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이맘때의 사건(?) 하나가 떠오른다.
가끔 떠올리기는 했는데, 최근 지인의 상황을 듣고 이 사건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시기의 기분과 그날의 기억은 너무도 선명하다. 필자는 글이나 강연에서, 인생의 갈림길 세 가지가 있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그렇다. 더 많은 갈림길이 있었겠지만, 인생이라는 단어 앞에 놓을 수 있는 건, 이 세 가지가 맞다.
결혼과 직업 그리고 직장이다.
가정을 꾸리면서 사는 40대 중후반이라면, 이 세 가지 중 최소한 한두 가지는 해당하지 않을까? 지금 삶을 만든 중요한 갈림길이었다고 말이다. 갈림길이라는 말은, 원하는 상황과 실제 일어난 상황, 두 가지 길을 말한다. 원하는 상황으로 흐를 수도 있지만, 원하지 않던 상황으로 흐를 수도 있다. 그 결과 지금의 모습이 된 거다.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필자는 이 세 가지가,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았다. 그 세 번째 갈림길이 바로, 직장이었다.
서른의 나이에, 뜻하지 않은 직업을 선택해서 일하게 됐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늦은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전혀 다른 길을 가기에 그리 이른 나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일이 재미있었다. 체질이 맞았다고 할까? 운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운이 좋았다. 지금까지 같은 업종에서 일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 이상적이었던 건,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게 정말 필자랑 잘 맞았다. 해보지 않은 일이었지만 금방 업무를 익혔고,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개인의 성장은 물론 회사의 성장까지 정말 가파르게 올라갔다.
쉴 새 없이 일했다.
가파르게 성장했다는 건 그만큼 쉴 새 없이 일했다는 말과 같다. 일이 재미있으니 힘든 줄 잘 몰랐다. 그렇다고 전혀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기운이 빠지기도 하고 마음이 매우 무거운 상황도 있었다. 제일 오랫동안 쉬지 않고 일한 날짜를 세어보니, 석 달이 좀 넘었다. 100일 정도를 쉬지 않고 전국 출장을 다니며 일했다는 거다. 체육교육을 전공하면서 했던 운동과 군대에서 다진 체력으로 버틸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주변 사람들도 그랬다. 체력이 정말 좋다고 하면서, 자기 같았으면 벌써 나가떨어졌을 것이라 했다. 필자 자신도, 체력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미친 듯이 일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분위기가 좀 묘하게 흘렀다. 거래처에서 사람 하나가 들어왔는데, 그 사람이 분위기를 묘하게 만들었다. 새 판을 짜려는 듯한 느낌이랄까? 대표가 이 사람을 영입한 이유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됐다. 묘한 분위기의 칼날은 필자를 향해 들어왔다. 몰아내는 분위기랄까? 그들은 아니라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느낌은 그랬다. 그때가 딱 10년 전, 이맘때쯤이었다. 10년 전이니, 세 딸의 나이도 많이 어렸다. 10살, 7살, 4살. 이런 분위기를 친구들에게 말하면, “어쩌겠냐! 더럽고, 치사해도 애들 생각해서라도 버텨야지!”였다. 현실적으로 맞는 말이었다. 모아 둔 돈은커녕 빚만 가득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더는 버틸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필자를 신뢰하고 도움을 주던, 거래처 담당자가 있었다.
일감을 주고 싶지만 여의치가 않았었다. 그러던 차, 일감을 줄 수 있게 되었다며 기쁜 목소리로 전화를 줬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일할 수 있는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새로 온 사람이 그 일은 다른 담당자에게 넘길 거라고 통보해 왔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하지만 거래처 담당자는 필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담당자가 된다는 말에,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이걸 빌미로 대표는 새로 온 사람에게 지시를 내렸고 그 사람은 필자를 조용히 불렀다.
인사위원회라는 명목에서다.
일개 거래처 담당자가 회사 대표에게 전화해서 항의한 것이 문제라는 거다. 좁은 공간에 둘이 있는데, 인사위원회라고 하면서 녹음기를 켰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없고 화가 났다. 인사위원회라는 건 최소한 2~3명이 있어야 하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진행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갓 들어온 사람이, 가장 오랫동안 근무한 필자를 인사위원회랍시고 불러놓고 녹음기를 켰으니 그 마음이 어떻겠는가? 장난하냐며 발끈했고 바로 사표를 쓰겠다고 엄포를 놨다.
대책은 없었다.
욱하는 마음에 그렇게 던져놨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마음이 너무 힘들었었다. 불 꺼진 집에 들어가 아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자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더 무거웠다. 어찌할지 막막한 마음에 고민만 커졌다. 그 시기에, 명동성당에서 복음화 학교 과정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단계가 거의 마무리되고 있었다. 1년 6개월 동안 매주 월요일 저녁에 참석한 교육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교육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걸어가고 있었다. 어두운 밤길이었고, 가로등이 제대로 없는 길이었다. 그때 가슴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왔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항상 너와 함께 있겠다!”
놀랐다.
이 말씀이 필자의 생각에서 온 것인지 들려온 말씀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용기였다. 그때부터 마음은 걱정이 아닌 용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했던 현실적인 걱정과 고민은 밀려났고, 과감하게 그만두어야겠다는 용기가 들어차 있었다. 다음 날, 바로 사표를 냈다. 그렇게 마무리하고 8년 정도 보낸 직장을 떠났다. 그때는 아쉬움과 원망이 더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마음이 올라왔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해준 그 직장에 고마운 마음이 올라온 거다.
그 회사를 발판으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직장에서 배운 일과 만난 사람을 통해, 새롭게 옮긴 직장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직장을 그만두고, 한 달 반 만에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게 됐다. 여기서 전 직장에서 만났던 몇 분이 일감을 줬고, 빠르게 자리 잡고 성장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그 모든 시작은 첫 직장이었다는 거다. 그것을 부인할 순 없다. 그리고 그 직장에서 나와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은 이 직장에 들어온 지, 만 10년이 되었다. 몇 년 전부터는, 전혀 새로운 업무를 하면서 또 다른 성장을 하고 있다.
갈림길은 내가 원하는 길과 실제 벌어진 길로 나뉜다.
실제 벌어진 길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원하지 않던 길이라는 말이 된다. 내 삶의 세 가지 갈림길이 그랬다. 지금까지 언급한, 직장도 그랬다. 불가피한 상황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길이, 내가 원하지 않던 길이 잘못된 길이었나? 아니다. 오히려 더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 길이 되었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다 좋은 길 올바른 길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떤 상황이든 내가 흘러가는 길에는 다 이유가 있다. 더 좋은 길로 안내하는 이유 말이다. 그 길에 들어설 때는 두려움과 걱정이 둘러싸겠지만, 그 이유를 찾기 위한 마음을 가지면, 용기가 차오르고 그 이유를 알게 되는 일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믿음으로 상황을 마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