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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지킴이 Oct 18. 2017

영화 <아이캔 스피크>,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

더 이상 피해자들이 침묵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영화 <아이캔 스피크>의 주인공 나옥분할매(나문희역)는 모든 공무원들이 두려워하는 대상 1호다. 날마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면서 동네 방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민원을 접수한다. 그렇게 접수한 건수만 벌써 8천 건. 그런 그녀 앞에 원리원칙주의자 9급공무원 민재(이제훈 역)가 나타난다. 민재는 그동안 '좋은 게 좋은 거' 또는 '어르신'이라는 이유로 원리원칙을 무시하고 민원을 접수해 온 옥분에게 하나 하나 깐깐하게 요구한다. '민원성애자' 옥분은 깐깐하게 민재가 재수 없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민원 접수에 집중한다.



'민원 접수'에 모든 힘을 쏟는 것 같은 옥분에게는 사실, 다른 취미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영어 배우기'다. 옥분은 영어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학원도 등록하고, 고군분투하지만 '수업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학원에서 쫓겨난다. 집으로 돌아가던 옥분은 원어민과 자유자재로 이야기하는 민재를 발견하고, 민재가 가는 곳은 어디든 쫓아다니며 '영어 선생님'이 돼줄 것을 요구한다. 일언지하에 거절하던 민재는 결국 옥분의 영어과외를 맡게 되고, 두 사람을 영어 공부를 하며,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간다.


어느 날 민재는 옥분에게 왜 영어공부를 하느냐고 묻는다. 옥분은 어렸을 때 미국으로 입양 간 남동생과 이야기하기 위해 영어를 배운다 대답했지만, 사실 그녀가 영어를 배우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열 네 살. 꽃다운 나이, 엄마, 아빠 밑에서 한참 응석받이로 자랄 나이에 옥분은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다. 매일 매일 악몽같은 시간을 보내던 그녀는, 죽지 못해 살다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부끄럽다' '수치스럽다'는 이유로 그녀의 입을 막아 버리는 엄마 때문에 자신의 아픔을 가슴 속 깊은 곳에 묻고 살아나간다. 또 다른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정심'은 옥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간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를 참상을 온 세상에 알리고, 가해자들의 사과를 요구하며 당당히 살아가던 정심. 늘 당당하게 살아가던 정심은 어느날 찾아온 '치매'로 인해 더 이상 자신과 다른 성노예 피해자들의 참상을 알리는 일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옥분이 영어를 배운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언젠간 자신이 정심의 역할을 대신 해야 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어떻게 해서든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워싱턴에서 자신이 겪었던 끔찍한 기억과, 일본군 성노예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성공한다.



영화 <아이캔스피크>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은 옥분 할매가 돌아가신 엄마 무덤 앞에서 '왜 그랬어'라고 읇조리는 장면이다.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던 분들 중 대다수가 우리 나라에 돌아온 뒤 자신의 피해 사실을 숨기며 살아갔다고 한다. 자신이 가장 믿는 가족에게도, 이웃에게도 자신이 겪은 아픔을 털어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가장 가까이에서 그들의 아픔을 쓰다듬어줘야 할 존재들이 그들의 존재를 '부끄럽다고' '수치스럽다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웃어야 할 나이에. 힘 없는 나라에 태어났다는 죄로 모든 것을 빼앗긴 그들. 그분들이 겪었던 아픔, 수치, 그리고 아직도 남아 있는 상처는 그분들 탓이 아니다. 그분들을 지켜주지 못했던 못난 나라 탓이고, 그분들이 돌아왔을 때 적절하게 보호해 주지 못했던 우리들 탓이다. 영화 <아이캔스피크>의 마지막 장면에 미국 의원들이 옥분 할머니에게 '미안하다' '유감이다'는 말을 전하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일본 대표들은 옥분을 비웃고, 비난한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까지 어떠한 사과의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지금도 이따금씩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뉴스로 전해 듣는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리고 아직 제대로 된 사과도 받지 못해 얼마나 분하셨을까.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아픔을 겪은 할머님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전범국인 일본의 사과를 반드시 받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힘 없는 개개인들이 <아이캔 스피크>라고 분투하는 그 시간들에 우리 모두가 <위캔 스피크>로 힘을 실어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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