔 유난히 무뚝뚝하던 제 딸아이의 모습을 모티프로 하고 있습니다. 두루루는 아들의 아토피 때문에 서울을 떠나야 할까 고민할 때, 시골에서 볼 수 있는 두더지에서 착안해 만든 캐릭터예요. 이런 식으로 특이한 표정이나 습관을 가진 친구나 지인들을 관찰해서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메모해둬요. 오랜 시간 축적해 둔 아이디어를 스케치하면 기획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죠.
제니퍼 _ 두 분, 주변 친근한 것들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제니퍼 _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자기만의 세상이 생기잖아요. 하지만 이용자 반응은 그와 다를 수도 있고요. 그 간격은 어떻게 좁혀가시나요?
아포이 _ 요하의 예를 들면, “우리 조카 닮았어요” “내 손주 닮았네” 같은 피드백을 많이 받아요. 이용자 분들은 일상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면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이용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그런 포인트들을 찾기 위해 많이 고민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모션 작업에 공을 많이 들여요. 요즘은 24 프레임으로 제한돼 있지만, 제한이 없던 시절엔 60 프레임까지 그린 적도 있었어요. 나름의 디테일함을 좋아해 주신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꼬맘 _ ‘혀땳은 앙꼬’는 종전에 없던 극강의 애교 콘셉트가 차별점이 된 것 아닐까요. 저 역시 앙꼬의 귀나 볼 살 등 포인트들의 움직임에 집중해 모션을 매력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정해진 24 프레임 안에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덜어낼 것을 덜어내면서 이제는 익숙해졌어요.
앨리스 _ 아포이 작가님은 타깃 연령층이 저마다 다른 다양한 캐릭터를 출시했다는 점이 특이해요. 대부분 작가님들의 이모티콘은 특정 연령대에 편중되는 경향도 있거든요.
아포이 _ 탈락하거나 인기 못 얻고 사라진 캐릭터도 많아요 (웃음). 오래 작업하기 위한 저만의 전략이 하나 있는데요. 한 달 단위로 좋아하는 연령대가 다른 캐릭터를 작업합니다. 예를 들면 중년층이 선호하는 오여사를 작업한 다음 달에 어린 친구들이 좋아하는 그냥 그런 토끼를, 그다음 달에는 요하를 작업하는 식이죠. 한 캐릭터의 신작을 그리려면 최소 3개월이 걸리는 셈인데, 중간중간 환기가 됩니다. 동일한 연령대 타깃으로 한 이모티콘을 반복적으로 그려내면 아이디어가 쉽게 고갈되거든요.
제니퍼 _ 이모티콘은 혼자 하는 작업이잖아요. 아무래도 독립 작업은 외로울 것 같기도 해요. 작가로서의 루틴이 있나요? 예를 들면 매일 일정 분량의 글을 쓰고 달리기를 하는 하루키 작가처럼요.
꼬맘 _ 특별한 루틴은 없지만 너무 늦지 않게 자고,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해요. 피로하지 않도록요. 특별한 일 없는 이상 계획해 둔 작업 스케줄을 지키려고 합니다. 회사원들처럼 9to6를 시도해보기도 했는데, 그건 잘 안됐어요. 수시로 일 생각이 나더라고요. 최소한 새벽 작업은 피하자는 기준을 세웠죠.
아포이 _ 사무실이 따로 있긴 하지만, 집에서도 자주 일하게 돼요. 잠들 때까지 캐릭터를 생각할 수밖에 없거든요. 언제든지 아이디어를 스케치할 수 있도록 메모지나 샤프, 볼펜, 펜 있는 스마트폰 같은걸 늘 갖고 다녀요. 표현하기 어려울 땐 직접 춤을 춰서 녹화도 해요. 스마트폰 해킹당하면 저는 사회생활하기 어려울 거예요. 급하면 속옷 차림으로 춤을 추기도 하거든요. 아이디어를 저장하는 그런 루틴들이 자산이죠. 몇 년 치 그릴 소재들을 쌓아뒀어요.
