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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성 김작가 Mar 11. 2024

지금 나의 갈망은 열정인가? 욕심인가?

대가를 치른 것보다 더 많은 결과가 얻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욕심

보온밥통이 고장 난 지 좀 됐다.

고장 난 지 좀 됐다는 말은 아직 고치지 않았거나 새로 사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럼 어떻게 밥을 해 먹을까? 압력밥솥으로 밥을 해 먹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압력밥솥은 가끔 찜 요리할 때 사용한 걸 봤던 기억 정도가 다였다. 밥솥이지만, 밥을 해서 먹은 기억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던 녀석이, 효자 노릇을 하는 거다. 보온밥통이 고장 나서, 당분간 사용해야겠다고 꺼낸 것이 계속 사용으로 이어졌다. 압력밥솥으로 한 밥이 너무 맛있었던 것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밥을 필요한 만큼만 해서 먹을 수 있다는 거다.

압력밥솥이 크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때그때 해 먹을 정도만 하게 됐다. 여유분이 필요하면 전용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그러면 필요할 때, 햇반처럼 해동시켜서 먹을 수 있다. 보온밥통이 있을 때는 용량만큼 밥을 보관할 수 있었다. 배고프거나 급하게 먹어야 할 때는, 바로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밥 먹을 일이 적어지면, 밥은 며칠씩 그곳에 있어야 했다. 시간이 너무 지나면 굳고 색이 변해 먹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다음에 누룽지 해 먹자고 냉동실에 넣어두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마저도 잊힐 때가 많았다. 보온밥통을 살까 하다가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이런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압력밥솥이 이렇게 요긴할 줄 몰랐다.

무엇보다 갓 지은 밥을 먹을 때가 많고, 그 맛이 참 좋다는 거다. 밥을 해서 먹는 시간은, 15분이면 충분하다. 물 조절을 통해 원하는 상태의 밥을 만들 수 있다. 숭늉을 먹고 싶을 때는 약간 더 끓여 눌어붙게 만든다. 많이 하니, 이제는 이런 노하우도 쌓였다. 그리고 밥맛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간도 알게 되었다. 실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그렇다. 가설을 세우고 실험(?)해 봤는데, 가설이 맞았다. 중요한 차이를 보였다는 말이다.     


압력밥솥으로 밥하는 과정은 이렇다.

압력밥솥에서 김이 빠지는 추가 돌아가면, 불을 줄이고 5분을 더 끓인다. 타이머에서 5분이 됐다는 알람이 울리면, 불을 끈다. 그리고 시간을 두고 기다린다. 김이 다 빠지면, 손잡이 부분에 동글한 빨간 부분이 내려간다. 그러면 손잡이가 달린 뚜껑을 돌려서 열면 된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고 밥이 보이는 데, 보는 순간 안다. “야! 잘 됐다!”라는 감탄이 나올 때가 있고, 실망할 때가 있다. 이 둘을 가르는 결정적인 시간이, 앞서 말한, 가설을 설정하고 실험한 부분이다. 어떤 시간일까?     


뜸 들이는 시간이다.

뚜껑 위에 달린 추가 돌면서 김이 나온다. 불을 꺼도 추는 계속 돌아가면서 김을 뺀다. 그냥 두면 시간이 지나고 김이 다 빠지게 된다. 하지만 배가 고프거나 급한 마음일 때는 그냥 두지 않는다. 추를 빨리 돌리거나 열차가 연기를 뿜듯 뿜어나오게 한쪽을 누른다. 그러면 “칙~”하는 소리와 함께 김이 순식간에 빠져나온다. 뚜껑을 열어도 되는 표지인 손잡이 부분에 동글한 빨간 부분이, 가만히 있을 때보다 더 빨리 내려간다. 시간을 단축했다고 생각하고 뚜껑을 열고 밥을 젓는다. 밥을 담아서 맛있게 먹을 생각에 한술 뜬다. 하지만 밥이 설익었다는 걸 알게 된다. 급한 마음에 김을 빨리 뺀 게 원인이다.     


뜸 들이는 시간은 그냥 시간이 아니다.

꼭 필요한 시간이다. 없어서는 안 될 시간이고,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이 시간에 따라, 맛있는 밥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느낌으로 먹을 수도 있고, 설익은 밥을 꼭꼭 씹어서 먹어야 하기도 한다. 그 차이를 결정하는 시간이 바로 뜸 들이는 시간인 거다. 잘 몰랐을 때는 그냥 김만 빼면 되는지 알았는데, 천천히 김이 빠지면서 밥이 제대로 맛을 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뜸 들이는 시간은 우리 삶에도 존재한다.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뜸 들이는 시간을 줄이는 것처럼, 욕심을 일어나게 하는 것이 있다. 대가를 치르지 않는 거다. 무언가를 배운다고 한다면, 충분한 시간에 충분한 노력으로 충분한 실력을 키워야 한다. 충분한 대가를 치르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다. 오히려 더는, 기회를 얻기 어렵게 될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당연히 좋지 않은 선입견이다.     

 

급한 마음은 일을 그르치게 만든다.

그랬던 경험이 떠오른다. 빨리 성과를 내고 싶은 마음에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람들에게 이야기한 것이 있다. 시간이 지나서, 차라리 말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욕심 때문이었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결과를 얻으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조건이 완벽해진 상태에서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적게 이뤄진 상황이라면 적게 시작하고, 조금씩 천천히 늘려가야 한다는 말이다. 대가를 치른 것 이상으로 결과가 나기를 바라는 것은 모두,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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