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oring Position_네번째 이야기
(지난 편에 이어)
양준혁 선수(오른쪽)와 자석 같은 후배 이승엽 선수(@경향신문)
이 둘은 이만수를 잇는 삼성 라이온즈의 심장이자 핵심 동력이었다
"양준혁, 해태타이거즈로의 트레이드"
집에 도착한 신문을 펼치자마자 눈알이 빠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기사를 다시 들여다봤다. 임창용 투수와의 트레이드였다. 심지어 양준혁 선수에 현금을 더한 트레이드라니! 나는 지혜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씩씩, 거리던 우리는 단골 분식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신문을 들고 헉헉, 숨 차오르는 것도 모르고 뛰었다. 신문을 보더니 눈물을 쏟은 지혜, 반면에 분한 감정 때문인지 한참을 뛰어서인지 진정이 되지 않아 물을 벌컥이던 나. 중학교 2학년 열 다섯살의 지혜와 나는 포크를 손에 불끈 쥐고 말을 잃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삼성라이온즈 팬들에게 '양준혁'은 한 명의 선수 이상의 상징이었다. 그런 그를 타 구단에 보낸다는 건 팬들을 무시한 처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구단에 대한 충성도가 높았던 우리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이었다.
"우리, 삼성 응원하지 말자."
"그래.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다른 팀 가자."
지혜는 양준혁 선수를 따라 해태타이거즈로, 나는 평소에 플레이 스타일을 좋아했던 OB베어스(현 두산베어스)로 응원팀을 옮겼다. 게다가 대학 진학으로 인해 내가 대구를 떠나고 OB베어스의 연고지이자 나의 고향이기도 한 서울에서 10여년을 지냈고 잠실구장을 갔기 때문에 삼성라이온즈에 대한 기억과 감정은 금방 잊혀졌다.
지금도 안타까운 건 내가 서울로 올라오는 동시에, 지혜는 엄마를 따라 경남으로 내려갔다. 물리적 거리 못지 않게 서로의 생활 환경이 다르다보니 심리적 거리도 멀어지면서 우리는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당시 유행했던 사이트 '아이러브스쿨'이나 이후 이름으로 검색할 수 있던 '싸이월드'를 통해 지혜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워낙 이름이 흔하기도 했고 그 친구의 성격상 SNS를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이라 검색으로 찾을 수 없었다.
양준혁 선수 은퇴식(@연합뉴스)
2010년 9월 19일, 추억의 대구 시민야구장에서 양준혁 선수의 은퇴식이 열렸다. 그날 마침 비가 내려었는데, 은퇴식이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펑펑 울었다. 그때 나는 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나의 젊은 시절이 다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참 열심히 살았어요, 고마워요 양신! 당신이 아니었다면 나는 야구를 못 만났을 겁니다!"
매년 시즌이 끝나고 열리는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에 가보고 싶었는데 항상 못 가는 사정이 생겨서 중계로만 봤다. (작년에는 <프리미어12> 경기 보러 가느라 포기. 이 날의 이야기도 언젠가 남길 수 있길) 올해는 양신의 결혼식이 이날 예정되어 있는데, 얼마 전 엠스플 <베이스볼 프리뷰톡>에서 코로나19로 인해 고척돔이 아닌 12월 26일에 양재의 모 웨딩홀에서 결혼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12월 5일 고척돔에서 양신을 보며 웃을 수 있길! 그리고 이제는 만날 수 없지만 항상 그리워하는 친구 지혜가 내 곁에 있는 것처럼 신나게 웃을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