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지킴이 Nov 08. 2017

여자 서른,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생의 방향성을 발견하는 눈, 그리고 그대로 살아내는 용기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느즈막히 온 사춘기는, 어째서인지 스스로 떠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늦게 온 사춘기를 떠나보내려 회사도 옮겨보고, 옮긴 회사를 그만둬보고, 혼자 여행을 떠나봐도 어째서인지 “어차피 매일 반복되는 삶을 살게 되는데 인간은 왜 사는걸까. 이렇게 사는 건 죽는 날을 기다리며 사는 것과 다름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그리고 약 일 년 동안 끊임없이 되물었던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이번 제주 여행에서, 책을 읽고, 바닷가를 거닐고, 숲길을 걸으면서 아주 희미하게나마 발견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나는, 참 바쁘게 살았다. 공부를 열심히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당시 기울어가는 가정 형편에 공부를 계속 해야 하는지, 아니면 당장 몇 푼이라도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입학했던 식품 공학과에서 그토록 원했던 신문방송학과로 전과를 했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일을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매일 매일 수업 듣고, 아르바이트만 할 뿐. 내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다른 나라로 도피해 보면 좀 달라질까 싶어 정부 지원 프로그램으로 미국에도 다녀왔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경제적인 빈곤은 늘 나를 괴롭혔고, 나는 그 속에서 해답을 찾을 생각 보다는 그냥 불쌍한 내 자신이 하루 하루를 버텨내는데만 집중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 때의 나는 매일 매일 몸이 부서져라 힘들게 살았으니까.


물론, 지금도 나는 그 때의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뒤돌아보니, 그 때의 치열함에는 한 가지 부족한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방향성”


현재 한 사람의 기대 수명은 약 80세라고 한다. 갑작스럽게 삶을 마감해야 하는 운명이 닥치지 않는 이상 사람으로 태어나면 평균 80년의 세월을 산다는 것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할 수 있는 이 시간을 우리 모두는 그냥 “살아지는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지는대로” 살고 싶지 않다면,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미국 워싱턴 디씨에서 함께 일한 적 인던 신 선생님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효진씨,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무작정 시작하면 안돼요. 자신이 뛰어가려는 방향이 어느 방향인지, 그 방향이 나한테 잘 맞는 방향인지를 한번씩 확인하고 그 길을 걸어야 해요. 그래야 내가 하는 모든 노력들이 빛을 발할 수 있을테니까요”라는 말씀을 하셨다. 물론, 신 선생님께서 그 말씀을 했던 당시에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그냥 좋은 분이 말씀하시는 거니 좋은 덕담이겠거니 했을 뿐.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에서, 내 인생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이 시점에서 생각해 보니 그 이야기는 인생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었다. 어차피 사는 인생, 그냥 하루 하루 사는 대로 살아야지가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삶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끊임없이 고민한 다음에야 진짜 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그런 말씀이셨던 것이다


물론, 방향성만 제대로 잡았다고 해서 제대로 된 용기를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또 하나 필요한 게 있다. 바로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겠다는 용기.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내 길에 확신이 있든 없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끝까지 살아내겠다는 용기. 그것이 필요한데, 삼십 년이란 인생을 살아온 나에게는 결정적으로 “용기” 까지 부족했던 것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인생에는 “방향성”과 “용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서, 내 삶이 당장 드라마틱하게 바뀔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겠다는, 밑그림이 있으니 이제는 내가 원하는 색깔을 골라 조금씩 채워 나가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내 인생의 끝에, 내가 눈을 감기 바로 그 직전의 순간에 “그래도 꽤 괜찮게 살았던 인생이구나. 이 정도면 아름다운 그림은 못 돼더라도 아무 재미 없는 무채색의 인생은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8일 간의 제주여행을 모두 끝내고, 오늘 나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앞으로 내가 마주칠 일상을 잘 살아내는 나를 꿈꾸며, 이쯤에서 나혼자 떠나왔던 제주 여행을 평가해본다. 나만을 위해 오길, 정말 잘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도, 나를 치유하는 곳 -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