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더섬멸작전

by Andrew Oh

창더(常德) 섬멸작전은 통상 역사에서는 창더 전투(Battle of Changde, 1943년) 로 불리는 일본군의 대규모 공세를 가리킵니다. 아래에 핵심 사실만 간결하게 정리했습니다.


#BattleofChangde


한눈에 요약

• 시기: 1943년 11월 초 ~ 1944년 1월(전투의 고비는 11월~12월). 

장소: 중국 후난성(湖南) 창더 및 주변 지역(Changde). 

주요 교전 주체: 일본 제11군(사령관 요코야마 이사무(Isamu Yokoyama) 등) vs 중화민국군(여러 군단·제부대, 특히 10군단·57사단·74군 등). 


목적(일본 측): 창더 점령을 통해 장강(長江) 남부·중부 전선에서 중국 측 병력을 고립·격멸(일부 문헌에서는 ‘섬멸’을 목적으로 한 공세로 기술). 


결과: 단기적 점령은 있었으나, 중국군의 반격으로 일본군은 심대한 손실을 입고 철수 — 전술적·전략적으로 일본에 큰 부담을 준 전투로 평가됨(중국 측은 ‘전과(戰果)’를 내세움). 



전투 전개(핵심 사건)

1. 초기 침공·점령

11월 초 일본군이 창더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여 도시 일부를 점령. 11월 2일경 일본군이 창더 접근·점령 전개. 

2. 공중 강습·포위·시가전

일본군은 공수(airborne) 작전과 지상 돌격으로 도시 내에서 격렬한 시가전을 벌였고, 도시 방어를 맡은 중국 57사단 등이 장기간 버텼음. 


3. 중국의 반격(역포위/구원작전)

팡 셴쥐에(方先覺, Fang Xianjue) 등 지휘 하에 중국군의 증원·반격이 조직되어 일본군을 고립시켰고, 보급 차단과 격렬한 집단 전투 끝에 일본군은 교착과 손실을 겪음. 

4. 화학무기(보고된 사용)

전투 과정에서 일본군의 화학무기·독가스 사용이 복수의 자료에서 언급됨(논쟁·연구 대상). 

5. 철수 및 여파

보급·병력 소진으로 일본군은 12월~이후 퇴각·복귀를 거듭했고, 전선은 다시 안정 구간으로 회복. 양측에 큰 인명·장비 손실을 남김. 


전력·규모·피해(개략)

투입병력: 양측 모두 수만~십여만 단위(관련 사단·군단 규모 전개). 정확한 숫자는 자료별 차이가 큼. 


피해: 양측 피해(사상자·포로·장비 손실) 매우 큼 — 일본군도 수천~만 단위의 감축/보충을 기록했다는 보고가 있음. 



역사적 의의

중국 측 의의: 창더 전투는 중국군이 일본의 대규모 공세를 견디고 반격해 대규모 일본 병력을 소모시킨 사례로, 국민당군의 저항력을 보여준 전투로 평가됨. 


일본 측 영향: 전투로 인해 일본군은 남중국·장강 남부 작전 부담과 병력 소모를 떠안게 되었고, 이후 장기전·소모전의 부담이 확대되었다는 평가가 많음. 


원하시면 바로 다음 항목 중 하나를 더 자세히 정리해 드리겠습니다(바로 만들어 드릴 수 있어요):


1. 연표(일별 주요 전개) + 전투 지도(요약 도식)

2. 참전 부대별(일본 제11군 vs 중국 10·26·29군단 등) 편성/전력 표시(전투 서열) — (order of battle 요약). 

3. 증언·사진·1차 자료(전후 전시관·박물관 자료) 링크 모음

4. 화학무기 사용 관련 근거와 연구(논문·단행본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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