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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사의 몫 Mar 18. 2020

초보자를 위한, 와인 시음하는 법

누구나 알 것 같지만 그래도 다시 보면 좋은 팁

사실상 한국 등 와인 생산국이 아닌 곳에 거주하면서, 와인 시음을 제대로 해볼 기회를 얻기란 드물긴 하죠. 하지만 알아두면 언젠가 도움이 될 거 같은 내용을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아실만한 분은 다 아실지 모르지만, 같이 되짚어 보아요. 그리고 기회가 올 때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테이스팅해 보세요.


컵에 음료를 따르면 보통 바로 벌컥벌컥 마시기 마련이지만, 글라스에 따른 와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와인을 마시는 것과, 시음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니까요. 대부분의 와인은 다양한 맛과 향뿐 아니라 복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단순히 술이 마시고 싶어서 와인을 고른 사람에게 와인은 그렇게 마시면 안 된다고 잔소리할 권리는 없죠. 다만 와인을 그냥 마실 때와 와인을 음미하면서 시음할 때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와인을 천천히 음미하며 시음하는 법을 설명해보도록 할게요.


와인을 시음할 때는, 잔의 절반 이하로 받도록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보통 잔의 1/3에서 1/4만 따르는 것이 좋은 거 같아요. 잔에 따라진 와인은 일단 마시기 전에, 눈으로 먼저 꼼꼼히 봅니다. 잔을 들어 빛에 비춰봤을 때, 와인이 얼마나 반짝거리는지를 체크해보세요. 그리고 하얀색 배경을 띄는 종이나 테이블, 벽에 잔을 한 번 비춰보세요. 레드 와인도 대충 보면 모두 같은 색깔일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색조가 미세하게 다릅니다. 보랏빛, 검붉은 빛, 체리 빛이나 새빨간 루비 같은 빛을 띠는 색조 등 다양하죠. 그리고 특히 피노 누아의 경우, 잔을 쥐었을 때 손가락이 비쳐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와인은 투명하지만, 필터 처리를 하지 않은 와인은 덜 반짝거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름이 낀 것처럼 흐린 색을 띠는 건 퀄리티를 의심해볼 수 있죠. 아래는 색상 참조를 위해 첨부한 와인 색상 대조표입니다. (출처 winefolly)


와인의 색조나 투명도를 확인한 후, 이제는 와인 잔을 원을 그리듯 조금 흔들어 보세요. 사진 참조. 

이를 영어로는 wine legs라고 하는데, 보통 알코올 농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됩니다. 당도가 높은 와인일 때도 이 wine legs 부분이 좀 더 천천히 내려오죠. 알코올 농도가 높을수록 이 wine legs 부분이 더 많이 생기며, 마셔보면 목 안쪽에서부터 약간 뜨겁고 살짝 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와인병의 뚜껑을 닫고 병을 흔들면 이 wine legs가 생기지 않는데요. wine legs는 기화 (evaporation) 현상에 따라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와인에 산소가 좀 들어갈수록 맛이 더 열리기 때문에, 와인 잔을 흔드는 것은 맛을 위해서도 중요한 과정이에요. 와인 잔을 공중에 들고 흔드는 것이 익숙하지 않거나 와인을 쏟을까 걱정되시는 분은, 테이블에 둔 채로 흔들어도 됩니다. 실제로 와인 학교에 다닐 때는 펜에다가 고무줄을 끼우고 돌리면서 연습하기도 했어요. 테이블에 둔 채로 흔들 때는, 와인잔 바닥 부분을 손가락 두세 개로 잡고 흔들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wine legs를 살펴보며 이게 많을수록 바디감이 강하고 고품질의 와인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근거는 되지만, 절대적인 수치라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해요. 가장 일반적으로는 알코올 농도를 어림잡는 데 사용합니다.


