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냥당당 : 호기심 많은 냥이들이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4)
나를 소개할 때 자주 언급하는 말 중에 하나가 ‘앨라이(Ally)’다. 성소수자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들을 응원하는 이들을 일컫는 국제 용어가 바로 ‘앨라이’인데, 성소수자는 물론 장애인이나 어린이, 노약자는 물론 각종 비인간동물까지 존중하려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나를 소개할 수 있는 선명하고 명확한 용어기도 하다.
작년 7월에 처음으로 무지개 깃발을 들어 올렸던 <대전퀴어문화축제>. 올해는 6월로 당겨 같은 장소인 대전역 동광장 부근에서 지난 7일에 열렸다. 작년에는 장마 기간 중에 열렸다 보니 당일 비는 오지 않았어도 하루종일 날씨가 오락가락 하면서 너무 습하고 더워서 헉헉, 대다 온 기억이 강해서 ‘이번은 덜 하겠지?’ 했는데 웬걸. 올해 축제도 여전히 더웠다. 다행히(?) 습하진 않았지만 건식 사우나에 들어가 있는 듯 스니커즈를 신은 내 발은 마치 오븐 속 타르트처럼 바-싹 구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 자리를 만드느라 애쓴 분들을 위해 그늘에 가서 쉬지 않고 무대 앞에서 꿋꿋이 서서 본 행사를 끝까지 다 지켜보며 박수와 환호성을 질렀다.
발언과 공연을 교차로 배치한 덕에 지루하지 않게 무대를 즐기고 있었다. 순서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무렵, 다음 순서는 축제의 시민 위원 중 한 분이 무대에 올라 발언을 시작했다. 처음 뵙는 분이기도 해서 더 귀를 기울여 듣고 있는데 내 오른쪽에 있던 한 노년의 남성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고래고래 소리는 질러대도 목소리에 기운이 그닥 있지도 않았고 뭐라고 말하는 지도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진행 인원들의 제지에도 그치지 않아 결국 경찰 분들에게 제지를 받으면서 나갔다.
사실 그는 이미 그 전부터 무대의 발언을 듣고 있었다. 행사 중간부터 내 옆에 있었는데 이 더운 날에 양복 차림에 구두까지 신고 양 쪽에 목발까지 낀 상태에서도 계속 서 있길래 ‘어디 앉을 자리를 안내해 드려야 하나?’ 싶으면서도 혐오세력일지도 몰라 곁눈질로 지켜보던 차였다. 그는 왜 그 타이밍에 소리를 질렀을까? 참고로 당시엔 발언 초반이었고 시민 위원 분도 자극이 될 만한 내용을 말하지도 않았었다. 그렇다면 왜?
나는 확신했다.
혼자였고, 여성이었으니까.
만만했던 거지.
집에 돌아 와 찍었던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 감동을 마음속에 잘 담아 놓으려는데 문득 이 사진을 발견했다. 난 분명히 땡볕아래 나에게 그늘이 되어 준 휘날리던 깃발이 고마워 찍은 사진이었는데, 무대를 방해했던 그 노년의 남성이 찍혀 있었다. 그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잠시 발언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행여 마음을 다친 건 아닐까.
정확한 데이터가 나와 있는지 모르겠지만, 보통 동네 고양이 돌보미들의 상당 비율은 1인 여성이 높고, 시간대의 경우 낮보다는 고양이들이 활발히 움직이는 밤에 밥을 주러 다니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관련 범죄나 불쾌한 에피소드 들을 보면 혐오자들이 이 부분을 노리고 위협하는 경우들이 많다. 나는 최대한 주민 분들과 마주치기 위해 아침/오전 시간대에 밥을 주는데, 이제 4년이나 됐다보니 동네에서 소문이 났는지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분들은 사자후를 체험한 뒤 다시는 싫은 소리를 못 했다. (뒤에서 혼자 욕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말이다)
나보다 힘이 없어 보이니까 쉽게 화를 내고 범죄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건 동네 고양이들도, 1인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힘이 없어 보이면 더 보호해 줘야 하는데 왜 분풀이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 나와 생각이 다르면 토론을 하면 되는데 말 듣지도 않을 거면서 혼자 난동 부리고 가 버리면 자신에겐 뭐가 남을까.
누구에게나 내일이 오는 건 아니다. 더위에 지쳐 있다가 챙겨 준 시원한 물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하랑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왠만한 더위에도 나에게 엉덩이를 착, 붙인 채 갸르릉을 불러주는 몽글몽글한 이 존재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세상의 모든 혐오들도 결국 사랑의 힘으로 우리는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승리의 내일을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