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고난

by 청리성 김작가
영광의 시간을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시간

『과테말라에서 고통받는 아이들과 함께 사는 한 신부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언제 집으로 돌아가고 싶냐면, ‘내가 아이들한테 어떤 마음으로 함께하고 일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 때예요. 그때마다 예수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 사랑이 고난 받는 것인 줄 몰랐니? 고난 다음에 영광이 온다고!’ 힘겨움이 찾아올 때, 이 단순한 이치를 왜 자꾸만 잊게 될까요?”』 (출처: 매일 미사 2021년 4월 7일 ‘오늘의 묵상’ 중)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 1순위가 ‘아이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화려한 무대에서 사람들의 환호와 사랑을 받는, 아이돌이 매우 부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보이는 게 그러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연히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아이돌의 일상을 담은, 프로그램을 봤다. 승합 차에 앉아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이동하는 중간에 잠시 눈을 붙여 피곤함을 달랜다. 다음 목적지에 도착하면, 매니저가 깨워서 준비를 시킨다.

피곤한 몸과 마음을 이끌고, 밖으로 나간다.

걸어가는 뒷모습을 비춰주는데,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무대에 선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무대를 지배한다. 승합 차의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예전처럼 ‘참 멋지다.’, ‘참 예쁘다.’라고 생각하고 넘겼을 거다. 하지만 승합 차에서 먹고 자던 모습을 떠올리니, 안쓰럽다는 마음이 더 크게 들었다. 무대 위에서의 영광을 위해, 그 뒤에서 이겨내야 하는 고난을 봤기 때문이다.

프로 야구가 시작되었고,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곧 올림픽도 예정되어 있다.

선수들은 한 시즌 그리고 한 경기를 위해, 몇 년의 시간을 공들인다. 어쩌면 운동을 시작한 그 순간부터, 평생에 걸쳐서 해야 할 과정일 수도 있다. 본인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쉼 없이 달려온다. 훈련의 고통과 절제의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 건, 아이돌이 무대에서 공연하듯, 경기장에서 자신의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경기장에 서는 것 자체로, 그동안의 견딤을 보상받는 것으로 생각된다.


운동선수들을 볼 때, 가장 안타까운 상황이 있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부상 때문에 뜻하지 않게, 출전조차 하지 못하거나 시즌을 마감해야 하는 상황이다. 영광의 순간을 위해 열심히 달려왔는데, 도전할 기회조차 포기해야 하는 상황은, 견뎌왔던 고통에 대한 일말의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과를 떠나서 말이다. 이와 비슷한 상황을 지켜본 적이 있다.


체육 대학 입시 실기시험장에서 연습하고 있는데, 한쪽에서 비명이 들렸다.

돌아보니, 한 사람이 발목을 부여잡고 뒹굴고 있었다. 발목을 겹질린 것 같았다. 학교 관계자 몇 명이 달려왔고, 부축하면서 나갔는데, 아마도 시험을 치르지 못하고 그냥 돌아간 것 같았다. 주변에, 이런 경험을 직접 한 사람도 있다. 일 년 동안 준비한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다. 얼마나 허무할까?

영광이 일어나기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은, 고난이다.

고난 없이는 영광이 올 수 없다. 서두에 언급한 신부님의 말씀처럼, 고난 다음에 영광이 온다. 고난이 찾아오면 거기에 함몰돼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 지게 된다. 끝없는 어둠의 터널 끝에 빛이 있을 거라는 희망보단, 막혀있을 거란 절망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영광이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난이 수반된다.


지금 고난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머지않아 영광의 시간을 맞이할 것이다.’ 영광은 고난 뒤에 따라오기 때문에, 지금이 고난이라면 영광의 시간이 머지않았다는 의미다. 잊지 않아야 한다. 힘겨움이 찾아올 때, 이 단순한 이치를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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