자 이제, 와인잔을 충분히 흔들어 보셨으면 와인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세요. 보통 와인 잔을 흔들어 본 후, 바로 코에 대고 냄새를 맡는 게 더 잘 맡아지는 편이에요. 과일 향, 나무 향, 신선한 향, 뭔가가 잘 익은 듯한 향이 느껴지는지 살펴보세요. 코가 예민하고 피곤해지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잔을 흔든 후 맡아보세요. 같이 시음하는 사람들과 의견을 나눠보는 것도 좋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쉽게 느껴지는 아로마가 나에게는 미지의 영역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렇게 잔을 흔들고 아로마를 캐치하려고 하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고 순수한 즐거움으로 느껴지는 정도가 딱 좋습니다. 머리 아프게 반드시 어떤 아로마를 찾아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전혀 없지요. 석유 냄새, 땀에 흠뻑 젖은 듯한 퀴퀴한 가죽 냄새, 성냥이 타는 듯한 냄새나 아스파라거스 냄새 등이 난다면, 극히 드문 경우겠지만 와인을 만들 때 벌레가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아로마가 느껴진다고 해서 와인이 별로라고 지적하시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와인의 탓이라기보다는 특정 와인 지역이나 품종에서 오는 특성이라고 볼 수 있어요. 가끔 자연주의 방식으로 만든 내추럴 와인의 경우 독특한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와인이 잘못 만들어졌을 때는 굳이 마셔볼 필요 없이 냄새로 알 수 있어요. 코르크가 불량인 경우나 보관이 잘못된 경우도 마찬가지로 냄새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와인 냄새를 맡을 때, 아로마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와인 시음은 반복된 경험을 통해서 익숙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한 가지나 두세 가지의 익숙한 아로마만 캐치할 수 있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에요.


이 밖에 시음하기 전에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향수를 뿌리지 마세요. 꼭 뿌려야 한다면 매우 살짝 강하지 않은 향으로 선택해주세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데오드란트 정도만 뿌리는 것을 권합니다. 


음식 냄새가 강한 곳에서 와인 시음을 하지 마세요. 전문 와인 시음 공간이 아닌, 집에서 마음에 드는 와인을 열었을 때는 음식을 요리하기 전인 경우가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음식을 조리하고 남아 있는 냄새 때문에 와인 시음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죠. 


평소에 구할 수 있는 식재료의 냄새를 일일이 맡아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음식을 조리하기 전의 식재료 냄새, 그리고 음식을 하는 중에 맡을 수 있는 냄새.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 자체의 냄새와 향신료의 냄새. 가죽이나 각종 세제, 구두 닦는 제품의 냄새, 각종 약품의 냄새를 꼼꼼히 맡아두는 게 좋습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냄새를 맡는 것보다는 시간대를 정하고 비슷한 종류의 냄새를 맡아서 기억해두면 좋아요. 


향의 종류에 따라서 토끼처럼 짧게 킁킁거릴 때, 숨을 들이마신 후 다시 내뱉을 때, 혹은 입을 벌린 채로 냄새를 맡을 때 더 잘 맡아지는 향이 있으니 다양하게 시도해보세요.

보통 가장 기본적으로 캐치할 수 있는 아로마는 각종 과일, 허브, 꽃, 흙냄새, 담배나 시가, 버터 스카치, 토스트, 바닐라, 커피, 모카, 초콜릿, 가죽 냄새 등입니다.


마지막 단계로, 와인을 입에 머금어 보세요. 입술을 오므리고, 혀에 공간을 만들어 공기를 살짝 들이마셔 보세요. 이때 와인을 급히 삼키거나 사레가 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입 안의 와인을 휙 소리를 내며 살짝 굴려보세요. 그리고 와인을 뱉어내세요. 와인에 집중하는 정도에 따라 이 과정이 몇 초 정도 걸릴 수 있습니다. 때에 따라 와인을 살짝 삼켰다가 뱉어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이때 와인의 단맛, 신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 등을 느낄 수 있고, 바디감이나 탄닌의 정도도 알 수 있죠. 예를 들면 스트로베리나 라즈베리 등의 아로마는 혀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입 안쪽에서 코로 연결되는 부분에서 캐치하게 됩니다. 그래서 입 모양을 오므려 공기가 살짝 들어오게 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죠. 


와인 시음을 이렇게 끝내고 나면, 와인이 좋았는지 별로였는지 판단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한 번 시음해보고 즉석에서 판단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같은 과정을 반복하면 되어요. 와인이 불량이 아닌 이상, 어떤 와인이 좋았고 나쁘고는 개인 취향에 근거하는 것이니까, 편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면 될 것 같습니다. 와인을 전문적으로 시음해 볼 수 있는 이벤트나 공간이 아니라도, 호기심이 가는 와인을 골라 집에서 이렇게 해보실 수도 있지요. 그럼 모두 랜선으로라도 tchin tchin! (프랑스어로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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