걸어온 길과 세대 경험이 상이한 두 작가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선명한 목표 의식과 구체화된 실천 의지였다. 이런 작가들이 여럿 합류하면서 카카오 이모티콘의 세계는 9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제는 교육기관에 전문 커리큘럼이 생길 정도로 엄연한 전문 직업이 된 이모티콘 작가. 두 작가들의 성취와 몸소 겪은 그간의 변화, 그리고 지망생들에게 건네는 조언을 정리했다.
앨리스 _이모티콘 작가로 활동하면서 가장 짜릿했던 경험은 언제일까요?
꼬맘 _ 작년부터 제 이름을 내 걸고 작업을 시작해서 경력이 짧지만,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애정 어린 피드백을 받을 때 가장 행복해요.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도 재미있고요. 되게 소소한 질문들도 많이 와요. “앙꼬가 강아지인가요, 토끼인가요?” “앙꼬 옆에 있는 녀석은 블루베리냐 공이냐?” 같은 이야기들이요.
아포이 _ 저도 비슷해요. 최근 그냥 그런 토끼를 응용해서 독특한 ‘짤’이 생겨났다는 제보를 받고 놀란 적이 있어요. 생각도 못한 조합이었거든요. 운전할 때 앞 차에 내가 만든 캐릭터로 제작된 “아이가 타고 있어요” 스티커를 본다거나, 지하철에서 요하 에코백을 봤을 때도 무척 행복했습니다.
앨리스 _ 그러고 보니 아포이 작가님은 오프라인의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많이 진행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아포이 _ 이모티콘이 아니었다면 잡을 수 없었던 기회라고 생각해요. 채팅창에서 널리 쓰인 덕택에 제품 개발을 하시는 분들이 쉽게 떠올릴 수 있었을 테니까요. 한 드러그스토어와 탄산수에 그냥 그런 토끼를 래핑 한 게 최근 일이고요. 대형마트와 함께 담요나 휴지, 에코백 등을 제작하기도 했어요.
앨리스 _ 저도 마트에서 이모티콘으로 유명해진 캐릭터를 보고 괜히 뿌듯한 적이 많았어요. ‘성공한 이모티콘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데요, 어느 정도로 경제적 홀가분함을 얻으셨나요?
아포이 _ 독립 초기엔 매달 생활비가 부족해서 통장을 뒤져보는 생활을 오랫동안 했어요. 꽤 긴 시간 힘들었죠. 지금은 그런 걱정에서는 벗어났고요. 작업에 열중하면 생활 유지에 어려움이 없는 든든한 상태라고 말씀드릴게요.
꼬맘 _ 아주 어려운 질문이네요. 경제적으로 걱정하지 않고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정도로 벌고 있다. 그리고 부모님께 뭔가 해드리고 싶을 때,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대답이 될까요. 회사원일때보다 한결 나은 편입니다 (웃음).
제니퍼 _ 이모티콘 작가가 되는 방법에 관해 질문을 자주 받으시죠?
아포이 _ 아주 많이 받았어요. 연령대도 중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해요. 고민과 걱정에는 슬기롭게 판단하시게끔 성심껏 답하는 편인데요. 제 자신이 미대 출신이 아니다 보니 주변에 그림 그리는 친구가 없어요. 혼자 시작했고, 을지로 인쇄소 가서 몸으로 부딪치며 익히는 등 과정에서 막막함과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앨리스 _ 2017년 4월, 카카오 이모티콘 스튜디오가 열렸잖아요. 이제는 중고생 작가도 있을 만큼 일반인들도 이모티콘 그리기에 많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경쟁 환경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어떻게 느끼세요?
아포이 _ 기발한 이모티콘들이 많아요. 좋은 콘텐츠가 많아서 이용자 선택의 폭이 넓어진 거죠. 창작자 입장에서 보면, 한층 경쟁이 심화됐어요. 인기의 오르내림이나 트렌드 변화도 과거에 비해 훨씬 빨라졌죠.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게 큰 부담이자 스트레스입니다. 제 머릿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아이디어가 50이라면 속도감은 70~80이거든요. 언제까지 여기서 버틸 수 있을까 걱정되는 이유죠. 하지만 몇 년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저도 모르게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꼬맘 _ 저는 카카오 이모티콘 스튜디오 덕분에 독립 작업의 첫 발을 뗐어요. 회사 다닐 때 동료들이나 처우는 모두 만족스러웠지만, 언젠가는 독립하겠다는 욕구가 있었어요. 첫 도전에서 다행히 결과를 얻었어요. 회사나 클라이언트의 일이 아닌, 나의 창작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반응을 얻는 게 매력적입니다. 더 많은 분들이 이런 매력을 느끼면 좋겠어요.
