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 일기
요즘에도 꼬마들은 숙제로 일기를 쓰고 있을까. 초등학교를 다닐 때 보여주기 위해 쓰던 나의 일기는 거짓말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쓰거나, 즐겁지 않았는데 즐거웠다고 쓰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작은 사회를 경험하면서 상대가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을 선택했던 것 같다. 어릴 때 일기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사람도 많던데, 나의 경우는 반대다. 꼬마 시절의 귀여운 일기장은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지 오래됐다.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일기장이 따로 있었지만, 학년이 올라가면 바로 찢어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때는 ‘사생활’의 개념이 적용되는 나이가 아닌지라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남아있지 않아서 아쉽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거짓말로 채워진 일기는 또 있었다. 또래 친구들과 주고받던 ‘교환일기’였다. 물론 상대에 대한 감정에 대한 것은 거짓이 없었지만, 나에 대한 것은 때때로 허영이나 자존심을 섞어 거짓말을 썼다. 없었던 일을 상상으로 지어내거나,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것처럼 쓰기도 했다. 친구를 미워한 적은 없었지만, 부러움과 질투의 감정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이중 일기를 쓰고 주기적으로 일기장을 폐기한다. 블로그에 매일 ‘오늘 일기’를 쓰고는 있지만, 손글씨로 쓰는 일기가 따로 있다. 다만, 숙제검사를 받을 때의 일기는 거짓말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웹에서의 보이는 일기는 은유와 비유로 채우고, 직접적인 표현을 뭉갤 때도 많지만, 모두 사실 그대로의 사건이나 감정을 기반으로 쓴다. 결국 폐기할 텐데 왜 나는 이다지도 오늘에 대한 기록을 놓지 못하고 집착하는 걸까.
일기(日記)는 일기(一期)를 대변하니까. 하루하루 적은 일기가 결국 하나의 삶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니까. 일기는 가장 개인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솔직하고 은밀하다. 개인의 사건은 개인만의 것으로 끝난다고 보기 어렵다. 어떤 누군가의 사건은 사회나 국가에도, 지구 반대편 어느 곳에도 얼마든지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내 일기를 안네의 일기나 난중일기처럼 역사적 증거로 남길 일은 없겠지만, 어떻게든 일기를 쓰고 있는 나의 기록 집착에 대한 변을 하는 셈이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일기를 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