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냥당당 : 호기심 많은 냥이들이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3)
작년 11월 말 어느 새벽, 첫 눈이 내렸다. 첫 눈. 동네 고양이들을 비롯 가난한 이들을 고단하게 만드는 겨울이지만 그래도 잠깐이나마 세상을 빛내는 반가운 첫 눈. 날이 밝아오는 어둑한 하늘을 바라보며 제일 먼저 생각난 건 봄이었다.
‘엄마 다랑이 품에서 잠들고 있었을 봄이는
이 눈을 맞아 봤을까?’
냥식당 숨숨집에 상주하는 다랑이의 두 번째 소생이었던 4남매를 나는 ‘계절들’이라고 불렀다. 다른 세 명은 엄마를 닮은 반고등어였는데, 홀로 완고등어였던 봄이는 계절들 중에 엄마 곁에 유일하게 남은 아깽이였다. 제일 미묘였던 겨울이는 놀다가 잘못 떨어졌는지 죽어 있었고, 형제였던 여름이와 가을이는 내가 없는 시간대에 교회에서 키운다고 이틀에 걸쳐 둘을 납치해 갔다고 한다. 그렇게 홀로 남은 봄이가 엄마 다랑이 곁에서 내년 봄을 함께 맞이하길 바랐고, 그래서 ‘첫 눈’의 의미가 나에겐 더 소중했다.
평소 가던 시간대에 맞춰 먹을거리와 따듯한 물을 보온병을 담아 집을 나섰다. 육교 계단을 내려가며 오늘도 똑같은 루틴을 시작했다. ‘다랑아~ 봄아~’ 총총총, 달려오는 소리. 다랑이였다. 다리에 부비부비, 반가움에 꼬리는 하늘을 향해 있는 다랑이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다랑아, 봄이는?”
“봄아? 봄아!”
“…… 봄아 ……”
봄이는 그 날도, 다음 날도 영영 만나지 못 했다. 혹시나 놀다가 다쳐서 꼼짝하지 못 하거나 죽었나, 싶어 냥식당 주변 풀밭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봄이를 찾을 수 없었다. 무너지는 마음을 애써 숨기며 상을 차리고 다랑이에게 밥을 먹였다. 아가들이 없어진 지 얼마 안 되었다면 다랑이가 특유의 울음소리로 찾아야 맞는데, 다랑이가 평소와 다름없는 거 보면 봄이가 없어진 지 꽤 된 것 같았다. 설마 또 누군가 납치해 간 걸까? 하지만 여름이와 가을이가 납치된 이후로 육교에 경고문을 붙여 놨었고 그 둘에 비해 봄이는 경계가 강해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기 때문에 납치는 아닌 것 같았다. 지금도 사라진 이유를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날씨가 추워지면서 엄마 다랑이와 차에 오르내리기를 한창 즐기고 있던 봄이었기에 그렇게 사라진 게 아닐까, 추측할 뿐. 전 날 비 내린 뒤 길 위를 아장아장 걷던 봄이를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어 ‘얼른 인화해야지’ 했는데 그게 마지막 사진이 되고 말았다.
다랑이가 밥을 먹는 사이 눈이 내렸다 말았다, 했다. 우리 봄이의 첫 눈을 함께 맞고 싶었는데 너는 어디에 있니. 다랑이는 당당이와 함께 아무 일도 없는 듯 밥을 먹고 있다. 홀로 남은 봄이를 애지중지 키우던 다랑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기도 슬플텐데 애써 생각지 않는 걸까, 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단념한 걸까. 내 마음은 딛고 있던 땅을 뚫고 저 지하 세계 점점 더 깊이 쓸려 가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육교 위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
“고양이 밥 먹네요- 오늘은 두 마리네.”
“(눈물을 닦고) 네, 여기에서 제일 시간을 많이 보내는 두 마리예요”
“그렇구나……”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마저 육교를 건너는 줄 알았던 노년의 여성 주민 분은 우리 사이의 침묵을 끝내고 의외의 말을 나에게 던졌다.
“의사 선생님이, 나보고 우리 동네에서 제일 우울한 사람이래요. 가족들이 밖에도 못 나오게 하는데 너무 답답해서…… 아, 내가 제일 우울하데요.”
“날씨도 추워졌고 하니까 걱정되셔서 가족 분들이 집에 계시라고 한 걸 거예요. 그리고 선생님이 제일 우울한 거 아닐 거니까 걱정 마시고 좋~은 생각만 하셔요.”
냥손주 봄이가 실종돼 마음이 엉망진창, 조금씩 내리는 눈이 녹아 흙이 질퍽거려 엉망진창.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저 노인에게 나는 긍정을 말하고 있었다. 답답했지만 그녀의 말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 눈이 점점 많이 와요. 아래 잘 보고 안전하게 걸어가셔요. 가족 분들이 걱정하시니까~”
“그래요. 가야죠. 수고해요-”
그녀와 내가 다시 마주쳤었는지는 모른다. 이곳을 오가는 많은 주민 분들은 나를 관찰하고 알아보지만, 정작 내가 마주치는 사람들은 다수이기 때문에 얼굴 트고 인사를 주고받는 분이 아닌 이상 기억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을 주고받을 일이 다시 있을지 모르겠고 의사가 그녀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딘가에서 내일을 기대하게 될 소망을 찾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