앨리스 _ 다른 모바일 플랫폼에서도 요하나 오! 나의 여사님 같은 캐릭터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신데요, 다른 플랫폼과 카카오 이모티콘의 차이점은 어떤 게 있나요?
아포이 _ 많은 이용자 수, 그리고 네트워크 효과에서 오는 파급력이죠. 카카오 이모티콘에서 인기를 얻은 뒤 정말 많은 협업 제안을 받았어요. 해외 메신저 플랫폼에서도 요청이 왔는데, 번역기로 소통하며 작업했습니다. 기혼자인지 몰랐던 제작진을 통해 커플 맺어주는 TV 프로그램 출연 제안도 받았어요. 개인 작가로서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모든 활동들은 카카오 이모티콘 덕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작품에 집중하면서도 세상과 꾸준히 소통할 수 있도록 카카오가 많은 도움을 줬어요.
제니퍼 _ 이모티콘 창작에 나서는 분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꼬맘 _ 갓 시작했고, 캐릭터 전공자도 아닌지라 조언을 한다는 게 주제넘은 것 같은데요. 발 빠르게 시도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하고 싶다!’ 생각했을 때와 실행했을 때 사이에 몇 년의 시간차가 있었거든요. 마음이 동할 때 스케치라도 먼저 해보시라고 조언드리고 싶어요.
제니퍼 _ 작가로서 롤 모델이나 지향점을 말씀해주신다면?
아포이 _ 중고생 때 고유의 따뜻한 감성을 좋아해서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많이 봤어요. 좋아하는 작품들은 100번 이상 봤거든요. 미야자키 하야오를 좋아해요. 흰 수염을 달고 작업하는 모습이 멋져요. 그림 그리는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원숙미가 생기는 것 같아요. 깊어지는 생각을 투영할 수 있는 매력 있는 직업이죠. 도태되지 않고 오래 버티면서 재밌게 작업하고 싶어요.
꼬맘 _ 이모티콘으로 시작했지만, 이야기를 가진 캐릭터로 성장시키고 싶어요. 본업이었던 영상 디자인 기술을 통해 캐릭터의 이야기를 더 만들고 여러 플랫폼에서 이용자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엄청 부지런해야겠죠?
제니퍼 _ 앞으로 어떤 캐릭터를 더 만들어 내실 건가요?
꼬맘 _ 최근 앙꼬 동생 뚱꼬를 단독 캐릭터로 발전시키고 있어요.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캐릭터들을 더 만들어서 탄탄한 스토리 라인을 구성하고 싶습니다.
아포이 _ 구체적으로 어떤 캐릭터라고 정해 놓기보다는, 습작 해 두었던 것들을 차례로 잘 소개하고 싶어요. 지금은 매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서, 원래 꿈꿨던, 혹은 표현하고 싶던 이야기들을 미뤄두고 있거든요. 그런 이야기들을 꺼내 놓을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앨리스 _ 혹시 카카오에 바라는 점이나, 카카오 이모티콘을 통해 더 하고 싶으신 것이 있을까요?
꼬맘 _ 작가로서 알려질 기회를 잡는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온 국민이 쓰는 플랫폼을 열어줘서 고맙고, 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더 넓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이미 많이 활성화된 플랫폼인데 앞으로 어떻게 더 키워 나갈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포이 _ 캐릭터 업계가 많이 어려워요. 해외 진출도 여러 이유로 힘든 상황이고요. 캐릭터 업계를 한층 더 활성화시키는 계기를 카카오가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채팅창에서 태어나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영역으로 뻗어 나간 카카오 이모티콘. 창작자 수와 세분화된 감정 표현의 단위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다양성을 확보한 이 생태계는 이제 채팅창의 조력자에서 생활 전반에 입체적으로 함께하는 파트너로 변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