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가 아닌 동네 고양이를 만나다

호냥당당 : 호기심 많은 냥이들이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2)

by ThisJunghye

* 2023년에 쓴 글입니다 *


동물학대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다가 운명처럼 줄리를 가족으로 맞이한 나는 길고양이들의 삶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왜 길고양이들은 ‘도둑고양이’라 불리며 하대 받을까, 길고양이들은 주로 어떻게 밥을 먹고 어디에서 살아갈까? 알아 갈수록 나는 일종의 부채감에 마음이 무거워져 갔다. 특히 날씨가 궂은 날이면 품에 파고든 줄리를 안고 있어도 바깥의 수많은 길고양이들을 떠올리느라 괴로워하기도 했다.


‘줄리는 내 품에서 이렇게 편안히 지내는데……’

‘줄리는 내가 입양하기 전 길에서 어떻게 버텨왔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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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이유로 다큐멘터리를 진행이 멈춘 사이, 우연히 시내 버스를 타고 지나다 외곽의 낯선 동네를 지나게 되었다.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라 하기 에는 농촌에 가까운 모습을 갖고 있던 매력 있는 그 곳에 끌렸다. 마침 기존에 살고 있던 곳의 계약이 끝나가던 터라 바로 동네를 방문해 살 집을 계약하고 추가로 입양한 둘째 고양이까지 셋은 미련 없이 그 곳으로 이사했다. 낮은 담의 8,9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집이 대부분이었던 그 동네는 길고양이들이 살기에 좋아보였다. 나보다 동네를 더 잘 알고 사는 고양이들을 만나러 퇴근길이나 휴일에 틈틈이 동네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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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우리 동네는 일상의 일부를 내어 동네 고양이들을 돌보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았다. ‘캣맘’ ‘케어테이커’ 라는 말을 일부러 사용할 필요 없이 일상을 함께 하는 존재로서 고양이들을 반려하는 분들이었다. 자동차 아래에 사료와 깨끗한 물을 넉넉히 두고, 고양이들을 내쫓지 않으며, ‘나비야’ ‘애옹아’ 라고 따뜻하게 불러주시는 분들. 그런 분들이 나와 같은 골목을 오가는 이웃이었다.


대도시에서만 나고 자란데다 특히 신도시 첫 아파트에서 십대 시절을 보냈던 나는 이런 공간에서 사는 게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 곳의 공기, 소리, 기타 환경들이 낯설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전의 거주지들에 비해 훨씬 빠르게 편안함을 느꼈다. 그 곳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도 그런 것 같았다. 느긋하게 걸어 다니고, 나른하게 담 위에 앉아 식빵을 굽고 있으며, 사람에게 쉽게 다가오는 모습들을 보면 걸음을 멈추고 눈과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분명 삶은 그들이 더 고단할 지도 모르는데, 어느새 나는 그들에게서 위로받고 있었다.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과 사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동네 고양이들을 많이 언급하게 되었다. ‘길고양이’가 아닌 ‘우리 동네 고양이’ 이야기 말이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자주 만나는 고양이들도 나의 이웃이기에 ‘길고양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에 ‘동네 고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농촌으로 귀촌한 지금도 ‘동네 고양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우리 동네, 우리 이웃. 우리 동네 고양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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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정이 쌓이고 쌓이다 3년 후 농촌으로 이사 오던 전날 늦은 밤, 마지막 선물이 될 사료와 캔을 챙겨 나와 귀를 쫑-긋 세운 채 어딘가에 웅크려 부슬비를 피하고 있을 동네 고양이들을 찾아 나섰다. 매번 마주치던 자리에서 못 만난 고양이들에게는 작별의 말을 남겨 두었고, 발걸음을 알고 ‘애-옹!’ 하며 나타난 고양이들에게는 음식을 건넸다. 챱챱챱…… 골목을 울리는 유일한 소리에 갑자기 눈물이 울컥, 하고 올라왔다. 아파트가 들어올 예정인 재개발 구역을 오가며 자주 마주치던 고양이는 나의 울먹이는 마지막 인사가 이상했는지 내가 골목에서 사라질 때까지 굵어진 비를 맞으며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아마 반 이상은 고별로 떠났을 나의 첫 동네 고양이들. 그래도 덜 아파하며 떠날 수 있었던 건 내가 떠난 후에 동네 고양이들을 챙겨 줄 좋은 사람 이웃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3년 전 내가 이 곳에서 이사 오기 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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