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님 추모 미사에 다녀왔다.
추모 미사는, 의정부교구 주교좌 성당인, 의정부 성당에서 진행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언론 보도를 통해 소개되었듯, 바티칸 시각으로 지난 월요일 오전 7시 35분에 선종하셨다. 많은 사람이 놀랐던 이유는, 전날인 주님 부활 대축일에 모습을 드러내셨기 때문이다.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이긴 하셨지만, 성베드로 성당 발코니에서 강복해주시고 광장을 차로 순회하셨으니 그럴 만도 하다. 보좌하던 의료진이 이런 활동을 말렸을 정도로 몸이 안 좋으셨지만, 마지막까지 몸소 사랑을 보여주신 게 아닐지 싶다. 어쩌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직감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좀 일찍 서둘렀다.
주차 문제도 있을 듯했고, 분향소에서 분향할 계획 때문에 그랬다. 도착했는데 다행히 그리 붐비지 않았다. 주차하고 바로 분향소로 갔다. 소성당에 마련된 분향소는 한산했다. 이미 많은 분이 다녀갔으리라 생각됐다. 분양소 안에 울려 퍼졌을 연도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중앙 제대 앞에 프란치스코 교황님 사진이 있었고, 그 아래에 꽃장식이 사진을 받치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잠시 묵상하고, 교황님의 사진을 바라봤다. 직접적인 인연은 없지만, 교황님의 몇 가지 모습이 떠올랐다.
2014년 교황님이 방한했을 때가 기억난다.
꽃동네를 방문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족 모두 꽃동네로 향했다. 어디쯤 있어야 지나가실 때 가까이서 볼 수 있을지 고민하다 한 장소를 택했다. 택했다기보다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갔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사람들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까이서 뵐 수도 있으니, 아이들에게는 그림 편지를 준비하도록 했다. 전해드리면 좋을 것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한참 동안 기다렸는데 하늘에는 헬기가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교황님이 오신다는 소식이 들렸고, 주변은 일제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교황님을 최대한 가까이 보기 위해 그리고 교황님과 접촉하기 위해, 사람들은 저지선에 최대한 붙어서 손을 흔들었다.
차는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우리가 있던 곳과는 좀 떨어진 곳으로 지나갔다. 지나간 후 우리 가족은 약간 허무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그렇게 있었다. 그림 편지는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며칠이 지나고, 언론을 통해 참신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 아이가 교황님 숙소 근처에서 기다렸다가, 나오시는 것을 보고 꽃과 편지를 전달했다는 거다. ‘아!’ 순간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 들었다. 그 생각까지 하지 못한, 나 자신을 원망하면서 말이다. 하고자 하면 방법이 생긴다는 말이, 이럴 때 사용되는 것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서울 시청 광장에서다.
많은 사람의 마음에도 이 장면이 남지 않았나 싶다.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을 위로하시기 위해 노란 리본을 다셨다. 누군가 정치적 중립을 위해 리본을 떼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교황님은 마치 준비하셨다는 듯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은 없습니다!” 이 한마디가 주는 울림은, 정말이지 엄청났다. 이 한마디가, 교황님이 평생 지키고자 하셨던 마음이 아닐지 싶다. 가장 아프고 힘들고 고통받는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 그 안에 사시고자 하신 마음 말이다.
주교님이 강론에서, 언급하신 말씀이 있다.
교황님께서 성직자들에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양 냄새 나는 목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 말씀도 앞선 이야기와 결을 같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은 일반 신자들을 말한다. 목자에게서 양 냄새가 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양무리 안에 있어야 한다. 그곳에 머물러야 양 냄새가 몸에 밴다. 나는, 양 냄새 나는 목자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했다. 양들 안에서 그들과 함께 머물라고 말이다. 아픈 사람과 함께 머물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과 함께하라고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추모하는 마음도 그래야 한다.
추모한다는 건 떠남을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것도 있지만, 그분의 삶을 본받고 그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 다짐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실천해야 한다. 이 모습이 진정 추모하는 모습이라 말할 수 있다. 교황님은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셨다. 함께 하시고 위로하셨다. 용기를 주시고 도움을 주셨다. 이 삶을 본받아 살아내고자 노력하는 삶이 바로, 교황님을 추모하는 것이 아닐지 싶다. 매일 기도할 때 교황님의 사진을 보면서, 그렇게 살아낼 용기를 청해야겠다. 기도하면 통하고 들어주신다는 것을, 오늘 추모하는 가운데 강하게 느껴졌다. 기도의 힘이 느껴졌다. 그 힘을 잘 사용하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