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bra_and_Shatila_Massacre
https://www.instagram.com/p/7y8flTK6jv/?igsh=MXE3M25zZGw3ZDJldQ==
사브라-샤틸라 학살은 1982년 9월 16일부터 18일까지 레바논 베이루트 남서부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난민촌인 사브라와 샤틸라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레바논 내전과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이라는 복잡한 정치적 배경 속에서 일어났으며, 수천 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습니다. 
사건 개요
• 시기: 1982년 9월 16일~18일
• 장소: 레바논 베이루트의 사브라 지역과
인접한 샤틸라 난민캠프
• 가해자: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인 팔랑헤당(Phalange), 이스라엘군(IDF)의 지원 하에 작전 수행
• 피해자: 팔레스타인 난민과 레바논 시아파 민간인 등 1,300~3,500명 추정  
배경과 전개
1982년 6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레바논을 침공했습니다.
8월 말, PLO는 국제 연합군의 감독 하에 레바논에서 철수했으나, 이스라엘군은 베이루트를 포위하며 영향력을 유지했습니다.
9월 14일, 이스라엘의 동맹이자 레바논 대통령 당선자였던 바시르 제마엘이 암살되자, 이스라엘군은 보복을 명분으로 팔랑헤 민병대에게 사브라와 샤틸라 난민캠프에 진입하도록 허용했습니다.
민병대는 이틀간 캠프를 수색한다는 명목으로 진입했으나, 실제로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캠프 주변을 봉쇄하고, 야간에는 조명탄을 발사하여 민병대의 작전을 지원했습니다.
학살이 진행되는 동안 이스라엘군은 민간인들의 탈출을 막았으며, 학살을 중단시키지 않았습니다.
국제적 반응과 책임 규명
• 유엔 총회: 1982년 12월 16일, 유엔 총회는 이 학살을 집단학살(genocide)로 규정하고 강력히 비난했습니다. 
• 카한 위원회:
이스라엘 정부는 사건 조사를 위해 카한 위원회를 설립했습니다.
1983년 2월, 위원회는 이스라엘이 학살을 직접 수행하지는 않았지만, 민병대의 행위를 방조하고 중단시키지 않은 점에서 “간접적 책임”이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이에 따라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아리엘 샤론은 사임했습니다. 
기억과 영향
사브라-샤틸라 학살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국제 사회에서도 중동 분쟁의 비극적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이스라엘과 레바논, 팔레스타인 간의 관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중동 평화 프로세스에서도 중요한 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학살은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을 통해 대중적으로 조명되었으며,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와 국제사회의 책임에 대한 논의를 촉진시켰습니다. 
사브라-샤틸라 학살은 중동 현대사에서 가장 참혹한 민간인 학살 중 하나로 평가되며, 현재까지도 정의와 책임 규명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