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수 있다는 믿음으로 견뎌내는, 인내의 시간
일정 시간 묵혀야, 제맛을 내는 것이 있다.
묵힌다는 건, 기다림의 시간을 말한다. 바로 맛을 보고 싶지만, 제맛을 위해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장(醬)으로 끝나는, 된장이나 고추장 그리고 간장 등이 있다. 시간을 두고 묵혀야, 음식에 꼭 필요한 맛을 낼 수 있다.
김치는 바로 담가서 먹는 신선한 맛도 좋지만, 묵은 지라야 제맛을 내는 음식이 있다.
대표적인 음식이 김치찌개다. 바로 담근 김치로 한 김치찌개는, 묵직한 맛이 나지 않는다. 맛이 겉돈달까? 밋밋하다. 묵은지로 끊인 김치찌개야말로, 진정한 김치찌개라 할 수 있다. 식당에서 파는 김치찌개도 묵은지의 상태를 강조할 정도로, 김치찌개는 묵은지가 맛을 가름한다고 볼 수 있다.
음식 말고도 묵혀야 깊은 맛을 낼 수 있는 것이 있다.
글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자신도 ‘노인과 바다’를 200여 회나 고쳐 썼을 정도로 많은 퇴고를 했다고 한다. 20회 정도는 어찌어찌해보겠지만, 200회는 실로 어마어마한 횟수라 생각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자신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초고가 완성되면 일주일 정도 쉰다. 그리고 고쳐 쓰는데, 전체적으로 손을 본다고 한다. 보통 한두 달 정도 걸린다. 그리고 일주일쯤 쉬었다 두 번째 고쳐 쓰기에 들어간다. 처음이 대수술이었다면, 두 번째는 세세한 수술이라 표현한다. 세세한 표현을 수정하는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다시 한숨을 돌리고 고쳐 쓰기에 들어간다. 이번에는 스토리 전개 부분에 대해, 조일 곳은 조이고 풀 곳은 푼다. 그다음 보름에서 한 달 정도 재워둔다. ‘양생(養生)’이라고 표현한다. 예전에 목욕탕 갔을 때, 일정 부분을 줄로 울타리치고, ‘양생 중’이라고 쓰여 있던 푯말을 본 기억이 난다. 굳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건들지 말라는 표시다. 그렇게 하고 나서, 다시 철저하게 고쳐 쓴다.
유명한 작가들이 오랜 시간 묵혀두면서 끊임없이 고쳐 쓰는 이유가 뭘까?
고쳐 쓰면 고쳐 쓸수록 더 좋은 문장이 나온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양생(養生)’의 과정을 통해 더 단단해지고 촘촘한 문장이 된다는 것을 믿는다. 경험을 통한 깨달음이다. 헤밍웨이도 처음부터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출판사에 투고한 원고가, 모두 퇴짜를 맞았다. 몇 번이나. 심지어 어떤 사람은 글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으니, 다른 일을 하라고 충고까지 했다. 헤밍웨이는 이에 개의치 않고 끝까지 글을 써서, 결국 성공했다. 단순하게 글을 오랫동안 써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쓴 글을 끊임없이 묵히고 고쳐 쓰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왔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시간을 두고 인내로써,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 있다.
거기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것은, 믿음이다. 된다는 믿음이, 인내의 시간을 견디게 해 준다. 어릴 때 강력한 기억 중에, 콩나물이 자라는 과정이 있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부으면, 전부 빠져나간다. 화분처럼 물을 머금고 있는 시간이 전혀 없다. 과연 콩이 자랄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콩이 콩나물이 되어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의미 없이 물을 붓는 것 같지만, 콩이 콩나물로 자란다는 확신이 생긴다.
기다림의 시간에 확신이 없다면, 작은 기다림의 성공을 해보는 것이 좋다.
콩나물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처럼, 자신이 체험할 수 있는 작은 기다림의 성공 경험을 느껴본다. 그러면 어렵게 느껴지는, 기다림을 견딜 수 있는 용기가 생기게 된다. 용기는 곧 믿음이 되고 믿음은 인내를 버텨줄 강력한 지원군이 된다. 인내로서 열매를 맺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