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증인

by 청리성 김작가
내 마음 상태에 따라, 전달하는 내용을 다르게 하는 사람


‘가족 오락관’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알고 있다면 연식(?)이 좀 되신 분이고, 모른다면 신세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요즘으로 따지면 ‘런닝맨’이나 ‘아는 형님’ 정도 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두 편으로 나뉘어서 문제를 맞히는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다. 제일 재미있고 기억나는 게임이 있다. 한 사람이 제시어를 보고, 다음 사람에게 설명하는 릴레이 형식의 게임이다. 마지막에 있는 사람이 제시어를 맞혀야 한다. 주어진 시간 안에 많이 맞추는 팀이 이기는 게임이다.

제시어를 보고, 처음 설명하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거기서 틀어지면 마지막에는 전혀 상관없는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시작은 작은 차이지만, 그 차이는 점점 넓어진다. 두 개의 선이 시작할 때 1도만 벌어져서 그어져도, 조금만 지나면 닿을 수 없는 넓이까지 벌어지는 것과 같다. 이 게임이 재미있었던 이유는, 정답과 상관없는 설명을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은 정답을 알고 있기에, 그들의 모습이 참 우스워 보인다. 나만의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한 기분이랄까?

게임이 종료되고, 한참을 헤맸던 정답을 보면 반응이 한결같다.

‘그걸 그렇게 설명하면 어떻게?’, ‘이게 그거였어?’라는 식이다. 앞선 사람의 설명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묻는다. 물론 짜증을 내거나 그런 건 아니다. 이 부분도 하나의 웃음거리가 된다. 그러면서 한 단어에 대해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이 매우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각자의 경험으로 단어를 해석하기 때문이다. 설명하는 목적은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함인데, 설명하는 내용은 자신이 잘 아는 것으로 하니 잘 못 알아들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잘 아는 관계라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어려울 수 있다고 본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말에 대한 상황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가에 대해 말하면, 그 말에 따라 생각하게 된다. 좋은 부분을 말하면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말을 전달하는 사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전달하는 뉘앙스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판단이 달라진다. 가장 좋은 예로 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신발 회사에서 두 명의 직원을 아프리카로 출장을 보낸다.

시장성을 조사하기 위해서다. 두 사람이 아프리카의 한 도시에 도착한다. 사람들이 맨발로 다니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마음으로 회사로 복귀한다. 한 사람이 이렇게 보고한다. “아프리카는 전혀 시장성이 없습니다. 아무도 신발을 신고 다니지 않습니다.” 한 사람은 이렇게 보고한다. “아프리카는 시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아무도 신발을 신고 다니지 않기 때문입니다.” 같은 현상을 보고 이렇게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어떤 해석이 맞는다고 할 수는 없다. 결과를 듣진 못했으니까. 중요한 건, 같은 상황을 보고 어떻게 전달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전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나는 어떤 말을 전달하는 사람인가?

내가 전달하고 있는 말의 뉘앙스가, 나의 현재 상태이다. 상황이 다른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상태가 다르다는 말이다. 하고자 하면 방법이 생기지만, 피하고자 하면 핑곗거리만 찾게 된다. 상황을 탓하기보다, 그것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행동하는 내 마음을 점검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다. 상황은 내가 바꿀 수 없지만, 마음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말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이전 17화107. 고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